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법인 동서학원 설립자 장성만 박사의 1인 3역
역 경 의 열 매 |
발바닥 민심을 파악하라
모든 것을 단번에 해결하려고 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따릅니다. 따라서 단
계적인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현실과 법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설득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대형버스를 전세내 타고 다니면서 순회정책
반 활동을 펼쳤다. 김제, 전주, 광주, 여수 등을 방문해 현
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고위 당정회의를 열
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민의가 굴절되고 대화의
통로가 막히면 불만이 폭발한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그때 내가 강조한 것이 `발바닥 민심`이었다.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한다는 것
이었다.
"문제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라, 탁상 위에서 설계되는 생
동감 없는 정책을 지양하라. 발바닥으로 민심을 파악하
라."
나는 정책팀과 함께 대형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볐다. 밤
과 낮이 없는 강행군이었다.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복지사회 건설`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들의 이런 모든 노력도 결국은 복지국가 건설의 일
환이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7대 복지정책`이다.
거기에는 나의 모든 열정과 꿈과 소망이 담겼다. 이것은
여러 절차를 거쳐 민정당의 주요 정책으로 확정됐다.
국민건강보험, 국민복지 연금제도, 영세민 지원 종합대
책, 최저임금제도, 근로자 복지증대 및 임대주택 건설, 중
학교 무상 의무교육, 농어촌 종합대책이 7대 복지정책이
다. 이것은 오늘날 국가 복지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이 활동에 큰 보람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나는 정책보다 오히려 목회·문화·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직업적인 문필가는 아니지만 신문이나 잡지에 글쓰기를 좋
아했다. 지금도 기독교 주간지에 고정으로 글을 쓰고 있
다. 설교집과 에세이집을 합해 모두 25권의 책을 썼다.
수필 동인회를 만들어 <로고스>나 <아가페> 같은 잡지도
만들었다. 내가 설립한 한국지역사회연구소는 계간지 <지
역사회>를 발간하고 있다.
나의 저서 <디지털 사회를 사는 지혜>가 중국어판으로
번역돼 중국 정부가 100대 교양서적으로 선정한 것도 나
름대로 뜻깊은 일이라 생각한다.
2008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어판 발행 출판기념회
가 열였는데, 중국 교육부의 고위 관리들이 대거 참석할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였다.
글쓰기는 목회와 연결된다. 설교 원고를 준비하려면 책
도 많이 읽어야 하고, 글도 많이 써보아야 한다. 초선의원
시절에도 글 쓰는 분들과 자주 친교를 가졌다.
당시 내가 소속된 교통체신위원회 위원장은 황인성 의원
이었다. 그는 교육부 장관을 거쳐 YS 정권 시절 국무총리
를 지낸 분이다. 인품이 후덕해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교통체신위원회는 나를 포함해 작가 송지영 선생, 시인
김춘수 선생이 속해 있었다 모두 정치 초년생이었다. 우
리는 만나면 정치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문학에 관
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재미있는 만
남이었다. 문필가들은 국회에서 만나 담소를 나눈다는 것
이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었다.
1985년 7월 16일, 갑자기 당정회의가 소집됐다. `학원
정상화를 위한 임시조치법`이라는 법안에 대한 설명회 자
리였다.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학원소요 때문에 휴교나 폐교당한 학교 교수는 월급을
70%만 지급한다. 시위 주동 학생은 3개월간 선도 교육을
받는다. 유언비어 살포와 선동에 앞장서면 7년 이하의 징
역에 처한다….`
당시 학원 사태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이
법안이 통과되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 뻔했다. 참석
자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나는 내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모든 것을 단번에 해결하려고 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따
릅니다. 따라서 단계적인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현실과
법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설득의 과정이 필
요합니다."
그 후로는 몇 차례 만나 대화를 나눴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제 `현행법을 약간 보안하느냐`와 `학원안정법
을 제정하느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그것을 내가 막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
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당에서는 학원안정법 공청회가 열렸다. 그것은 당의 주
요이슈였다. 그날 청와대 경호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만찬초청이었다. 청와대 별관에 전두환 대통령을 중심으로
당5역, 관계 장관 두 사람, 청와대 참모 두 사람 등 10인
이 모였다. 저녁식사와 함께 반주가 몇 순배돌면서 분위기
가 부드러워졌다. 술과는 거리가 먼 내게는 아무도 술을
권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약간 취기가 돌자, 노래를
한 곡씩 불렀다. 나는 `서울의 찬가`의 노랫말 중 `서울에
서 살렵니다`를 `부산에서 살렵니다`로 바꿔 불러 박수를
받았다. 모임은 자정 무렵에야 끝났다. 그런데 만찬을 마
치고 본관으로 향하던 대통령이 갑자기 뒤돌아서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여러분들은 나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지요? 그렇다면 나
의 뜻을 따라주기 바랍니다. 학원안정법은 보류합니다."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대통령이 어떻게 그
런 결심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이것도 하나
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
였다고 믿는다.
이튼날, 청와대 영빈관에서는 전 국무위원과 당의 중집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학원안정법을 유보한다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오랫동안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문제가 일시에 해결된 것
이다.
사람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해결하지 못할 일을, 하나님
은 일순간에 해결하신다. 그러므로 인생의 역경을 만날 때
는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기도가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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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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