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談.野史.說話

궁궐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①

eorks 2019. 10. 10. 00:04
野談 ♡ 野史 ♡ 說話

궁궐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①
    『궁기마을 전우치 이야기 광양설화 / 설화 』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 충청도 태안 고을. 봄인데도 한여름보다도 더 날씨가 더운데다 벌써 한 달째 비가 오지 않아 농사일이 예사롭지 않았다. 농부들은 들에 나가 여기 저기에서 물길을 찾느라 분주하였지만 어쩌다 샘을 찾아도 찔끔찔끔 하는 통에 모내기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관아에서는 오히려 더 닦달이었다. 가뭄이 아니라도 춘궁기라 백성들의 고통이 심한데, 가뭄 때문에 모내기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을 사또가 아 예 고리대 놀이를 하고 있었다. 빌려간 돈을 제 때 갚지 못하면 집이며 전답을 빼앗아가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 부인이나 어린 딸을 강제로 끌고 가 겁탈하는 등 탐학이 극에 달하였다. 그런데도 고을 주민들은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반발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도 돈을 갚지 못한 한 농부의 집에 사또의 지시를 받은 사령들이 들이닥쳤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세간을 부수고 한바탕 난리를 치더니 갑자기 어린 딸을 끌고 가려 하였다. 어린 딸을 끌고 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 는 농부가 죽으면 죽었지 딸을 데려갈 수는 없다고 완강하 게 저지하자 사령들이 그를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팼다. 그때 어디선가 한 줄기 돌개바람이 일더니 그야말로 눈 깜 짝할 사이에 사령들을 내동댕이쳤다. 눈을 뜨고 있었는데 도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찌그 러진 갓을 쓴 것으로 보아 선비 같기는 한데, 하늘에서 구 름을 타고 내려온 것으로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전우치(田禹治 14??~15??)였다. 호는 우사(羽士). 이기(李?)의 송와잡설(松窩雜說)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전우치(田禹治)는 해서(海西) 사람이다. 배우지 않고서도 글에 능하며 시어(詩語)가 시원스러워 사람들은 모두 그가 도술(道術)이 있어서 귀신을 부린다고 말하였다. 현감 이길(李佶)은 전우치와 서로 아는 사이였다. 이길의 전장(田莊)이 부평(富平)에 있었는데, 가정(嘉靖 명 세종 (明世宗)의 연호, 1522~1566) 연간에 역질(疫疾)이 크게 성하여, 이길의 종과 이웃집 10여 인이 몹시 심하게 앓아 누웠었다. 이길이 전우치에게 병을 물리쳐 주기를 청하니, 전우치는 허락하면서, “그 지역에 앉을 만한 높은 언덕이 있소?”하고 물었다. “숲에 앉을 만한 정자가 있소”하니, 전우치는 “아무 날에 갈 터이니, 미리 정자에 좌석을 마련하고 기다 리시오.”하였다. 그날이 되어 전우치는 숲 밑에 앉아서 두어 마디 소리로 무엇을 부르는 것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온 이웃의 앓던 사람들이 갑자기 모두 일어나 앉으며 일시에 ‘나았다.’ 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병이 나아서, 다시 전염되는 걱 정이 없었다. 전우치가 부평에서 역귀를 쫓아낸 이야기는 삽시간에 전국 각지에 퍼졌다. 그리하여 전우치는 순식간에 도술가로 그 이름을 떨쳤다. ~다음에 계속~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