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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낏골에 얽힌 슬픈 전설

eorks 2019. 10. 17.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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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낏골에 얽힌 슬픈 전설
    『비낏골에 얽힌 슬픈 전설 고흥설화 / 설화』 고흥 동강면 마륜리에는 비낏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마치에서 원등까지 약 3㎞에 이르는 골짜기인데, 1800년 대까지만 해도 이곳에 숲이 울창하여 호랑이가 나타났다 고 한다. 호랑이까지 나타난다는 말이 있어 한동안 이곳에 는 사람들이 살지 못하였다. 언젠가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 비낏골에 들어와 살려고 하였다. 그러자 인근 마을 사람들이 그 사람을 말렸다. “이보쇼. 그곳에는 대낮에도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말이 있소. 그런 곳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오.” 얼핏 보기에도 기골이 장대한 그 청년은 마을 사람들의 경 고를 무시하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터파기를 시작 하던 청년이 느닷없이 혼비백산하여 마을로 달려왔다. “피, 피가, 피가 나와요!” 마을 사람들이 달려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청년이 땅을 판 곳에 피처럼 보이는 시뻘건 흙이 나왔다. 대경실색한 마을 사람들은 서둘러 땅을 메우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 후 사람들은 그곳을 핏기가 있는 흙이 나왔다 하여 핏기 골이라 하였는데, ‘핏기’가 ‘비끼’로 변하였다고 한다. 비낏골에는 또 다른 유래가 전해온다. 옛날부터 비낏골은 뱀골재와 더불어 고흥을 지나가는 중요한 길이었다. 그래 서 왜구들도 고흥에서 낙안이나 순천으로 가려면 반드시 비낏골을 지나야 했다. 그러다 보니 비낏골을 지나가려는 왜구들과 지키려는 우리 편 사이에 크고 작은 전투가 많이 벌어졌다. 임진왜란 때도 그곳에서 왜군들과 전투가 많이 벌어졌는데, 왜군은 물론 우리 쪽 희생자들도 많아서 피가 강처럼 흘렀 다고 한다. 그래서 비낏골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빛나는 승리를 거둔 주역 가운데 상당수가 고흥 출신 장군들과 수병들이었다. 물론 희생자의 대부분도 고흥 출신이었다. 그러다 보니 왜군 사 이에서는 고흥(당시에는 흥양) 사람들에 대한 증오가 컸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왜군들이 특공대를 보내 고흥의 진산 가운데 하나인 두방산 줄기에 대못을 박았다. 고흥의 정기 를 눌러 다시는 방해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왜군 특공대들이 두방산 줄기 가운데 지관이 짚어준 혈에 커다란 대못을 박았다. 그런데 아무리 박으려 해도 대못만 꺾이고 잘 들어가지 않 았다. 망치질 하나 못한다고 대장이 호통을 쳤다. 그래서 대장이 직접 나섰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군 특공대 십 여 명이 반나절 동안 대못을 박으려고 안간 힘을 쓴 결과 결국 대못이 박혔다. 그런데 대못이 깊숙이 박히자마자 갑자기 새빨간 피가 흘 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마치 심장을 관통한 듯 핏줄기는 점차 굵어져서 마치 분수처럼 피를 뿜어냈다. 그것을 본 왜군들이 질겁을 하여 도망가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 다고 한다. 비낏골에는 서낭당이 있는데, 원등 저수지 상류 도로변에 있다. 옛날 이곳에 가난한 선비 한 명이 살았다. 그러나 재 주가 신통치 않았는지 번번이 과거에 낙방하였다. 결혼을 하여서도 하루 종일 과거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런 남편만 바라보며 부인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였다. 글공부 하는 남편 뒷바라지 하랴 먹고 사는 일 책임지랴 힘들었지만 그래도 남편이 과거에 급제하기를 기다리며 부인은 참고 또 참았다. 벌써 과거공부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부인은 점차 남편 이 글 읽는 소리마저 지겹게 느껴졌다. 차라리 글공부를 그 만두고 먹고사는 문제나 해결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 역시 부인이 일을 나갔다. 그러면서 마당에 피를 널어놓았다. 당시에는 가난한 집에서 피를 주식으로 삼았던 터라 피를 말리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부인이 나가면서 선비에게 당부하였다. “여보, 비가 올지 모르니 피 좀 잘 보세요. 혹시 비가 오려 하면 부엌으로 거둬 들이구요.” 그렇게 신신당부하고 나갔는데 돌아와 보니 피가 엉망진 창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는데도 선비가 글공부에만 정신이 팔려 소나기 온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 이다. 결국 견디다 못한 부인은 선비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동 안 참았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해버린 것이다. 당신 같은 사람을 남편이라 믿고 살다가는 쪽박 차기 쉽겠다는 저주 까지 퍼붓고 떠났다. 독심을 품고 공부에 전념한 선비는 드디어 과거에 급제하 게 되었다. 금의환향을 하는데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10년 넘게 공부한 끝에 어렵게 과거에 급제한 탓인지 인근 고을 사람들이 다 나와서 축하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서 누군가가 선비에게 다가왔다. 부인이었다. “여보, 잘못했어요. 제가 참을성이 부족했어요. 이제 우리 다시 예전처럼 오순도순 살아요.” 그러자 부인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비가 말하 였다. “내 당신을 고생시킨 것은 미안하게 생각하오. 하지만 그 렇다고 해서 남편을 버리고 도망간 당신을 용서할 수는 없소.” 그러더니 선비는 자신을 축하해주러 온 사람들과 함께 총 총히 가버렸다. 선비가 떠난 후에도 부인은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고 마치 돌부처처럼 서 있었다. 그러더니 얼마 후 갑자기 그 자리에 쓰러지더니 숨지고 말았다. 부인이 쓰러져 죽은 자리에 지나가는 길손들이 돌을 던져 돌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지금의 서낭당이다.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