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한 신하가 입을 열었다.
"현재 연경에 고려 사람 하나가 와 있습니다. 듣자니까 의술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불러다가 공주마마의 병환을 고쳐
보도록 하되, 병을 고친다면 다행이지만, 만약에 고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 사람의 간을 꺼내겠다고 합시다."
모두들 좋은 꾀라면서 그의 의견에 찬성했다. 지희 나라 사람
을 해치고 나서 만약 소문이 퍼지게 될 경우 일을 처리하기가 매
우 곤란할테지만, 외국인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핑계를 댈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은 이해시키기도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집은 황후가 지정한 내시와 시녀를 따라 공주의 침전으로 들
어가게 되었다.
침전에는 공주의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천장에서부터 천이 드
리워져 있었다. 공주가 사람만 보면 발광을 하므로, 몰래 그녀가
하는 행동을 엿듣고 진찰을 하라고 했다.
공주의 증세가 심하게 나타나는 시간은 한밤중이라고 했다. 때
문에 신집은 조용히 앉아서 발작이 일어날 때를 기다렸다.
이윽고 날이 어주워졌다.
갑자기 안에서,
"히히히히…… 깔깔깔깔……"
하고 실성한 공주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얼마 동안 그러다가
는,
"캐갱 캥 캥……"
하고 여우가 우는 소리를 냈다.
신집은 드리워진 천을 들치고 대담하게 공주의 침전으로 들어
갔다. 매우 호화롭게 꾸며진 방이었다. 큰 거울과 꽃을 수놓은 병
풍, 금은 보석으로 만든 구슬들이 여기저기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방 한복판에 얼굴이 야위어 마치 귀신의 모습처럼 된 공주가
이불을 걷어차고 누워 있었다. 이따금 기침을 심하게 했는데, 그
기침 소리가 짐승의 울음소리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주가 몸을 뒤틀면서 기침을 할 때마다 괴
로워하는 표정을 짓기는 커녕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한 병은 신집이 일찍이 들어 보지도 못한 병이어서, 신집
은 차츰 자신을 잃어갔다.
곁에 있던 내시는 신집이 공주의 병을 치료하기를 기다리기보
다는 그를 어떻게 죽이느냐에 정신을 쓰고 있는 판이었다.
그 때 더 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공주가 기침을 하고 그것이
개 소리와 똑같이 들렸을 때, 신집이 소매에서,
"그르르르……"
하고 성나서 울부짖는 소리가 나더니, 강아지가 뛰어나온 것이다.
그 삽살강아지는 털이 곤두섰기에 마치 작은 사자처럼 보였다.
이불 속에서 `으르렁! 캑캑!` 하는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신집의 강아지는 공주의 미불을 발기발기 찢었다. 침실 속은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 바람에 거울이 떨어져 깨지고, 병풍이
찢기고, 휘장이 끊어져 떨어지는 소동이 일어났다.
내시와 시녀들은 강아지의 움직임이 너무나 세차고 빨랐기에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몰라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
다.
다음 순간, 공주의 이불 속에서 짐승이 튀어나왔는데, 그 짐승
의 눈에서는 이상한 광채가 번뜩였습니다.
"아, 불여우!"
누군가가 외쳤다. 그 때 삽삽강아지의 눈에서는 더 날카롭고
센 광선이 튀어나와 불여우의 광선과 맞부딪혔으며 둘은 다시 한
테 엉켰다.
공주는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두 짐승은 서로 물어뜯고 할퀴고 했는데 결국 불여우가 삽삽개
를 당하지 못하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삽삽개
는 깡충 뛰어 신집의 옷소매 속으로 숨어 버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같은 소동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
주는 정신을 차렸고 얼굴에는 화색이 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
라 먹을 것도 잘 먹고 소화도 잘 시켜 건강이 날로 회복되어 갔
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공주는 쓸쓸했던 나머지 뜰에서 얻은 불
여우를 자기 침실에서 길렀던 것이다. 처음에는 강아지인 줄 알
고 귀여워하며 길렀는데 차츰 커감에 따라 모습이 불여우로 변했
다.
불여우는 처음부터 사람을 싫어해서, 누가 밖에서 들어오면 공
주의 이불 속으로 숨어버렸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본 사람이
없었다. 공주의 정조까지도 더럽힌 그 놈이 공주의 몸에 바짝 달
라붙어서 공주의 입을 통해 짐승 소리도 나게 하고 정신을 이상
하게 만들고는 했었던 것이다.
공주는 다른 약을 쓰지 않고도 예전처럼 건강해졌다.
신집의 옷소매에 숨어 살던 삽삽개는, 비록 몸은 작았지만 성
질이 사자 못지않게 사나운 독특한 종자였다.
원나라 황제는 신집을 해치려던 것을 깊이 뉘우치고, 그에게
사례하는 뜻으로 많은 보물과 돈을 주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