牧民心書

수수 한 말, 수소 하나

eorks 2011. 3. 20. 00:23

牧民心書
제11장 진황 6조[어려운 백성들을 구하는 방법들]
수수 한 말, 수소 하나
竊貨於飢吻之中하면聲達邊요하고殃流苗裔必不可萌於心也니라.
절화어기문지중하면성달변요하고앙류묘예필불가맹어심야니라.
굶주린 사람의 입에 든 재물을 도둑질하면 소문이 변방까지 들리고
재앙이 자손에게까지 끼치게 된다. 그러니 그런 생각은 절대로 마음
속에 싹트게 해서는 안 된다.
- 권분(勸分) -
    
      옛날 어떤 마을에 `원(員)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었다.
    원이란 그 고을의 수령을 뜻하는 말로, 이 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이
    러하다.
      원바위가 있는 지방에 안 진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어찌나 위세
    를 부리고 다니는지 가난한 동네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안 진사에 대한 사람들의 평판은 아주 나빴다.
      그는 과거에서 진사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살지는 않았다. 그저 진사
    라는 것에 만족하며 동네에서만 주름을 잡고 다녔다. 못 배우고 돈 없
    는 동네 사람들의 위에 서서 못된 일만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안 진사에게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데가 없었다. 관청에
    다가 호소문을 올려도 이미 사또도 안 진사에게 먹은 뇌물이 있는 터라
    거부당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힘없고 배운 것이 없는 마을 사람들은
    속이 부글부글 끊었지만 무슨 뾰족한 방법이 없어 그저 당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사또가 부임해 왔다. 그 사또는 사리판단이
    분명하고 백성을 위하는 인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번이야말로 진
    사를 혼내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여러 사람이 공동 명의로 사또에
    게 호소문을 올렸다.
      그러자 신임 사또가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이미 이 마을에 오기 전부터 안 진사에 대한 좋지 못한 평판을
    들었다. 그러니 그 동안 그대들이 안 진사에게 당했던 사정을 자세히
    말해 보아라."
      사또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당한 억울함을 줄줄이 엮어냈
    다. 그 중에 한 사내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내는 지난 봄에 먹을 것이 떨어져 안 진사를 찾아가 가을에 이자
    를 잘 쳐서 갚을 테니 양식을 꾸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안 진
    사는 이렇게 말했다.
      "듣고 보니 사정이 딱하구먼. 지금 지네에게 꾸어줄 쌀이나 보리는
    없고, 그 대신 수수를 한 말 주지."
      사내는 우선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에 수수라도 달라고 했다.
      "그것이라도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가을에 얼마로 갚으
    면 될까요?"
      "응, 그저 수수 하나만 가져오라고."
      "수수 한 말이요? 그렇다면 지금 제가 가져가는 것하고 똑같지 않습
    니까? 이자를 받지 않겠다는 말씀인가요?"
      사내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그래, 수수 하나야. 그런데 나중에 실수가 없도록 여기 장부를 하나
    만들어 두고 가게."
      그러면서 장부에 이렇게 기록했다.
      `김 서방이 가을에 갚아야 할 것 - 수소 하나.`
      그런 다음 사내에게 장부에 적힌 내용을 읽어 주었다.
      "수소 하나요? 수수가 아니고 수소입니까? 그리고 하나가 아니고 한
    말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요?"
      사내는 글을 읽지는 못했으나 남이 읽어준 내용을 못 알아들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기에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이 사람아, 이 지방에서는 수수를 수소라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하
    나나 한 말이나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참 답답하구먼. 그러니 사람은
    배워야 하는 거야."
      "예....잘 알겠습니다."
      "자, 그러면 이리 와서 장부에 틀림없다는 표시를 하게."
      서명을 하라는 말이었다. 사내는 안 진사의 요구대로 장부에 서명을
    한 뒤 수수 한 말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월이 흘러 안 진사에게 꾸어온 수수 한 말을 갚아야 할 때가 되었다
    다. 그래서 사내는 제일 잘 된 수수만을 엄선하여 약속한 대로 한 말을
    만들어 안 진사 집으로 찾아갔다.
      "지난 봄에 양식을 꾸어 주셔서 정말 요긴하게 잘 먹었습니다. 약속
    대로 여기 수수 한 말을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안 진사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수수 한 말이라니?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사내는 영문을 몰라 물었다.
      "지난 봄에 분명히 수수 한 말만 갚으라고 하셨잖습니까?"
      "이 사람이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구먼. 내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다는
    거야? 이 장부를 보게나. 여기에는 수수 한 말이 아니라 수소 하나라고
    적혀 있지 않나?"
      "맞습니다. 수소 하나요. 그때 진사 어른께서 그 말이나 수수 한 말
    이나 만찬가지라고 하셨잖아요?"
      "난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어. 그리고 수수하고 수소하고 어떻게 같
    은가?"
      "그럼 도대체 수소라는 게 뭡니까?"
      "이 사람이 수소도 몰라? 수컷 소가 수소지 뭐야?"
