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크리스천은 낙천적이다

eorks 2015. 11. 6. 06:50
학교법인 동서학원 설립자 장성만 박사의 1인 3역
역  경  의   열  매
크리스천은 낙천적이다
    나는 항상 모든 것을 좋은 쪽으로만 생각한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천성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대부분 낙천적이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 때문이다.
    단군성전 건축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그 복잡한 문제가 너무도 손쉽게 해결된 것이다. 노신영 국무총리가 우선 기독교계 대표들에게 정부의 입장을 밝혀 다. "국비와 지방비로 단군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공무원의 관여도 일절 금합니다. 이것이 정부의 입장입니다." 참석한 교단장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오랫동안 풀 리지 않던 문제가 쉽게 해결된 것이다. 아마 이 문제가 좀 더 오래 계속 됐으면 상당한 마찰이 일어났을 것이다. 대 통령과 총리의 신속한 결정이 있었기에 해결이 가능했다. 일련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사실 나는 12대 총선에서 처음 선거를 경험한 셈이다. 11대 때는 무투표로 당선됐기 때문에 선거가 얼마나 힘든 지도 잘 몰랐다. 1985년 2월에 치러진 선거는 그야말로 혈투였다. 김영 삼, 김대중 씨의 지지를 받은 신민당 바람이 전국을 강타 했다. 나는 차분한 정책대결로 맞섰다. 4년 임기 동안 양산~구포간 도로확장, 구포역 신축, 도 서관 신설, 서부터미널 유치, 그린벨트 완화조치 등의 업적 을 열거하며 득표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 금메달로 당선됐 다. 부산의 6개 선거구에서 여당 후보 세 사람이 낙선했을 정도로 `양 김의 바람`이 강렬했다. 나는 아주 낙천적인 성격 때문에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 분주한 선거운동 기간에도 집에 돌아오면 곧 잠 이 들었다. 반면 아내의 마음고생이 아주 심했다. 아내가 선거운동을 하느라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나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도 이렇게 초조한데… 당신은 항상 평안해 보이네요. 어쩌면 이렇게 무감각하나요. 지금 총선에 출마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마치 내가 총선에 출마한 사람 같아 요." 아내의 핀잔에 내가 이렇게 응수했다.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초조하고 불안해할 필요 없어 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시겠지요. 걱정하지 말아요."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다. 나는 항 상 모든 것을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 은 어쩔 수 없는 천성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 낙천적이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총선 때 개표방송을 다 보지 못하고 잠이 들 었다. 아내는 나의 이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침에 눈을 떳을 때, 밖이 소란스러우면 당선된 것이고 조용하면 낙선된 것입니다. 지금 밤을 새운다고 득표상황 이 달라질 것도 아닌데, 잠이나 푹 자둡시다." "당신처럼 긍정적인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이런 상황 에 잠이 오나요?" 그래도 잠이 오는 걸 어떡하랴. 12대 총선을 치르고서야 비로소 정치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해 2월 23일, 민정당의 파격적인 당직개편이 있었다. 대표위원 노태우 의원, 사무총장 이한동 의원, 정책위의장 장성만 의원, 원내총무 이종찬 의원으로 새로운 진용이 갖 춰졌다. 민정당 내에서 전혀실세가 아니었던 내가 더군다 나 이제 재선밖에 안되는 사람이 당 3역의 요직에 중용된 것이다. 실로 파격적인 인사였다. 정책위원회는 정부 여당의 정책 산실이었다. 정책위원회 는 황금의 팀워크를 구축했다. 정책조정실장에 현혼주 의 원, 정책국장에 김중위 씨가 임명됐다. 각 부처에서 16명 의 전문위원이 파견됐고, 대부분의 회의는 아침 7시에 열였 다. 첫 정책개발은 목포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되던 의료보험 제도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또 민의수렴반을 만들어 기자들과 함께 전국을 순회하며 민심을 파악하고 개선책을 마련했다. 나는 국회 질의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정부는 `회전의자 경제`에서 `부엌 경제`로 `탁상 경제` 에서 `들판 경제로 `손가락 경제`에서 `발바닥 경제`로 전 환하라. 당시 나의 발언을 모든 신문이 일제히 보도했다. 그런데 민의수렴반 활동에 대해서 언론이 일제히 비판하고 나셨다. "민정당이 이제야 민의를 수렴한단 말인가. 그럼 지금까 지 민의를 몰라서 이일을 못했는가." 우리의 진정성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해 안타까웠다. 우 리는 명칭을 `순회정책반`으로 바꾸고 활동을 계속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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