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사 댁을 나온 김삿갓은 다시 정처 없는 길을 걸어가다가 문득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결국 죽는 날까지 나의 유일한 친구는 오직 나의 그림자가 있을 따름인 가 보구나.’ 햇빛이나 달빛에 따라 형태가 여러 가지로 변하지만 언제나 자기를 따 라다 니는 충실한 벗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오나가나 너는 항상 나를 따라 오는데 서로가 비슷해도 네가 나는 아니로다. 달빛 받아 길어지면 괴상한 꼴이 되고 한낮에 뜰에 서면 난쟁이 꼴 우습구나. 進退隨儂莫汝恭(진퇴수농막여공) 汝儂酷似實非儂(여농혹사실비농) 月斜岸面驚魁狀(월사안면경괴상) 日午庭中笑倭容(일오정중소왜용)
베개 베고 누우면 찾아볼 길 없다가도 등잔 뒤를 돌아보면 홀연 다시 만나건만 담담히 사랑해도 너는 끝내 말이 없고 빛 없는 곳에서는 종적조차 감추누나. 枕上若尋無覓得(침상약심무멱득) 燈前回顧忽相逢(등전회고홀상봉) 心雖可愛終無言(심수가애종무언) 不暎光明去絶蹤(불영광명거절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