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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영배(戒盈杯) ②

eorks 2019. 10. 2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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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영배(戒盈杯) ②
    2. 우삼돌(禹三乭)―. 우명옥의 본명이다. 그는 강원도 홍천 산골에서 질그릇을 구워내며 살았다. 어느덧 나이 스물 셋. 하루는 사기로 유명한 분원으로 가서 깨끗한 사기를 만들 생각으로 집을 떠나 광주분원 외장으로 있는 지영감의 제 자가 되었다. 그러나 삼돌이는 여러 동료들에게 구박과 학대를 받으면 서 새벽부터 밤까지 흙 반죽에 그릇 모형 만드는 일을 열심 히 했다. 그러는 사이 기술도 일취 월장하여 보는 사람마다 눈들을 크게 뜨고 혀를 내둘렀다. 이해 봄, 삼돌은 나라에 진상 바칠 반상을 전담해 만들게 되었다. 스승 지외장은 옷 한 벌을 새로 해 입히고 관례를 시키면서 이름으로 명옥(明玉)이라고 고쳐 주었다. 그러나 우명옥에 대한 동료들의 시기 질투는 나날이 거듭 되었다. 지성이면 감천, 우명옥이 만든 반상은 임금께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아 명옥이에게 특별상금까지 내렸다. 지외장도 기뻐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명옥의 솜씨를 치하하는 동료 들도 뒷전에서는 어떻게 하면 명옥을 몹쓸 놈으로 만드느냐, 궁리에 바빴다. 마침내 동료들의 음모가 무르익었다. 어느날 동료들은 명 옥에게 뱃놀이를 가자고 유혹했다. 몇 번 사양 끝에 마지 못해 따라나선 명옥은 아름다운 기생들의 수발을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번 맛들인 기생의 풍류―. 그로부 터 우명옥은 색주가 집에 파묻혀 세월 가는 줄 몰랐다. 날이 갈수록 수정에 있던 돈은 톡톡 털렸고 이제는 술과 계 집에게 바칠 돈이 필요하자 상사발 상대접같은 보통 물건을 마구 구워내어 돈을 만들어 색주가에 바쳤다. 더 큰 돈이 필요해진 우명옥은 나쁜 동료들과 함께 전라도 지방으로 행상을 나갔다. 과욕이었다. 태풍을 만나고 해적을 만났다. 구사일생으로 겨우 목숨만은 건졌다. 간신히 분원으로 돌아오니 50호 가량 되던 분원 마을도 폭풍우로 쓸려나가고 폐허가 되어 버렸다. 살아 돌아온 사 람들과 함께 마을을 복구하느라고 애를 썼다. 우명옥도 마 을 사람과 동료들을 격려하며 마을 재건에 두팔을 걷어부 쳤다. 그런데 날이 가면서 우명옥 자신은 산위로 슬슬 돌아다니 거나 나무밑으로 왔다갔다 하며 실성한 사람처럼 굴었다. 스승 지외장은 그런 우명옥을 바라보며 걱정했다. 하루는 밤중에 우물에서 물 푸는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 가보니 우명옥이 벌거벗고 두레박에 물을 길어올려서는 머리끝에서부터 들이붓는 것이었다. 지외장은 기가 막혔다. 정말 우명옥이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로부터 또 몇 달이 흘렀다. 하루는 우명옥이 또 두레박 으로 물을 길어올려 온몸에 퍼부었다. "천지신명이시여! 이 세상 사람들을 망치는 술을 조금씩 만 먹게 하는 술잔을 하나 만들게 해 줍소서. 그러면 이놈 은 그 술잔과 같이 목숨을 바치겠소이다. 이놈의 한 가지 소원을 이루게 해 주소서!" 지외장은 비로소 우명옥의 비장한 결심을 목격하고 안심 했다. 그런지 얼마 뒤, 우명옥은 지외장 앞에 조그만 술잔 하나 를 내밀었다. "선생님, 그동안 보살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에 이런 술잔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앙증맞은 술잔이었다. 명옥은 그 술잔에 가득 물을 부었다. "선생님, 물을 가득 부으니 물이 없어졌습니다." "정말 그렇구나!" 지외장도 놀랐다. "하지만 술잔에 술을 부었는데 술이 없어지면 어찌 하나?" "한번 보십시오." 명옥은 술잔에 7,8부쯤 물을 부었다. "이제는 물이 안없어집니다. 이 술잔을 제가 계영배(戒 盈杯)라고 이름을 부쳤습니다." 지외장은 계영배를 만든 우명옥의 재주에 거듭 감탄했다. 그리고 그 계영배는 우명옥의 손에 의해 중앙 높은 신분 을 가진 사람에게 진상되었고 그 계영배는 임상옥의 육순 잔치 기념품으로 전해졌던 것이다. "참 아까운 사람을 잃어 버렸소이다. 선생 되시는 지외장 의 마음은 다시 말할 것도 없소이다만 계영배의 참뜻을 진 즉 알았더라면 내가 계영배를 깨뜨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 을, 우리나라의 명인 한 사람을 내가 죽였소이다. 자, 이것 으로 약소하나마 우선생의 대소상이나 섭섭지 않게 지내도 록 하시오. 그리고 이 근처의 지내기 어려운 양반들에게 조금 성의를 베풀고 가겠소이다." 당대의 거상 임상옥은 철종 6년(1855) 5월 29일 77세의 고령으로 의주 본제(本第)에서 장서(長逝)하였다. 임상옥의 문집인 가포집에 다음과 같은 만시(輓詩)가 있 다.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재물에 있어서는 평평하기 물과 같고 사람은 곧기가 저울대와 같도다 이 이야기는 최인호 소설가의 장편소설 '상도'(商道)에도 나온다. [인물소개] 林尙沃 : 1779(정조 3)∼1855(철종 6)[조선왕조] 무역상인. 자는 景若. 호는 稼圃, 본관은 전주. 의주 출신. 청나라를 내왕하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1696년(정조 20) 부터 상업에 종사, 1810년(순조 10) 이조판서 朴宗慶의 정 치적 권력을 배경삼아 우리나라 최초로 국경지방에서 향후 5년간 인삼의 무역권을 동료 상인 5명과 함께 독점, 홍경래 의 난이 일어나자 관군에 협조했다. 1821년 辨誣使의 수행원으로 청나라에 갔을 때 북경 상인 들의 불매동맹을 교묘한 방법으로 분쇄하고 원가의 수십배 로 매각하는 등 막대한 재화를 벌어 치부, 조정에서는 五 衛將에 임명하고, 完營(全州營內)의 中軍에 補했으나 사양, 薦擧를 받고 1832년(순조 32) 郭山郡守가 되고 1834년 義 州의 수재민을 구제한 공으로 이듬해 龜城府使에 발탁되었 으나, 備邊司의 論斥을 받아 사퇴한 후 貧民救濟와 詩酒로 餘生을 보냈다. 當代의 大富豪로 貧民事業에 힘썼으므로 名望이 높아 林郭山이라면 당시 義州뿐 아니라 關西地方에 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鶴峰祠에 제향. 著書 : 稼圃集, 寂中日記/文獻 : 肅宗實錄, 文一平 林尙沃 (朝鮮名人傳), 劉敎聖 林尙沃(人物韓國史 Ⅴ), 韓國學大百 科事典 第2卷 人物 610∼611쪽, 庾秋崗, 韓國代表野談史話 ⑧, 1973년 12월 10일 재판, 書正出版社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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