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새신랑이 복상사하는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합환(合歡)
김 대감의 아들 김 초시와 유 승지의 딸 초리의 혼례식은
3일 동안 질펀하게 이어졌다.
부모들의 위세도 대단했지만 신랑신부도 출중했다.
김 대감 아들은 훤칠한 키에 이미 초시에 합격한 일등 신
랑감, 유 승지의 딸 초리도 빼어난 미모에 사서삼경을 떼
남자였다면 장원급제 감이었다.
열일곱, 건장한 체격의 새신랑은 선녀 같은 새신부를
하룻밤도 곱게 재우지 않았다. 두살 연상의 새신부도 음
양의 조화에 적응, 곧 합환(合歡)에 전율하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호사다마라던가. 입동이 지난 어느 날 밤. 만취한 김 초
시가 밤늦게 집에 와서 방문을 열자마자 의관을 후다닥 벗
어던지고 새색시의 치마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녀는 자
지러졌다. 발가벗은 새색시가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정신
을 차려보니, 새신랑이 배 위에서 잠이 들었다. 깨어나지
않는 영원한 잠!
복상사(腹上死)한 것이다. 의원을 불러와 침을 놓아도
김 초시는 깨어나지 않았다.
새색시는 자괴감에 목을 매려다가 하녀에게 발각되어
미수에 그쳤다.
시아버지 김 대감이 며느리의 등을 두드리며 “나도 피를
토하며 죽고 싶다마는 내 아들이 그걸 바라겠느냐. 너도
나도 굳건히 살아야 한다.” 명운사에서 사십구재를 지내며
주지스님의 설법에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느덧 삼년, 그동안 입었던 상복을 명운사에서 태워 연
기를 하늘로 보냈다. 유초리는 신방을 차렸던 별당에 혼자
기거하며 아침이면 안채로 가서 시아버지께 문안 인사를
드리고 부엌에 가서 찬모를 돕다가 다시 별당으로 돌아가
는 게 일과가 되었다. 보름, 초하루, 한달에 두번씩 하녀를
데리고 남편의 위패를 모셔둔 명운사에 가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다.
김 대감은 아침에 문안 인사를 오는 며느리의 눈을 살폈
다. 밤새 울어 퉁퉁 부은 초리의 눈두덩을 보는 김 대감은
가슴이 찢어졌다.
어느 겨울날, 김 대감은 친구이자 사돈인 유 승지를 찾
아갔다. 사랑방에서 술잔을 주고받다 김 대감이 조심스럽
게 며느리 얘기를 꺼냈다.
“며느리 보는 내가 애간장이 타서 죽을 지경이네. 탈상도
했으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 승지가 화를 벌컥 냈다.
“김 대감 무슨 소리를 하는 게요! 그것은 당신 집안의 수
치요. 우리 집안에도 먹칠을 하는 거요!”
김 대감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주막에서 하염없이 술을
마시다 벽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주모가,
“나으리 이제 그만 드시지요. 밤이 깊어 주막도 문 닫을
시간이구먼요.”
비틀비틀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기우뚱한 것까지는 어렴
풋한데 그 이후는 기억이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튿날
대낮, 안방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얼굴은 멍투성이
에 사지는 쑤셨다.
“아버님 깨셨군요.” 초리가 머리맡에 앉아 물수건으로 얼
굴을 닦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집에 왔지?”
“명운사의 법운스님이 아버님을 업고 왔습니다.”
다음날, 김 대감은 명운사로 올라가 주지스님 방에서 차
를 마시며 법운스님을 맞아 인사를 했다.
“내 생명의 은인일세.” 법운스님은 웃으며 합장을 했다.
논 다섯마지기 땅문서를 주지스님에게 내밀며,
“내년 봄에 개수할 때 보태 쓰십시오.”
이십년 전 명운사 일주문 앞 포대기에 쌓인 핏덩이를
주지스님이 안고 와서 키운 게 바로 법운스님이다.
그해 겨울, 아침 인사를 오는 며느리 눈이 붓지 않았고
얼굴의 수심도 사라졌지만 며느리 얼굴에 화색이 도는 이
유를 알고 김 대감은 낙담했다. 밤이 깊어지면 간부(姦夫)
가 담을 넘어와 며느리 방으로 잠입하는 것이다. 시퍼렇게
간 낫을 들고 담 밑에 숨었다가 간부를 잡은 김 대감은 소
스라치게 놀랐다.
꽃 피는 봄이 왔다. 까치고개 아래 골짜기 널찍한 바위
에서 혼례식이 열렸다. 신부 유초리, 신랑 법운, 주례는 명
운사 주지. 하객은 김 대감과 유 승지 딱 두사람. 냉수 한
그릇 떠놓고 혼례를 치렀다. 신랑신부는 주례와 하객 두
사람에게 큰절을 올리고 까치고개를 너머 멀리 사라졌다.
신랑신부 단봇짐 속엔 조선 팔도강산 어디든지 정착하
여 논밭 오십여마지기를 살 수 있는 돈이 들어 있었다.
김 대감이 마련해준 것이다. 남은 세사람은 주막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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