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 /헝가리 /제멜바이스의 발견(260)

eorks 2020. 2. 19. 00:16

세계기록유산 /헝가리 /제멜바이스의 발견
[Semmelweis’ discovery]

Semmelweis’ discovery

Semmelweis’ discov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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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melweis’ discovery

Semmelweis’ discovery

Semmelweis’ discovery


국가 : 헝가리(Hungary)
소장 및 관리기관 : 제멜바이스 박물관·도서관·기록보관소(Semmelweis Orvostörténeti Múzeum, Könyvtár és Levéltár)
등재연도 : 2013년
‘제멜바이스의 발견’은 1847년부터 1861년까지 제멜바이스(Ignaz Philipp Semmelweis, Semmelweis Ignác Fülöp, 1818~1865)가 산욕열(産褥熱)의 원인을 발견한 과정과 산욕열을 예방하기 위한 무균 예방법에 대해 기록한 자료들이다. 제멜바이스의 이론은 1858년부터 1861년까지 그가 쓴 여러 출판물을 통해 발표되었다. 이 인쇄물 컬렉션은 현재 의학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보존·전시하는 헝가리의 국립 수집 기관인 ‘제멜바이스 박물관·도서관·기록보관소(Semmelweis Orvostörténeti Múzeum, Könyvtár és Levéltár)’에 보관되어 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의학적 처치에 있어서 살균 예방법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서 알려지거나 정당성이 확립되지 않았다. 제멜바이스는 이 문제에 대하여 처음으로 설명하고, 의학 처치에 있어서 엄격한 무균 예방법을 최초로 도입한 의사이다. 제멜바이스는 산욕열 예방에 관해 역설하면서 이전까지 매우 높은 사망률을 기록했던 산욕열을 완벽하게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는 산욕기 감염의 병인(病因)이 무엇인지 특정하였고, 산모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이 철저하게 손을 소독한다면 감염을 완벽하게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제멜바이스가 제안한 예방법은 독창적인 것이었고 세계적으로 다소 더디게 수용되기는 했지만, 이러한 와중에도 제멜바이스의 발견이 의학적 타당성을 가진 성취임을 알아채고 이 현상에 대해 연구한 사람들도 있었다.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불가능성 :
이 자료는 완전히 고유하며, 모든 자료는 제멜바이스의 발견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는 기록이다. 기록물 가운데 산욕열의 원인에 대해 발표한 ‘1858년 판 『오르보시 헤틸러프(Orvosi Hetilap)』(1857년에 만들어진 헝가리 의학저널)’ (제1호)의 경우 고작 50부 미만이 헝가리와 다른 외국 도서관에 남아 있다.

「우터시트바니(Utasítvány a pesti m. k. egyetemi, 규정)」 (제2호) 사본은 제멜바이스가 헝가리 왕립페스트대학교(부다페스트)에서 의과대학 학생과 조산원을 대상으로 그가 도입한 예방법에 대해서 가르치고자 작성한 인쇄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사본이다. 이 사본은 제멜바이스의 발견을 서술한 최초의 인쇄 출판물이나 기록은 아니지만 그가 학생과 직원 교육을 목적으로 작성한 자료로는 유일한 것으로서 그의 이론이 매우 잘 요약된 간행물이다. 이 문서는 대체불가능하다.

1861년 출간된 ‘『산욕열의 원인, 이해, 예방(Die Atiologie, Der Begriff und die Prophylaxis des Kindbettfiebers)』의 원본 판본’(제3호)은 유명한 도서관이나 과학 컬렉션에서도 구하기 힘든 희귀본이다. 오늘날, 헝가리의 공공 컬렉션에 5부가 보관되어 있고, 오스트리아에 3부, 영국에 2부, 이탈리아에 1부, 독일에 2부, 그리고 미국에 4부 정도가 남아 있다. 그러나 전 세계 어디에서도 원본 판본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아울러 민간 컬렉션에 대해서도 알려진 데이터가 없다.

그의 이론을 비평한 비평가들에게 보낸 ‘3가지 공개서한(제4호, 제5호, 제6호)’은 인쇄 부수가 매우 적다. 제멜바이스 박물관·도서관·기록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는 서한을 제외한다면 헝가리 이외의 지역에 한 부 또는 두 부 정도가 전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제멜바이스가 내놓은 이론의 파급 효과는 일련의 출판물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긴 하지만 1847년부터 1860년대 말까지 한동안 잠잠했다. 이 과정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이론에 관하여 등재된 기록유산을 포함한 다양한 출판물과 그의 발견에 관한 동시대의 몇몇 보고서를 보다 깊은 직관으로 연구해야 한다.

제멜바이스의 발견은 의학 발전의 측면에서 극적인 진보였다. 위생에 대한 올바르지 않은 이해로 산욕열은 19세기 병원에서 매우 흔한 질병이었고, 대부분의 경우 치명적이었다. 제멜바이스는 부검을 통해서, 산욕열로 사망한 산모의 신체 조직과 일반적인 농혈증(膿血症, pyemia)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신체 조직을 통해 치명적인 변화를 일으킨 원인의 유사성을 확인하였다. 그는 산모의 출산을 돕는 의사와 의과대학 학생들, 조산원들에게 당시로서는 가장 강력한 소독액인 클로르석회(chlorinated lime)로 손을 씻는 방법을 소개했다. 단순히 손을 소독하는 것만으로 산욕열로 인한 사망률을 10~35%에서 0~2%까지 현저하게 감소시킬 수 있었다.

