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談.野史.說話

궁궐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④

eorks 2019. 10. 13. 03:10
野談 ♡ 野史 ♡ 說話

궁궐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④
    『궁기마을 전우치 이야기 광양설화 / 설화 』 조긍섭(曺兢燮)의 ‘암서집(巖棲集)’에 보면 ‘김창강에 대한 만사[挽金滄江]’가 나오는데, 그 가운데 전우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시를 보면 전우치가 지었다는 시를 인용하였음 을 알 수 있다. 고원동망망진애(故園東望莽塵埃) 동쪽으로 고국을 바라보니 티끌에 흐리나 혼기하증조왕래(魂氣何曾阻往來) 혼과 기야 어찌 오고감이 막혔으랴. 응여전선가란학(應與田仙駕鸞鶴) *전선과 함께 난새와 학을 타고 월명삼십륙봉회(月明三十六峰回) 달 밝을 때 서른여섯 봉우리를 돌리라. *전선(田仙)은 조선조 중종ㆍ명종 연간에 송도(松都)에서 살았던 전우치(田禹治)를 말하는데, 신선술ㆍ의술ㆍ점술ㆍ 관상술 등에 정통하여 많은 전설을 남긴 인물이다. 당대의 기인이자 전무후무한 도술가요, 의적으로 잘 알려 진 전우치가 태안 땅에 나타났다. 그는 도술에 능하기에 구름을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탐관오리를 응징 하고 그들이 착취한 곡식을 백성들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농부에게서 전후 사정을 들은 전우치는 곧장 태안 관아로 가서 사또를 응징하였다. 그동안 저지른 악행을 생각하면 당장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이지만 전우치는 태안 사 또를 발가벗겨 나무에 매달았다. 전우치는 탐관오리를 응 징하기는 하지만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우치가 사람들을 시켜 관아의 창고를 열어보았는데 생각보다 곡식이 별로였다. 태안 사또 역시 조정의 중신들에게 뇌물로 바쳤는지 창고가 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전우치가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자 태안 사또는 어찌어찌 하여 줄을 풀더니 발가벗은 채로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어디론가 도망을 쳤다. 고을 주민들은 그 모습을 보고 모처럼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구름을 타고 하늘 위로 날아오른 전우치가 여기저기를 살 피더니 내린 곳이 지금의 광양시 태금면 태인리였다. 그리고는 뭐라 중얼거리니 그 일대에 커다란 궁궐이 생겼다. 전우치가 다시 술법을 부리니 사령들이 수십 명 생겨났다. 그들에게 공문을 한 장씩 쥐어주고는 각자에게 지시를 하 였다. 전우치의 지시를 받은 사령들은 각각 남원, 곡성, 구례, 하동 등지로 흩어졌다. 그들이 인근 고을의 사또들에게 전한 공문은 다름 아닌 어명이었다. 조곡을 한강으로 직접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각 고을 사또들이 의아해 하였지만 그렇다 고 어명을 어길 수도 없는 일, 서둘러 조곡을 배에 싣고 섬 진강을 내려가는데 어느 순간 주변 환경이 한강으로 변하 였다. 다들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한강 어귀에 내렸는데, 이번에는 멀리 궁궐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희한한 일도 다 있다 하면서도 조곡을 싣고 간 일꾼들은 어차피 조곡만 전 하면 되기 때문에 궁궐에 가서 조곡을 바치고는 돌아갔다. 전우치가 태안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섬진강 지형을 한강 으로 바꿔놓았던 것이다. 궁궐에는 순식간에 조곡 수천 석 이 모였다. 조정 관리로 변한 전우치가 다시 본래의 모습 으로 돌아오더니 조곡 수천 석을 모아 하늘 높이 올라갔다. 전우치가 사라진 뒤 허탈감에 사로잡혀 있던 태안 고을 사 람들에게 며칠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보 니 집집마다 쌀 한 섬씩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본 사람은 없지만 누가 보아도 그 일을 행한 사람은 전우치였다. 광양시 태금면 태인리에는 지금도 궁터자리가 남아 있다. 전우치가 태안으로 떠나자 궁궐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 지고 궁터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곳을 궁터마을로 불렀는데, 지금의 궁기마을이 바로 그 곳이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출처] 궁기마을 전우치 이야기 |작성자 월간 설화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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