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바바드 디포네고로』, 자와의 왕자이자 인도네시아의 국민 영웅이며 범이슬람주의자인 디포네고로(292)

eorks 2020. 3. 22. 08:18

세계기록유산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바바드 디포네고로』, 자와의 왕자이자 인도네시아의 국민 영웅이며 범이슬람주의자인 디포네고로(1785~1855) 왕자의 자전적 연대기
[Babad Diponegoro or Autobiographical Chronicle of Prince Diponegoro (1785-1855). A Javanese nobleman, Indonesian national hero and pan-Islamist]

Babad Diponegoro or Autobiographical Chronicle of Prince Diponegoro (1785-1855). A Javanese nobleman, Indonesian national hero and pan-Islamist

Babad Diponegoro or Autobiographical Chronicle of Prince Diponegoro (1785-1855). A Javanese nobleman, Indonesian national hero and pan-Islamist

Babad Diponegoro or Autobiographical Chronicle of Prince Diponegoro (1785-1855). A Javanese nobleman, Indonesian national hero and pan-Islamist

Public Domain, Text page of the Babad Diponegoro-ms. in the collection of the National Library of Indonesia, Jakarta


국가 : 인도네시아(Indonesia), 네덜란드(Netherlands)
소장 및 관리기관 : 국립도서관(Perpustakaan Nasional Republik Indonesia, 인도네시아), 동남아시아·카리브 연구를 위한 왕립연구소(Königlich Niederländisches Institut für südostasiatische und karabische Forschungen, 네덜란드)
등재연도 : 2013년
『바바드 디포네고로(Babad Diponegoro)』(‘디포네고로의 연대기’라는 뜻)는 자와의 왕자이자 인도네시아의 국민 영웅이며 범이슬람주의자인 욕야카르타(Yogyakarta) 술탄국의 왕자 디포네고로(Diponegoro, 1785~1855)의 자전적 연대기이다. 디포네고로는 ‘나라의 빛’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으로 자와어로 ‘디파느가라(Dipanegara)’라고도 불린다. 이 유산은 디포네고로가 1831년~1835년까지 술라웨시우타라(Sulawesi Utara, 셀레베스(Celebes))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 저술한 작품으로서, 근대 인도네시아 역사의 핵심 인물인 디포네고로 왕자의 개인 기록이다. 또한 이 책은 자와 근대문학사의 관점에서 최초의 자서전으로 볼 수 있으며, 당시 이 지역의 상황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디포네고로의 경험을 매우 잘 표현한 기록물이다.

욕야카르타의 왕자 디포네고로는 1808년 이전의 구체제 시대로부터 1808년~1811년까지 네덜란드의 헤르만 빌럼 단덜스(Herman Willem Daendels, 1762~1818) 제독 재임 시대, 1811년~1816년까지 재임한 영국의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Thomas Stamford Raffles, 1781~1826) 시대, 1816년~1826년까지 재집권한 네덜란드 행정부의 식민지 총독 바론 판 데르 카펠런(G.A.G.Ph. Baron van der Capellen, 1778~1848) 재임 시대, 그리고 자와 전쟁(1825~1830)을 거치면서 본격적인 식민시대(1830~1942)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격변의 중심에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그는 18세기말부터 19세기 초 사이에 유럽에서 진행되었던 서로 닮은 두 차례의 정치 및 산업혁명 때문에 야기된 근대의 세계화 시대가 보여준 역설 속에 박제된 인물이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자와 정신의 수호자들이나 14세기~16세기 사이에 자와에서 이슬람 신앙을 새롭게 수립한 ‘왈리 송고(wali songo, 이슬람의 사도들)’가 제시한 예언적 비전(Prophetic Visions)에 경도되어 있었다. 자와인 신비주의자인 그는 자와 신앙과 이슬람 신앙의 독특한 융합을 기초로 하여 자와에 도덕적 질서를 복원하고, 자와인들의 ‘라투 아딜(Ratu Adil, 공명정대왕)’ 역할을 자처했다. 라투 아딜은 인도네시아 민속에서 나타난 보편 정의를 실현하는 왕을 뜻한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사타리야(Satariyah)와 나크사반디야 타레카트(Naqsabandiyah tarekat)의 추종자였다.