제멜바이스는 1847년 자신의 발견에 대해서 강의하였고, 그에 관한 짧은 보고서인 「산부인과 병원의 산욕열 전염병 발생 원인에 대한 중요한 경험(Höchst wichtige Erfahrungen über die Aetiologie der an Gebäranstalten epidemischen Puerperalfieber)」이라는 제목으로 『빈 의사회 저널(Zeitschrift der k.k. Gesellschaft der Ärtzte zu Wien)』(제4호(1847/48) 제2권, 242~244페이지)에 게재했다. 이 보고서는 빈 종합병원에서 산욕열로 인한 치사율 감소의 이유가 염소액체를 이용한 손 소독법을 도입한 결과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Durch diese Thatsache (sic) ware vielleicht auch das Problem Gelöst...” “이러한 사실로 볼 때 문제는 아마도,.....로 인하여 해결된 듯하다”)

제멜바이스의 이런 견해를 지지한다는 발표가 1848년 한 해 동안 주요 저널에 등장하기는 하였다. 예를 들면 위와 동일한 의학 저널에 오스트리아 의사인 헤브라(Hebra, Ferdinand Ritter von Hebra, 1816~1880) 교수가 기고한 것이 있고, 두 번째로는 제멜바이스의 제자가 그의 이론을 설명하는 강의를 영국 런던 왕립 의학 및 외과 학회(Royal Medical and Surgical Society)에서 발표했는데 이 강의를 토대로 영국의 『랜싯(The Lancet)』에 기고한 것이 있으며, 세 번째로는 그의 옛 제자인 프리드리히 비거(F. Wieger)가 스트라스부르 『의학공보(Gazette Médicale de Strasbourg)』에 기고한 것이다.

그러나 제멜바이스는 빈에 있는 대부분의 동료들로부터 반박을 당했다. 1851년 빈 종합병원의 직위에서 면직된 후 그는 고향인 헝가리의 페슈트(Pest)로 돌아와 센트 로쿠시 병원(Szent Rókus Kórház)에서 내과의로 근무하였다. 새로운 병원에서도 동일한 예방법을 도입하였지만 기다리는 것은 빈에서와 똑같은 반응이었다.

1858년 그는 마침내 당시 헝가리에서 유력했던 한 의학 저널에 그의 발견에 관한 완벽한 설명을 발표하였다. 그 결과 헝가리의 산과 의사들의 일상적인 습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산욕열 발병 원인에 대한 그의 이론을 설명하고, 같은 병원에서 산욕열 예방을 위해 의과대학 학생이나 자신의 담당 병동 직원들에게 적용한 몇 가지 수칙을 요약한 1장짜리 인쇄물도 있다. 이 문서는 1861년 「우터시트바니」라는 이름으로 인쇄되었고 제멜바이스의 승인을 받아 인쇄했다.

1861년 그는 『산욕열의 원인, 이해, 예방』을 출간하면서 장문에 걸쳐 산욕열에 대해 상세하게 분석하고, 통계학적 수치를 제시하며 설명했다. 이러한 발견과 병리학적 사실들을 담은 이론은 독일어로 발표되었다. 약 100부가 인쇄된 『산욕열의 원인, 이해, 예방』은 제멜바이스의 발견에 관한 가장 중요한 학문적 이론서이다. 100개 이상의 통계 그래프를 그려 넣고, 증상과 부검을 통한 그의 경험을 증명하였다. 이 책은 그의 발견과 업적에 대해 세계적으로 공인된 권위 있는 설명이 담긴 책이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19세기 의학 이론, 특히 기성 의학계의 견해나 믿음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으므로 당시 의학계에서 부정당했다. 당시 기성 의학계는 다음과 같은 것을 감염의 원인으로 보았다.

- 질병은 오염된 공기로 전염된다.(미아즈마 설(miasma, 그리스의 질병설로 ‘나쁜 공기’ 안에 있는 독 때문에 질병이 생긴다는 설))
- 질병의 원인은 체내의 4개의 기본 체액의 불균형 때문이다. (그리스의 갈레누스의 이론에 기초한 다이스크래지아(dyscrasia, ‘체액 이상’) 설)
- 질병의 원인은 부정한 땅-우주-대기의 영향 때문이다.
- 감염의 원인은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즉 산욕열은 전염(전염병원체)으로 인해 발생된다.

제멜바이스는 그의 이론을 주로 비평하는 비평가들, 특히 열렬한 반대자인 빈의 요제프 슈페트(Joseph Späth, 1823~1896) 교수, 뷔르츠부르크의 프리에드리흐 빌헬름 본 프리드리히 빌헬음 슈칸초니(Friedrich Wilhelm Scanzoni von Lichtenfels, 1821~1891), 괴팅겐의 카슈파어 폰 지볼트(Caspar von Siebold, 1801~1861) 등에게 반박하기 위해 그들을 특정하여 두 차례의 공개서한을 발표하였다. 이 공개서한인 팸플릿에서 제멜바이스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되풀이하여 주장하였고, 그의 이론에 반대하는 비판에 반증을 제시했다. 그의 마지막 공개서한의 수신자는 전 세계의 모든 산과의사로 표기되어 있으며, 그는 자신의 의견을 다시 반복하여 설명하면서 산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가 제안한 예방법을 따라줄 것을 요청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멜바이스의 발견 [Semmelweis’ discovery]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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