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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 /짐바브웨 /네한다와 카구비 영매의 재판회록(1897년 4월) - 두 영매를 처형에 이르게 한 국가 대 네한다 및 카구비 영매 사건(318)

eorks 2020. 4. 18. 00:12

세계기록유산 /짐바브웨 /네한다와 카구비 영매의 재판회록(1897년 4월) - 두 영매를 처형에 이르게 한 국가 대 네한다 및 카구비 영매 사건
[Nehanda and Kaguvi mediums’ judgement dockets (April 1897). Case between State versus Nehanda and Kaguvi spirit mediums leading to their execution]

국가 : 짐바브웨(Zimbabwe)
소장 및 관리기관 : 짐바브웨 국립기록보관소(National Archives of Zimbabwe)
등재연도 : 2015년
‘카구비(Kaguvi)와 네한다(Nehanda)의 재판회록(裁判會錄)’은 재판 기록, 워터마이어(Watermeyer) 판사의 범죄인 기록부(1898~1899), 몇 건의 필사본, 체포 후에 수갑을 찬 두 영매의 사진, 법원 공식 기록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사람은 식민 통치에 대항하여 짐바브웨 혁명을 이끈 중요한 영매(靈媒, 무당)였다.

카구비와 네한다는 당시 유명한 영매로서 식민통치를 강력하게 비판했고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에게 민족주의 정신을 고취하였다. 두 사람의 지도와 주도로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부족들이 서로 연합하여 거센 식민주의의 물결에 맞섰다. 이 저항은 훗날 1896년부터 1897년까지 첫 번째 ‘치무렝가(Chimurenga, 해방 전쟁과 투쟁)’로 기억되고 있다.

‘치무렝가’에서의 역할 때문에 카구비와 네한다는 체포되어 기소되었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식민 정부는 두 사람은 1897년 처형했는데 부족민들의 전쟁 의지를 좌절시키기 위해 두 사람의 시신을 비밀 장소에 매장해버렸다. 사망하기 전에 네한다는 그녀의 뼈가 다시 일어날 것이며 두 번째 해방전쟁이 시작될 것이라 예언했는데 그것은 한 세기 후에 실현되었다.

예언은 실제 두 번째 ‘치무렝가’에 영감을 고취했고 결과적으로 짐바브웨의 해방을 이끌었다. 두 번째 ‘치무렝가’ 동안 사람들은 두 영매의 영적인 지도에 의존했다. 오늘날까지 짐바브웨에서 네한다와 카구비는 위대한 인물들로 존경받고 있다. 이 기록물들은 아프리카의 정치와 전통 종교 사이의 내밀한 관계에 대한 귀중하고 고유한 식견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록물은 한때 짐바브웨에서 있었던 폭압적인 식민 정권 그리고 흑인 공동체의 인간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 중요성 · 고유성 · 대체 불가능성 :
• 기억을 되살리는 유형의 자료
이 기록은 그 유형성 때문에 세계적으로 중요하다. 문서군과 몇 장의 인화된 사진은 짐바브웨의 식민 정권에 맞서 최초로 투쟁한 두 아이콘에 관한 유일한 유형 유산이다. 두 아이콘이 매장된 곳이 어디인지 오늘날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런 만큼 이 문서들은 세계인들이 그 기억을 간직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인종적 비관용(intolerance)에 맞선 저항의 상징
두 영매는 체포된 후, 사형 선고를 받았고 결국 처형되었다. 이 기록은 식민주의에 맞선 아프리카의 저항과 흑인 인권 투쟁을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당시의 식민주의는 정치적 · 경제적 · 사회적 · 종교적 정복을 노린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이 문서에서는 식민주의와 결부된 종교적 비관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처형 직전까지 두 영매에게 기독교도로 개종하라고 강요했던 프랜시스 리차르츠(Francis Ritchartz) 신부의 행동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다. 네한다는 세례를 거부했다. 이 기록은 한때 아프리카 대륙 전역을 뒤덮었던 부당한 식민제도에 대한 증거이다. 안타깝게 처형된 두 아이콘은 종교적 · 경제적 · 정치적 신념을 지키기 위한 아프리카의 저항을 상징한다.

