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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장(刑場)에 핀 꽃 ②

eorks 2019. 10. 2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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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장(刑場)에 핀 꽃 ②
    2. 전쟁의 피바람이 휩쓸고 간 폐허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백성들은 모진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별안간 호인들이 쳐들어온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서 울 장안 안팎은 물론이요 경기도 일대와 강화도까지도 발 칵 뒤집혔고 거듭되는 전화(戰禍)에 백성들은 하늘을 우러 러 장탄식을 거듭했다.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병자호란이 끝난 이듬해인 정축년 9월 보름께의 일이었다. 비록 전쟁이 휩쓸고 갔다지만 도성에는 임금의 환궁을 비롯 관아들이 돌아와 제 자리를 잡았고 피난 갔던 백성들 은 옛터전을 다듬어 집을 짓고 저자를 여는 등 생업에 몰두 했다. 수도 한양에는 순라꾼이 순찰을 돌았고 포장이 인솔하는 포졸들은 도둑을 막는 등 치안 유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사람이 모이니 살인·강도며 도박 등 나라에서 금지하는 범죄가 횡행했고 선량한 백성을 괴롭히는 부랑자들은 도 처에서 주먹다짐을 하며 난리 법석을 쳤다. 이날도 좌포청의 명포교로 명성이 자자하던 김완식(金完 植) 포도군관은 부하 포도군사 한 사람을 데리고 종로 네 거리를 거쳐 광교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당시 좌포청(좌 포도청의 약칭)은 지금의 광화문우체국 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서부와 북부 그리고 경기우도 일원의 치안을 담 당했다. 당시 한성부의 또 하나의 포도청인 우포청(우포도청의 약 칭)은 지금의 단성사 위쪽 수은동 소방서 자리에 있었다. 우포청의 관할구역은 중부·동부·남부 그리고 경기좌도 일 원이었다. 논공행상이 엄격했다. 포도청에서는 5개월 내에 강도 1∼2명이나 절도 4∼5명을 체포하면 상을 주었다. 비록 기일 내에 전부 체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후 1∼2개월 내에 체포하면 상을 주었다. 또한 좌포도장 관할 지역의 도적을 우포도장이 체포해도 상을 주었고, 우포도장 관할 구역의 도적을 좌포도장이 체포하여도 상을 누었다. 포도대장은 무신 중에서 오늘날의 중장급에서 나오고 문 신은 그 소임을 맡지 못했다. 또 좌·우 포장이 일시에 있기 도 하고, 한 사람이 좌·우를 겸하고 있기도 했다. 포장 아래 참모격인 종사관이 두 사람씩 있었으나 숙종때부터 한 사 람을 더 두었다. 얼마전 모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드라마 '다모'에 나오는 다모는 당시의 여자경찰이고 그들 을 지휘하는 지휘관이 포도대장의 참모격인 종사관이었다. 인원만 해도 좌우 각각 포도대장과 종사관 아래 부장이 26명씩, 제복을 입거나 사복을 입고 사찰이나 수사를 담당 했다. 조서 작성 등 문서를 담당하는 서원(書員)이 4명씩, 그 밑에 심부름을 하는 사령(使令)이 3명씩, 말단에 64명 씩의 군사가 배속되어 있었다. 포도청에서 관할하는 경기 좌·우도 중 한양도성에서 10리 지경 즉 성저(城底) 10리 지 경을 전담하는 병력도 37명씩 배정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명칭도 포도대장을 생략하여 포장으로 부르는 것이 상례 였고, 포도부장이나 포도군관은 포교, 포도군사는 포졸로 불렀다. 여기서도 상용화된 호칭을 쓰기로 한다. "포교나으리! 저기 숨이 턱에 닿아서 달려오고 있는 게 이차돌 포졸같습니다요!" 그랬다. 함께 가던 포졸 김개동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들갑을 떨었다. "김포교 나으리, 마침 잘 만나 뵈었습니다!" "난데 없이 잘 만났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큰일 났습니다. 잠깐 보아 주셔야 겠습니다요." "이 사람이 뜬금 없이 뭘 봐 달라는 게야!" "큰일이 났습니다요, 큰일이...." 안색이 파랗게 질린 것을 보면 무언가 큰 사단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부부 싸움이라면 가보나 마날세!" 김완식 포교의 태도가 냉냉하자 이차돌 포졸은 손사래를 치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사람이 죽었다구요. 사람이..." "엣기 이 사람, 사람이 죽었으면 얼른 염장이나 불러댈 것이지 바쁜 사람 붙잡고 무슨 사설인가!." 김완식 포교가 영 대거리를 앉자 기가 넘어갈 듯이 이포 졸이 언성을 드높였다. "아닙니다, 포교나으리, 누군가가 저쪽 다방골 변첨지 변부자를 죽였습니다요." "뭐, 변부자가 죽었어?" "그렇습니다요." "범인은 누구야?" "하 참 포교나으리두, 누가 죽인 것을 알면 포교나으리께 여쭐께 무어에요? 누가 죽인 것을 모르니까 야단이지요." "그럼 아무도 손을 안 댔겠구나?" "웬걸입쇼. 백목다리께 젊은 서방님 박창호 포교 나리께 서 손을 대셨는데 범인을 잡지 못해 애를 먹고 계신댑쇼." "박포교가 손을 댔다구…?" 김완식 포교는 난처했다. 원래 포도청 포교들은 나름대로 내려오는 불문률같은 풍습이 있었다. 즉 다른 사람이 손을 댄 사건에 대해서는 일체 아는 체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박포교라면 김완식 포교와는 집안끼리도 세교가 있을 뿐 아니라 박포교는 나이도 김포교보다는 어리고 포 도청 근무 경력도 일천한지라 곤경을 겪고 있을 게 뻔했다. "알았다. 앞장서거라!" "네잇!" 김완식 포교는 이차돌 포졸과 김개동 포졸을 앞세우고 다방골 변부자네로 달렸다. ~다음에 계속~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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