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談.野史.說話

형장(刑場)에 핀 꽃 ①

eorks 2019. 10. 23. 22:55
野談 ♡ 野史 ♡ 說話

형장(刑場)에 핀 꽃 ①
    1. 조선왕조는 제15대 광해주, 제16대 인조왕 2대에 걸쳐 북방에서 일어난 호적(胡敵)의 침구(侵寇)로 엄청난 국난 에 봉착하게 된다. 침략자는 국호를 금(金)이라고 자칭한 호족의 추장 누르 하치. 이보다 앞서 1592년(선조 25년) 4월, 토요토미 히데요시 를 괴수로 하는 일본침략군 15만 이 조선 천지를 짓밟기 전후 7년, 일컬어 임진·정유재란, 나라 안은 쑥밭이 되었고 민심은 흉흉했다. 간신히 민심을 수습하고 폐허에 새터전을 마련하는 등 겨우 십여년의 세월이 흘렀을 즈음 조선 반도 북방에서 일 어난 신흥 침략 세력은 다시금 이 땅에 불질을 해 왔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16년 남짓. 즉 1616년(광해주 8년), 이번에는 만주땅 건주위(建州衛) 지금의 심양지방 동쪽을 근거지로 요동 지방까지 세를 넓혔던 호적의 추장 누루하 치가 명(明)나라 침략에 나섰고 누루하치의 침략을 받은 명 나라는 조선에 구원병을 요청, 마침내 후금을 상대로 한 명조(明朝) 양군의 저항 전쟁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른바 정묘호란의 발발이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인조 반정이 일어나 광해주가 폐출되었다. 이어 인조 5년에 1627년 정월 후금은 3만의 군병으로 조선 침략에 나섰다.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후금군에 밀려 조선군은 패전을 거 듭했고, 인조 14년(1636년) 4월 국호를 청(淸)으로 개칭한 금은 다시금 13만 명의 대군을 보내 침략을 감행, 마침내 남한산성으로 파천한 인조는 세부득이 하여 즉위 15년 (1637) 정월 30일 농성중이던 남한산성에서 나와 삼전도 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했다. ~다음에 계속~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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