• 민족주의의 재탄생
이 문서군은 1960년대에 짐바브웨 민족주의의 탄생을 고취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 후 민족주의 정신은 마치 역병처럼 빠르게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흑인 해방에 대한 강한 신념을 지키다가 죽은 두 영매와 이들의 정신은 민족주의자들에게 계승되었고, 훗날 두 영매로부터 영감을 받은 민족주의자들은 식민 지배에 맞서는 정당을 만들었다.

처형 직전에 음부야 네한다(Mbuya Nehanda)는 “mapfupa angu achamuka”라고 말했는데, ‘내 뼈가 부활하리라’는 의미였다. 이로써 그녀는 두 번째 ‘치무렝가’가 곧 일어날 것임을 예언하였다. 테렌스 레인저(Terrence Ranger, 1929~2015)는 『남로디지아의 반란(Revolt in Southern Rhodesia)』에서 1896년의 저항과 그 진압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이 책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테렌스 레인저는 식민 정권에 의해 영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 지역에 미친 영향
민족주의의 탄생은 짐바브웨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다. 다른 나라에까지 급속히 확산된 민족주의는 마침내 보츠와나 · 앙골라 · 레소토 · 탄자니아 · 잠비아 · 짐바브웨가 참여하여 남부 아프리카의 정치적 해방 투쟁을 위한 ‘남부아프리카전선제국(South Africa Frontline States)’을 결성하게 된다. 민족주의는 또한 인간 자유라는 가치를 포용한 ‘아프리카 독립 교회(African Independent Churches)’를 탄생시켰으며, 오늘날까지 짐바브웨는 국가정체성 및 문화 민족주의를 추구함에 있어 두 영매와 관련된 역사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독립 이후에 두 아이콘의 이름을 따서 도로와 건물, 병원 등의 이름을 지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 다양한 부족들의 단합
두 영매의 이야기는 아프리카의 전통 종교가 정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왔다는 사실을 외부 세계에 증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 기록물들은 언제나 전통 종교의 결집 효과를 상징하는 것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전통 종교는 부족과 인종의 경계를 넘도록 해주었고, 흑인 공동체를 ‘흑인 해방(black freedom)’이라는 하나의 명분 아래 다시 결집하도록 해주었다.

• 성 정치학
이 기록물들은 아프리카에서 다른 나라보다 앞선 여성들의 정치적 참여를 인정하고 칭찬하며 기억하는 기준 역할을 할 것이다. 여성 영매인 ‘Charwe(네한다)’는 오늘날까지 짐바브웨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이미 십 년 전에 첫 번째 여성 부통령으로 조이스 무주루(Joice Mujuru, 1955~)를 임명한 것이 짐바브웨에서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지만 실은 남아프리카 전역을 통틀어 당시 유일한 사례였다.

이 기록물들은 세실 존 로즈(Cecil John Rhodes, 1853~1902)가 주도한 아프리카 남부의 ‘영국남아프리카회사(British South African Company)’에 대항한 최초의 조직적 저항에 대한 진압, 그리고 이런 대담한 행동이 흑인 공동체에 전체에 미친 결과를 밝히고 있다. 19세기 식민 지배에 대항하여 벌인 최초의 저항은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짐바브웨 정치에 영감을 고취하고 있으며, 이것은 오늘날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라고 부르는 세력에 대한 저항을 통해서 증명되고 있다.

반 식민주의의 선두에 섰던 두 영매의 체포와 처형은 아프리카 정치와 전통 종교 사이에 존재하는 내밀한 관례를 일깨워준다. 이 유산은 짐바브웨를 넘어서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에 관한 유일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고유하다. 문서는 다른 나라로까지 확산된 민족주의 정신이 아프리카의 독립으로 이어진 만큼 짐바브웨 정치는 물론 아프리카 정치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사건에 관한 대체 불가능한 기록이다.

네한다와 카구비라는 인물은 오늘날까지 해방의 기억을 되살리는 범아프리카주의의 한 부분이다. 이 문서는 한때 아프리카 대륙에 팽배했던 부당한 식민제도에 대한 증거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와 같은 혁명적 지도자들의 체포로 입증되듯이 식민 정부가 짐바브웨뿐 아니라 다른 아프리카 국가의 민중봉기에 어떤 방식으로 대처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네한다와 카구비 영매의 재판회록(1897년 4월) - 두 영매를 처형에 이르게 한 국가 대 네한다 및 카구비 영매 사건 [Nehanda and Kaguvi mediums’ judgement dockets (April 1897). Case between State versus Nehanda and Kaguvi spirit mediums leading to their execution]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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