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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구의 비거(飛車) ②

eorks 2019. 10. 3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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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구의 비거(飛車) ②
    2. 그로부터 열흘 후, 정평구와 박군관은 전라우도 수군 본 영이 있는 전주 관아에 도착하여 이억기 절도사를 뵈었다. 이억기는 이날 밤, 수하 박군관으로부터 정평구 별군관에 대한 자세한 인적 사항을 듣고 만족해 했다. 때는 조선왕조 제13대 왕 명종 시절, 강원도 횡성지방 산 골에 겨울이 찾아오고 온 세상이 하얗게 눈에 덮였다. 그 날 밤도 마을 사람들은 횃불을 켜고 야간 순찰(夜巡)을 도느라 긴장하고 있었다. 이해 정초부터 범이 나타나 사람들을 해치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은 전전긍긍 호환(虎患)에 대비하고 있었다. 윗동네 아랫동네 할 것 없이 틈만 나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매일처럼 호환에 대비할 궁리에 골몰했다. 아무리 두 눈을 부라리고 밤새 야간 순찰을 돌았지만 호 환은 끊이지 않고 계속 발생했다. 사람들은 산신령에게 제사를 지내자는 둥 공론이 분분했 고, 형편이 좀 괜찮은 사람은 제수용으로 돼지 한 마리를 내놓겠다고 했다. 어른들이 설왕설래하고 있을 때였다. 조그만 아이가 톡 튀어나오더니 사람들 앞에 불쑥 나섰다. "아저씨들, 그 범을 잡읍시다!" 조그만 아이의 당돌한 제의에 어른들은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아니, 이 아이가 뉘집 자식인가?" 그 때 한 사람이 아는 체를 했다. "너, 안골 사는 정춘수의 아들 평구가 아니냐?" "네, 제가 평구입니다." "열 살밖에 안 된 네가 감히 범을 잡자니, 그 말 제 정신 으로 하는 게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산신령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범이 나타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제 겨우 열 살인 소년 정평구의 말이 참으로 맹랑했다. 다른 어른이 기막히다는 표정을 하고 가로막고 나섰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그래, 범을 잡자니 어떻게 범을 잡아? 공연히 범을 잡는다고 설쳤다가는 가뜩이나 범한테 끌려간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자칫 하다가는 우리 마을이 그냥 결단이 나고 말아." 또 다른 어른이 맞장구를 쳤다. "암! 그렇고 말고. 범은 산중 영웅이야. 산신령님이 다 시 키시는 일이란 말이다. 여보게들! 이 어린것이 무엇을 안다 고 신경을 쓰나? 어서 산신제나 서두르세." 그러나 공손히 두 손을 마주 잡은 정평구 소년은 결연한 빛을 띄우며 동네 어른들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제가 무슨 뾰족한 수가 있어서 아저씨들 앞에 범을 잡자 고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저도 마을의 할아버지나 아저씨 와 똑같이 걱정이 되어서 말씀을 드린 겁니다." 한 어른이 눈을 부릅뜨고 언성을 높였다. "쥐방울만한 애녀석이 건방지기가 짝이 없구나. 네가 나 설 자리가 아니다. 썩 물러가!" 그러나 정평구 소년은 지지 않고 소신을 펼쳤다. "아저씨들께선 범을 산중 영웅이라 하셨지요?" "버르장머리 없이 어디서 자꾸 나서? 나서길..." "범을 산중 영웅이라고 하시지만 범은 범, 짐승이란 말씀 입니다." "이놈 보게, 아니 우리가 범을 짐승이라고 했지 언제 사 람이라고 했더냐! 응?" "글세 제 말씀 좀 들어보시지요, 네 아저씨들..." 하도 정평구 소년의 말이 간절하자 한 어른이 동리 사람 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아이에게 무슨 생각이 있는 것같은데 우리 한번 들어 나 보세." "그래… 그래… 들어나 보세" 그리하여 어른들은 정평구 소년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 나 하고 얼굴을 주시했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 아닙니까? 그렇다 면 사람은 범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영장인데 사람이 기르 는 개, 돼지, 송아지를 함부로 잡아먹는 것도 용서할 수 없 는 일이거늘 항차 사람을 잡아먹다니요, 그런 못된 짐승을 잡아 없애야지 산신령에게 제를 지내다니 그게 말이 되겠 습니까?" 