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民心書

되로 갚을 것을 말로 갚은 부자

eorks 2011. 2. 24. 00:20

牧民心書
제6장 호전 6조[농촌의 현실에 맞는 세금 징수 방법들]
되로 갚을 것을 말로 갚은 부자
其有一二士民私乞創米謂之別還이니 不可許也니라.
기유일이사민사걸창미위지별환이니 불가허야니라.
한두 양반이 사사로이 창고 쌀을 구걸하는 것을 별환(別還)이라
하는데 그 일은 허락해서는 안 된다.
- 곡부(穀簿) -
    
      조선 정조 때 절도사 이원이라는 사람은 이여송의 손자였는데
    일찍이 군수가 되었다.
      한번은 김호성이라는 부자 양반이 창고의 곡식 4백 석을 축낸 적이
    있었다. 이원은 그에게 여러 번 독촉을 했지만 제때에 갚지 않았다. 그
    래서 이원이 고지서를 발부했더니, 그는 고지서를 가지고 간 병사를 때
    려 거의 죽게 만들었다. 기가 막힌 노릇이었으나 이원은 짐짓 놀라는
    기색을 하며 아전에게 물었다.
      "그 집의 호주가 누구던가?"
      "김호성이라고 합니다."
      아전이 답을 하자 이원은 이번에도 모른 척하며 말했다.
      "아, 그래? 내가 잘못했구나, 그 집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고지서를
    보내지 않았을 텐데."
      그러고는 사람을 보내 자신의 과오를 사죄했다. 그러자 김호성은 매
    우 기뻐하였다.
      그로부터 10여 일이 지난 날이었다. 그날은 날씨가 아주 춥고
    눈까지 내렸다. 그런데 이원은 장교들을 불러 사냥할 채비를 차리게 하
    였다. 자신은 소매가 좁은 군복을 입고, 군관들은 모두 군복 차림에 활
    과 칼을 차게 했다. 또한 요리사까지 불러 술과 고기를 마련해 가지고
    뒤따르도록 했다.
      이원은 김호성이 사는 마을 앞에 이르자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천막
    을 치게 한 다음 숮불을 피우고 솥을 건 뒤 일부러 눈을 크게 뜨며 아
    전에게 물었다.
      "저 산 밑에 기와집이 아주 우람하구나. 저 집은 뉘 집인가?"
      아전이 즉시 대답했다.
      "저 집이 바로 김호성의 집입니다."
      그 말을 듣자 이원은 즉시 수석 장교를 보내서 이렇게 전했다.
      "오늘 마침 내가 사냥을 나와 귀댁의 근처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예
    의상 마땅히 가서 뵈어야 하겠지만 마침 군복을 입어서 감히 예를 다하
    지 못하는 바입니다. 바라건대 잠시 모시고 환담할 자리를 마련해 주시
    면 좋겠습니다."
      그랬더니 김호성은 거만을 떨며 이원에게로 왔다. 마침내 자리가 마
    련되고 두 사람은 의례적인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이원은 술에 고기
    를 몇 점 먹는 척하다가 옆에 차고 있던 칼을 빼들어 김호성의 목에 겨
    누며 호통을 쳤다.
      "네 이놈! 내가 오늘 사냥 나온 것은 바로 김호성이라는 짐승을 잡기
    위함이었다. 이놈을 단단히 묶어라!"
      김호성은 갑자기 목에 칼이 들어오자 기겁을 하여 나자빠졌다. 이원
    은 김호성을 결박하여 말 등에 싣고는 병사들에게 승전곡을 연주하게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큰 말을 타고 취중에 죄인을 끌고 김호성의 집
    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집안 사람들은 오랏줄에 묶인 채 산 송장처럼 표정이 굳은
    김호성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원은 관아로 돌아와 그를 옥에 가두었는데 5~6일 만에 김호성이
    차출해간 곡식은 물론 이자까지 전부 셈하여 거둬들이게 되었다. 이원
    은 그제야 그를 석방하고 의관을 챙겨 주고서 자기 방으로 불렀다. 이
    원은 김호성에게 술 한 잔을 따라 권하면서 이렇게 사과했다.
      "공사(公事)를 시행하다 보면 개인적인 사정을 봐주는 일이 없는 법
    이니 부디 내 무례를 용서하기 바라오."
      김호성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두 손으로 잔을 받아 마시고는 허겁지
    겁 방을 빠져나왔다. 이 일이 있은 후 고을에서 권세께나 부린다는 양
    반집은 모두 이원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감히 그의 영을 어기지 못했다
    고 한다.
    환상(還上)이란 각 고을에서 춘궁기에 백성들에게 곡식을 꾸어 주었
    다가 가을에 더 받아들이는 일을 말하며, 별환(別還)이란 특별하게 시
    행하는 환상을 말한다.
      권력이 있는 집이면서도 재해를 당했다고 핑계를 대거나, 혹은 역사
    를 일으킨다고 핑계를 대며, 사사로이 창고 곡식을 구걸하여 별도로 수
    십 석을 받고는 여러 해가 지나도 갚지 않는 일이 있다. 이리하여 결국
    은 포흠(苞欠:관청의 물건을 사사로이 써 버리는 일)을 이루게 되는데,
    이를 유포라고도 한다. 큰 흉년이 들거나, 나라에 큰 경사가 있어서 묵
    은 환곡을 탕감할 경우가 있으면 수령은 사정을 써서 이 양반집에서 
    진 포흠을 탕감해 주는데, 특히 기호 지방(畿湖地方:경기도 및 황해도
    남부와 충청남도 북부 지방)에 이런 폐단이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목
    민관은 창고 열괴를 단단히 쥐고 만백성이 다함게 받게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창고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