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장수가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유숙을 청한 집이 공교롭
게도 방이 하나 밖에 없는 오막살이였다. 형편이 그러하건만 인
정 많은 주인은 소금장수를 안으로 들게 한 후 방 윗목에 잠자리
를 깔아 주었다.
"하루 종일 걸어다녀셨을 테니 몹시 고단하시리다."
"뭐 이젠 습관이 돼서요."
옆에 앉았던 주인 아낙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재미있는 일이 많으실 거야. 우리 같은 농사꾼이야 밤
낮 땅파는 재미 밖엔 없지만."
"가끔 재미있는 일도 보지요. 글쎄 어제는 어떤 마을에 들렸는
데, 그 곳 태수가 음악을 몹시 즐기더군요.
내 생전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람도 여럿 만나 봤고, 나 또한
이같이 못났어도 노래는 늘 흥얼거리고 다닙니다만, 하여간 그
태수는 어찌 음악을 좋아하는지 목동이 부르는 어랑 타령에도 곧
일어나서 엉덩춤을 추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마침 갔을
때 태수가 죄인을 잡아다가 볼기를 치더군요. 매질을 한 대 따악
때리니까 죄수놈이 아픈 울음 소리를 노래처럼 합디다. 듣기에
청승 맞습디다만 태수는 일어나서 춤을 덩실덩실 추더군요."
"그거 참 볼 만 했겠슴니다."
그처럼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주인 부부는 아랫목에서,
소금장수는 윗목에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깊은 밤중에 아랫목의 주인 부부가 거사를 하는 소리
때문에 소금장수는 그만 곤한 잠에서 깨고 말았다. 목석이 아닌
바에야 어찌 그것을 보고 태연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군다나 마누
라를 떠난 것이 달포도 넘었으니…….
소금장수는 점잖게 말을 붙였다.
"주인장, 지금 하시는 일이 대체 무슨 일입니까?"
"소리를 들어 손님도 대강 짐작하시겠지만 집 사람과 더불어
부부의 즐거움을 누리는 중이외다."
"아 그러시오? 참 좋으시겠습니다. 그쯤 되셨으니 주인장께서
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운우(雲雨)를 누리는 데도 그 품격이
있지요."
"품격이라니요?"
"우선 말씀드리자면 깊이 꽂아서 오래 희롱하여 여인으로 하여
금 뼈를 녹게 하는 것이 상품이요, 번개처럼 번쩍번쩍 요란하기
만 할 뿐 잠깐 동안에 끝나는 것은 하품입니다. 상품과 하품을
잘 구별하셔야 합니다."
남편 밑에 누워 있던 주인 아낙이 가만히 듣자 하니 바로 자기
의 남편이 전형적인 하품이 아닌가.
`이년의 팔자야, 저 소금장수는 분명히 상품이니 저런 소리를
지껄이겠지. 상품의 맛을 좀 보았으면.`
주인 아낙은 미진한 욕망으로 인해 미칠 것처럼 되고 말았다.
하지만 뜻이 있으면 다 길이 있는 법, 여인은 곧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다. 그녀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배 위에 있는 남편을
차 내며 말했다.
"여보 큰일났어요. 내가 지금 잠깐 새 꿈을 꾸었는데 우리 수
수밭에 커다란 산돼지 한 마리가 들어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
니 밭이 다 망가지겠어요. 그 밭을 망치면 금년 농사는 엉망이
돼요. 그러면 우리는 뭘 먹고 살죠? 내 꿈은 언제나 꼭 맞아요.?
"그렇지, 당신 꿈은 꼭 맞지. 요전에 집에 불난 것도 맞추지 않
았던가."
주인은 부지런하고 선량한 농사꾼이었기에 부부의 재미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곧 일어나 화살통을 메고 어두운 밖을 향해 뛰어
나갔다. 뜻대로 남편을 쫓아낸 마누라는 재빨리 소금장수의 이불
속으로 기어들며 말했다.
"어서 빨리 당신의 그 상품으로 이 몸의 뼈를 녹여 주세요."
과연 소금장수는 여인의 뼈를 녹신녹신 말랑말랑하게 녹여 놓
았다. 그런 황홀경은 처음 맛본지라 주인 마누라는 그만 넋까지
홀랑 빠져
"여보세요 우리 어디 가서 단 둘이서 삽시다. 남편이 오기 전
에 어서요."
하며 옷가지며 패물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소금장수가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한아름 물건을 싸든 여인에
게 이끌려 걸어가며 생각하니, 그런 낭패가 없었다. 이미 맛을 본
계집은 무슨 재미 때문에 데리고 가며, 이같은 세간살이까지 지
고 가니 자신이 꼭 도둑놈같이 생각되어 소금장수의 한 조각 양
심이 그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소금장수는 여인을 떼어 버리려고 머리를 썼다.
"우리들이 이렇게 도망하니 기쁘기 한이 없구료."
"나도 그래요. 난 오늘밤에야 비로소 내가 이 때까지 헛살았다
고 느꼈어요."
"그런데 말이요. 지금 당장 밥을 해 먹을래도 솥과 남비는 있
어야 할 게 아니오. 당신 수고스럽겠지만 나는 듯이 달려가 솥하
고 남비를 가져오시오. 당신 남편은 아직도 멧돼지를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을 것이오."
"예 그러리다. 그리고 보니 숟가락도 없어요."
"빨리 갔다 오구려. 이 몸은 여기에 망부석처럼 우뚝 서서 당
신을 기다리리다."
여인은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소금장수도 바지에서 푸파
소리가 나도록 반대편으로 달려 도망갔다. 집에 간 여인은 솥과
남비 외에 화로까지 챙겨서 이고 나오려는데 그만 밭에서 돌아오
는 남편과 딱 맞닥뜨리고 말았다
"아니 오밤중에 화로를 이고 이게 엔 야단이오?"
기지가 풍만한 여주인은 곧 정신을 가다듬어 대답했다.
"아 글쎄 당신이 멧돼지 잡으러 떠난 후 소금장수녀석이 내가
잠든 새 우리 세간을 죄다 가지고 내뺏어요. 내 급히 이웃 점장
이에게 가서 물어 보았더니 점괘에 소금장수가 금속인이어서 쇠
로 만든 물건을 가지고 쫓아가면 곧 잡을 수 있다는 군요. 그래
서 이렇게 하고 나서는 길이에요."
남편은 매우 놀라며
"뭐? 그놈이 그랬어? 배은 망덕한 놈. 왜 얼른 나한테 알리지
않았소?"
이에 여인은 이고 있던 남비 하나를 남편에게 주며 말했다.
"당신은 이것을 가지고 그쪽으로 찾으러 가 보세요. 난 이쪽으
로 가 볼 테니까."
남편이 쭈그러진 남비 하나를 들고 금속인인 소금장수를 찾아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그제야 `후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아내는 부리나케 망부석이 되어 있을 소금 장수가 있는 곳으로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두대간^^........白頭大幹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