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정지용(鄭芝溶)님의 詩

eorks 2007. 5. 4. 07:59

정지용(鄭芝溶님의

      1. - 향수(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2.<카페 프란스> 옮겨다 심은 종려(棕櫚)나무 밑에 비뚜로 선 장명등(長明燈) 카페·프란스에 가자.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비쩍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에 흐느끼는 불빛 카페·프란스에 가자. 이놈의 머리는 비뚜른 능금 또 한 놈의 심장은 벌레 먹은 장미 제비처럼 젖은 놈이 뛰어간다. * "오오 패롤[鸚鵡] 서방! 굳 이브닝!" "굳 이브닝!"(이 친구 어떠하시오?) 울금향(鬱金香) 아가씨는 이 밤에도 경사(更紗) 커튼 밑에서 조시는구료! 나는 자작(子爵)의 아들도 아무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大理石) 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 오오, 이국종(異國種) 강아지야 내 발을 빨아다오. 내 발을 빨아다오. ------------------------------------------ 3. - 춘설(春雪)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송그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 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 4.<바다 2>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 떼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로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씻었다. 이 애쓴 해도(海圖)에 손을 씻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휘동그란히 받쳐 들었다! 지구(地球)는 연(蓮)잎인 양 오므라들고 …… 펴고 ……. -------------------------------------- 5. -유리창(琉璃窓) 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6.<비>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섰거니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새 걸음걸이.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돋는 비ㅅ낯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 7. -인동차(忍冬茶) 노주인(老主人)의 장벽(腸壁)에 무시(無時)로 인동(忍冬) 삼긴 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 지어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 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山中)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 8. -별-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ㅡ고나 아스름 다치랴는 눈초리와 금(金)실로 잇은 듯 가깝기도 하고, 잠 살포시 깨인 한밤엔 창유리에 붙어서 엿보노나. 불현듯, 솟아나듯 불리울 듯, 맞아들일 듯, 문득, 영혼 안에 외로운 불이 바람처럼 이는 회환에 피어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우는 손을 여미다 -----------------------------------
    정지용 : (鄭芝溶,1902~?) 충북 옥천 출생. 휘문고보 졸업. 일본 도지샤 대학(同志社大學)영문과 졸업. 귀국후 위문고보 영어 교사로 재직했으며 광복 후에는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50년에 한려수도를 여행중 전란을 맞아 북한군에 붙잡혀 행방 불명되었다. 동인지<요람> 을 발간하면서 <향수>,<슬픈 인상화>,<풍랑몽> 등을 발 표했다. [시문학]동인이었으며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 와 선명한 이미지를 구사하여, 1930년대 시이 모더니즘 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첫 작품인 <카페프란스>,<슬픈인상화>,<파충류동물> 등 을 경도(유학생잡지)인 <학조>(1926)창간호에 발표했다. 첫 작품들은 다다이즘,미래파 계열의 경향을 보였으나, 곧 선명한 객관적.즉물적 이미지를 중시하는 이미지즘으 로 전향했다. 현실인식,망국의식을 반영한 작품도 있고, 카톨릭 신앙을 나타낸 작품도 있으나, 이미지즘과 동양 고전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후기 시집인 <백록담>은 지성의 절제,토착어의 순화,선명하고 정확한 이미지 등을 바탕으로 한 이미지즘 경향의 작품집이다. 박목월,조지훈,박두진,박남수 등을 <문장>지를 통해 추천 하였고, 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시인이다. 시집에 <정지용시집>(1935),<백록담>(1941)등이 있다. ----------------------------------------------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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