      "예! 수컷 소요? 황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네가 분명히 수소하나를 준다고 여기 서명까지 하지 않았나? 지
    금 와서 딴소리를 하면 안 되지. 난 그때 자네 집에 있는 황소를 준다
    는 말로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사내는 하늘이 무너진 듯 눈앞이 캄캄해졌다. 수수 한 말을 얻어먹고
    전 재산이나 만찬가지인 황소를 잃게 되었으니 정신이 아뜩해지지 않
    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진사 어른, 농담이시죠? 세상에 수수 한 말을 황소 한 마리와 바꾸
    는 미련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왜 없어? 자네가 바로 그 사람 아닌가? 이 사람이 지금 나를 놀리는
    거야!"
      안 진사는 오히려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억울합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자네가 서명한 장부도 있어. 난 지금 사람을 보내 자네 집 황소를
    끌고 올 테니 그리 알게."
      안 진사는 기어코 사내의 황소를 빼앗아 가고 말았다.
      사내는 신임 사또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 눈물울 흘리며
    호소했다. 사정을 다 들은 사또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글자 삐침 하나에 수백 배의 이익을 챙기려고 했구나. 이런 괘씸한
    자 같으니라고! 알았으니 그만 돌아가도록 하라."
      이튼날, 사또는 직접 안 진사의 집으로 찾아갔다. 안 진사는 뜻밖의
    방문을 받고 무척 기뻐했다.
      "어서 오십시오, 사또. 이런 누추한 집에 몸소 오시다니 황송합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안 진사는 호들갑을 떨며 사또를 맞이하고는 자기 집에서 가장 맛있
    는 음식을 차리라는 둥, 사또에게 바칠 값진 선물을 준비하라는 둥 난
    리를 쳤다. 그러나 사또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나는 원래 시를 짓고 노래하기를 좋아합니다. 집안에서
    이렇게 법석을 떨 것이 아니라 저기 앞산의 물가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함께 시를 읊는 게 어떻겠소?"
      "사또의 뜻이 그러시다면 따르지요. 저도 재주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명색이 진사이니 시 짓고 노래 부르는 것을 마다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사또와 안 진사는 함께 동네에 있는 앞산의 바위로 올라갔
    다. 사또는 안 진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내의 억울한 사연
    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러자 안 진사는 손을 내저으며 펄쩍 뛰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저도 옛 성현의 말씀을 익혀서 진사
    가 되었는데 어떻게 그런 경우 없는 짓을 하겠습니까? 김 서방이 지난
    봄에 와서 식량을 꾸어 달라기에 저도 먹고살기 어렵지만 하도 딱해서
    쌀 한 가마를 주었습니다."
      "쌀을 주었다고요?"
      "예. 그랬더니 김 서방이 무척 고마워하면서 지금 먹지 못해 죽으면
    집이고 논이고 갖고 있은들 뭐하냐면서 자기가 아끼던 수컷 황소를 가
    을에 주겠다고 해서 받은 것뿐입니다. 그래서 제 장부에다가 `수소 하
    나`라고 쓰고 김 서방이 서명까지 한 걸요?"
      "그렇소? 그런데 김 서방 말하고는 전혀 다르군."
      "아이고, 사또. 그 무식한 자가 뭘 알겠습니까? 사또께서도 그런 무식
    한 자의 말을 들으시면 안 됩니다. 그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때를
    쓰거든요."
      "그럼 김 서방을 불러다가 이야기를 한번 들어봅시다."
      그러면서 얼른 사내를 불러오도록 했다. 잠시 후 도착한 사내는 지금
    까지의 사연을 다 듣고 난 뒤 울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늘을 두고 맹세하지만 저는 쌀을 가져다 먹은 적이 없습니다. 수
    수 한 말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제 목숨과도 같은 황소를 끌고 갔으니
    이제 저는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자 안 진사가 벌떡 일어서더니 사내를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이런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고!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말을 지껄이
    느냐?"
      사또는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안 진사를 보고 있노라니 화가 치
    밀었다.
      "여보시오, 안 진사. 여기 이 바위를 보시오."
      사또가 옆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바위는 매우 단단하지만 백성의 원망을 듣게 되면 갈라지고 말
    것이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죄가 있다면 김 서방의 원망에 이 바위
    가 갈라질 것이오."
      사또가 힘껏 바위 위를 발로 밟았다. 그러자 바위 위에 사또의 발자
    국이 푹 파였다. 연이어 또 한 번 발로 내리치자 바위 한가운데가 갈라
    지면서 금이 갔다.
      그 광경을 지켜본 안 진사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이럴 수가....."
      마침내 안 진사가 있는 쪽의 바위가 반으로 갈라지면서 기울기 시작
    했다. 하지만 사또와 사내가 있는 쪽의 바위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으악!"
      마침내 반쪽 난 바위는 안 진사를 덮치며 강 아래로 구르기 시작했
    다. 안 진사는 순식간에 반쪽 난 바위를 안은 채 강물로 떨어졌다.
      끝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안 진사는 그렇게 물에 빠져 숨
    을 거두고, 나머지 반쪽 바위는 아직도 경기도 양평군에 남아 있다고
    한다. 이 바위는 어른 몇 십 명이 올라갈 만큼 널찍하다고 한다.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