정평구 소년의 말을 듣는 마을 어른들은 한 대 얻어맞은 형국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제게 그 범을 단번에 잡을 계책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철없는 어린아이이기는 합니다마는 어른들 앞에 어찌 방 자한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마을 어른들은 계책이 있다는 정평구 소년의 말에 점점 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평소에도 정평구 소년이 뛰어난 두뇌를 가진 신동이라는 소문이 근동에까지 자자했고 그런 아들을 둔 아버지 정춘수를 부러워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정평구 소년은 여섯, 일곱 살 때에 맹자 논어와 같은 어려운 글을 읽어 냈고, 그가 사는 두메산골까지 흘러들어온 거지에게 밥을 주는가 하면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펀펀히 굶는 서당의 동접 아이들 중 가장 가난한 집의 복남이를 집으로 데려다가 따뜻한 밥을 먹이는가 하면 오동지 섣달 설한풍 이 불어대는 한 겨울에 홑옷을 입고 달달달 떠는 정경을 보다 못해 제 집에 데려다가 아들 평구에게 입히려고 모친 이 준비해 둔 겹옷을 꺼내 복남이에게 입히는 등 인정 또한 남달라 마을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같은 서당에서 공부하는 동접 중 결석 한 아이가 있으면 그 까닭을 물어서 만일 병이 나서 못 나 왔다면 훈장에게 말해 병문안을 갔다. 어느날인가 가장 가 깝게 지내는 길남이란 아이가 고열로 신음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과연 길남이는 온몸이 고열로 펄 펄 끓었다. 이때 아들 길남의 병세가 걱정이 된 길남이 어 머니는 무당을 불러서 푸닥거리 준비에 바빴다. 평구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길남의 어머니에게 수건 하나 달라고 청했다. 푸닥거리 준비에 바빴던 길남 어머니는 귀 찮은 듯 낯을 찡그리면서도 평구의 청을 들어 주었다. 함지 박에 찬물을 가득 담아 수건을 적셔서 방으로 들어간 평구 는 길남의 이마에 차디찬 수건을 갖다 대었다. 함지박 물이 뜨뜻해지면 다시 냇물로 가서 찬물을 길어다가 수건을 차게 적셔가지고 길남의 이마를 식혀 주었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차례, 길남의 이마에서 열이 내리고 이어 온몸의 열도 차차 식어 갔다. 얼마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길남은 문밖으로 나가 어머니를 찾았다. 고열 때문에 끙끙 앓던 아들 길남이 멀쩡한 몸으로 문밖에 나온 것을 본 길남 어머니는 기절하 듯 놀랐다. "아니, 네가 어떻게..." "어머니, 평구가 고쳐 주었어요. 이제 다 낳았어요. 배고 파요, 밥 좀 주세요." 길남어머니는 신령님의 덕택이라며 계속 푸닥거리를 하 겠다는 것이었다. "길남 어머니, 푸닥거리 소용없어요. 길남이는 이제 완쾌 했어요. 어서 길남이 밥이나 채려다 주세요." 길남은 믿어지지 않은 듯 괴이쩍어 하는 어머니를 위해 평구에게 고열에서 완쾌된 까닭을 물었다. "네가 의원도 아닌데, 어떻게 내 몸의 열을 내리게 했단 말이니?" "그게 무에 이상해? 옛 서책에 보면 두냉 무통(頭冷無痛) 이라고 했어. 머리는 차게 하면 아프지 않다는 것이지. 열 이란 화기야. 화는 불인데 불은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니까 온몸에 생기는 화기가 머리로 올라가는 것을 찬 것으로 식 히면 열기가 빠져 머리도 안 아프고 온몸도 가벼워질 것이 아니냐? 그래서 고열이 떨어진 것이다. 알겠니?" 푸닥거리를 하려던 길남 어머니도 평구의 말을 듣고는 무당을 돌려보냈고, 마침 집에 있던 열네살 난 길남의 누 이는 문밖에서 평구의 말을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수십일 후에 범의 소동이 일어났고 정평구 소년이 마을 어른들 앞에 나타나 산신제를 지내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며 범을 잡자고 제의를 한 것이었다. 이 때 뒤늦게 자리를 함께 했던 서당 훈장과 길남이 아버 지가 앞으로 나섰다. "여러분! 내 비록 마을 서당의 훈장 노릇을 하고 있소만, 이 아이는 비록 연치 어리나 범상한 아이가 아니올시다. 평구는 우리 고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안에서도 둘도 없는 신동이요. 