나크사반디야 타레카트는 이슬람신비주의 형제단으로서, 그는 이들을 통해서 인도양에 널리 퍼져 있는 울라마(ulama, 이슬람교의 법·신학의 지도자) 조직과 연결되었고 국제적 이슬람세계와 연대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사이 자와 섬 중남부에 왕실의 후원 하에 메카로 순례 여행(하지)을 다녀왔던 순례자들의 보고 기록물을 통해서 알게 된 오스만 제국의 열렬한 흠모자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자와 전쟁의 와중에 하라만(haraman, 메카와 메디나와 같은 성도(聖都))에서의 오스만의 관습을 의식적으로 모델 삼아 그의 행정부와 군사 조직을 구상하기도 하였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훗날 자와 전쟁(1825~1830, 특히 이 기간을 ‘디포네고로 전쟁’이라고도 한다)이라고 알려진 네덜란드에 대항한 5년 전쟁의 지도자였다. 그는 식민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자와인 사회의 상하좌우를 폭넓게 아우르는 다양한 세력을 규합하였다. 디포네고로 왕자가 이끈 ‘성전(聖戰, 프랑 사빌(prang sabil))’은 어떤 면에서 자와인으로서의 민족정체성과 이슬람을 융합한 ‘인도네시아 민족 운동’이 20세기 초에 일어날 것을 예시(豫示)하는 것과도 같았다. 이 전쟁은 국제적인 파급력도 있었는데, 1827년~1828년 동안 전쟁의 두 번째 해와 세 번째 해에 헨드릭 메르퀴스 더콕(Hendrik Merkus de Kock, 1779~1845)이라는 자와 주재 네덜란드 군 사령관은 네덜란드 령 식민지에서 전세를 역전시키고자 병력 증강을 꾀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뱅갈 군대(Bengal Presidency Army) 중 세포이 군대의 파병을 요청했다. 이렇게 됨으로 해서 영국과 영국령 인도도 이 전쟁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NA, Ministerie van Kolonien 2923, Verbaal, 6-03-1827, Litt JI).

디포네고로 왕자의 운명은 시민왕 루이-필리프(Louis-Philippe, 재위 : 1830~1848) 치하의 국민왕정을 탄생시킨 1830년 프랑스 7월 혁명 및 1830년 8월 24일 이후의 브뤼셀 봉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네덜란드 남부에서 발생한 이 폭동은 1831년 7월 21일 이후에는 벨기에에서 일어났는데, 영국과 프랑스 양대 강국은 이 봉기에 개입하며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기를 기대하고 네덜란드의 세력에 도전하였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영국이 인도양에서 해군력을 이용해서 네덜란드동인도회사를 공격하게 될 것을 우려하였다. 그리하여 1830년 3월 28일 자와 전쟁에 패하여 마겔랑(Magelang)에서 체포된 디포네고로 왕자가 유폐되어 있는 북부 술라웨시(Northern Sulawesi, 술라웨시우타라 주)의 마나도(Manado)를 영국이 차지하게 되는 것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팽배해 있었다. 네덜란드 군은 어쩌면 영국인들이 디포네고로 왕자를 ‘꼭두각시 지도자’로 이용하고, 왕자를 이전에 존경받던 존재인 ‘라투 아딜’로 복권시킬지도 모른다고 관측했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 군은 1833년 6월 디포네고로 왕자를 남부 술라웨시(South Sulawesi, 술라웨시슬라탄 주)에 있는 보다 강력한 요새인 마카사르(Makassar)로 이송하였다. 왕자는 이곳에서 포로로서 지내다가 1855년 1월 사망했다.

비록 전쟁에 패하고 네덜란드 군에게 체포되어 ‘강화조약’에 따라 유폐가 결정되기는 했지만 디포네고로 왕자의 이름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1945년 8월,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후, 1973년 11월 10일 디포네고로 왕자는 이 나라 최고의 국민 영웅인 ‘파흘라완 나시오날(pahlawan nasional)’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공산당(Partai Komunis Indonesia, PKI)은 1920년대 초 마디운(Madiun)에 있는 중앙 당사 벽에 디포네고로 왕자를 기념한 그의 초상을 그려 넣었고, 1960년 10월 수카르노 대통령은 국립 스마랑 대학교의 명칭을 디포네고로 대학교로 변경했으며, 그리고 중앙자와군부대를 ‘디비시 디포네고로(Divisi Diponegoro)’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처럼 디포네고로는 인도네시아의 많은 정치 조직과 여러 기관에 영감을 주었다.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불가능성 :
『바바드 디포네고로』는 디포네고로 자신에 관한 문서이자 자서전이면서, 역사적 맥락을 볼 수 있는 기록이다. 또한 이 기록유산은 사라져버린 자와의 식민지 시대 이전의 통치와 문화에 대한 증언이자, 인류에게 가치 있는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바바드 디포네고로』는 지금까지 현전하는 원본인 필사본 중에 알려진 페곤어(pégon, 아랍 문자로 쓰인 자와어) 필사본이 없기 때문에 고유한 기록이며 동시에 대체불가능하다. 더구나 근대 자와어로 쓰인 자서전 가운데 최초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역사란 죽은 자, 살아 있는 자,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 사이에 맺은 협정’이라는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의 명언을 떠오르게 하는 사례이다. 『바바드 디포네고로』는 자와의 문화, 종교,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유산은 인도네시아 국립도서관(Perpustakaan Nasional Republik Indonesia)과 네덜란드 라이덴의 ‘동남아시아·카리브 연구를 위한 왕립연구소(Königlich Niederländisches Institut für südostasiatische und karabische Forschungen)’에 소장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바드 디포네고로』, 자와의 왕자이자 인도네시아의 국민 영웅이며 범이슬람주의자인 디포네고로(1785~1855) 왕자의 자전적 연대기 [Babad Diponegoro or Autobiographical Chronicle of Prince Diponegoro (1785-1855). A Javanese nobleman, Indonesian national hero and pan-Islamist]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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