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시를 잘 지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나하고 시 짖기 내기를 한번 해 보실까요?' 하는 것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분수가 있지, 만나는 댓바람에 시 짖기 내기를 하 자고 하니 이것은 보통 수작이 아니었다.
"만나 뵙자마자 무슨 시 짖기 내기를 하자는 것이옵니까?' 하고 짐짓 놀 라는 듯 해 보였지만 내심으로는 이를 마다할 김삿갓이 아니 었다.
공허 또한 통쾌하게 웃으면서
"나는 시라면 자신이 있는데 선생이 詩仙이라고 하니 우리 두 사람이 雌 雄을 겨뤄 봐야할 것 아니오니까? 아무튼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한 수 지 어 보십시다." 하고는 즉석에서 시 한 수를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높고도 붉은 바위 계수나무 그늘에서 사립문 굳게 닫고 열어 본지 오래건만 오늘은 홀연히 지나가는 시선을 만났으니 학을 불러 암자 보게하고 시 한 수 빌어 와야겠네. 百尺丹岩桂樹下(백척단암계수하) 柴門久不向入開(시문구불향입개) 今朝忽遇詩仙過(금조홀우시선과) 喚鶴看庵乞句來(환학간암걸구래)
김삿갓은 공허스님의 시를 읽어보고 빙그레 웃었다.
"스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천재시인 梅月堂도 금강산에 와서는 시를 한 수도 짖지 못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 같은 풋내기 시인이 어찌 감히 금강산에 대한 시를 지을 수 있아 오리까?"
공허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풋내기 시인이라니 무슨 말씀을, 소승은 선생의 시를 이미 여러 편 읽었 소이다. 모두 걸작이었어요. 금강산이 너무 좋아서 매월당처럼 시를 지을 수 없다면 시를 지을 수 없는 그 심정을 시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 아니오 이까." 한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파안대소 하면서
"스님께서 추궁이 대단하심이다 그려. 그처럼 말씀하시니 한 수 읊어 보 겠 습니다."
그리고는 즉석에서 다음과 같이 한 수를 일필휘지 했다.
우뚝우뚝 뾰쪽뾰쪽 기묘하고 괴이하니 사람인가 신선인가 귀신인가 부처인가 내 평생 금강 위해 시 짖기를 아꼈건만 정작 금강을 보고 나니 감히 붓을 못 들겠소. 矗矗尖尖怪怪奇(촉촉첨첨괴괴기) 人仙神佛共堪疑(인선신불공감의) 平生詩爲金剛惜(평생시위금강석) 及到金剛不敢詩(급도금강불감시)
공허스님은 무릎을 치며 감탄해 마지않는다.
"과연 삿갓선생은 시선임이 분명하오. 금강산이 너무 좋아 시를 못 짖겠 다는 그 시가 금강산에 대한 어느 시보다도 탁월하니 그 어찌 시선이라 하지 않 을 수 있겠소." 하면서 새삼스레 머리를 숙여 보이는 것이었다.
*이 시는 李應洙가 편집한 <金笠詩集>에 들어 있는 시인데 일설에는 김 립보다 7년 연장이었던 申佐模의 시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