그러니 공연히 떠들지들 말고 이 아이에게 범을 잡을 계책이나 들어봅시다!" "나 길남이 아빕니다. 훈장님 말씀이 옳소이다. 범을 어 떻게 잡을 것인지 계책을 들어봅시다!" 좌중은 조용해졌고 정평구 소년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여러 어르신들, 계책이란 게 별게 아닙니다. 범이 다니는 길에 함정을 파자는 것입니다." 한 어른이 손뼉을 치며 동감을 표시했다. "옳지! 웅덩이를 파자 이 말이로구나!" 그러자 또 한 사람이 두팔을 가로 저으며 삿대질을 했다. "헹! 범이란 짐승이 호락호락 웅덩이에 빠질 것같은가? 자칫하다가는 화가 난 범 때문에 우리 동네는 말할 것도 없고 근동도 폐동 되고 마네. 웅덩이 파자는 거, 난 반대야!" 그런데 서당 훈장이 버럭 호통을 쳤다. "예이 변변치 못한 인사들같으니라구. 길게 말할 것 없이 모두 함정 파러 갑시다." "예, 어른신들. 웅덩이를 파 놓고 그 위에다가 마른 나뭇 가지나 마른 수수깡을 발처럼 엉성하게 엮어서 덮어놓고 그 위에 개를 잡아서 고기는 우리가 다 나누어 먹고 껍데 기와 털에다가 피를 묻혀서 덮어놓으면 범이 그것을 먹으 려고 뛰어오르다가 범이 그 구덩이로 빠질 게 아니겠습니 까?" 이리하여 마을에서는 정평구 소년의 계책대로 여기 저기 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바로 그날 밤. 문제의 범이 어슬렁어슬렁 마을로 내려왔다. 오다 보니 시뻘건 고기덩이가 눈에 띄었다. 군침이 돌았다. 범이 가장 좋아하는 개고기였던 것이다. 범은 콧구멍을 벌 렁벌렁거리면서 개고기를 한 참 동안 노리고 있었다. 이윽 고 꼬리를 샅에다 바짝 끼고서 앞발 하나를 번쩍 들어 땅바 닥을 두서너 번 북북 긁어 홱홱 흙덩이를 던져 보더니 어흥 어흥 소리를 산이 찌릉찌릉 울리도록 몇 번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고깃덩이를 향해서 껑충 뛰어 앞발로 고깃덩이를 움켜잡으려는 순간, 와루루 소리를 내며 구멍에 덮어놓은 수수깡이 웅덩이 속으로 쑥 빠지는 동시에 범도 웅덩이 속 으로 빠졌다. 범은 새빨갛게 번쩍거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사면을 둘 러보니 하늘이 돈짝만하게 쳐다 뵐 뿐이요, 제 몸은 깊숙한 웅덩이 속에 빠진 것을 깨달았다. 범은 미친 듯이 뛰어올라 보았으나 택도 없었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안 범은 밤새도록 어흥 어흥 하며 울부짖었다. "범이 웅덩이에 빠졌다!"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 안에 퍼지고 동네 사람들은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떨쳐 나왔다. 그러다가 방정맞은 사람 하나가 함정 가장자리를 왔다갔 다하며 까불다가 발이 쭉 미끄러져서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 "아이고- 사람 살려!"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빠진 사람의 팔 다리를 잡아 올리 려고 용을 썼으나 범이 잽싸게 뛰어 오르더니 그 사람의 발목을 물었다. "아이고- 나 죽는다!" 범은 발목을 물고 흔들어 대고 발목을 물린 사람은 요동 을 치고 야단이었다. 발목을 물린 마을 사람은 나중에는 기진맥진이 되어 버렸다. 자칫하면 범의 먹이가 될 판국이 었다. 그 광경을 곰곰이 지켜보던 정평구 소년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정평구 소년은 헛간에 세워 둔 길다란 장대와 아버지의 버선 한 짝을 장대 한편 끝에 씌워서 버선목을 단단히 동여 가지고 달음박질로 함 정 앞으로 뛰어왔다. 정평구 소년은 웅덩이 앞에 오더니 버선을 꿴 장대 끝을 범의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야, 이놈의 범아! 여기 새발 들어간다. 이 발이 그 발보다 더 큰 발이다!" 가뜩이나 독이 올라 있던 범은 악에 받쳐 물고 있던 동네 사람의 발목을 뱉고 장대 끝의 버선 짝을 물고 체머리를 흔들었다. "옜다 이놈 범아, 넌 이 장대나 씹어 먹어라!" 다행히 발목을 물렸던 동리 사람은 구조되었다. 그러나 사색이었다. 동리 사람이 마을로 후송하려고 들자 정평구 소년이 가로막았다. 정평구 소년은 우물에 가서 물 한 바가지를 떠다가 찬 물 을 얼굴에 뿌리고 물을 조금씩 그 사람 입에 흘려 넣어 주 었으며 여러 사람에게 팔, 다리를 주무르게 했다. 한참만에 정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린 그 사람은 범부터 찾았다. "범은 잡았네. 걱정 말고 어서 집에 가사 쉬게나." ~다음에 계속~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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