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野史 277

야행기(夜行記)(5)

韓國野史 이야기(夜談)야행기(夜行記)(5) 다음 날 아침. 반지는 조반도 먹지 않고 누운 채 울기만 했다. 두 눈가가 퉁 퉁 부을 정도로. "왜 그러느냐? 아침부터 재수없게……"어머니가 퉁명스럽게 묻자 그제서야 그녀는 앙심을 품은 얼굴 로 대답했다. "나 당했어요. 변을 당했어요.""당해? 무슨 변을?" "어젯밤에 아랫마을 어귀에서 서당에 다니는 총각에게……""뭐가 어째? 거기서 당했다면…… 두 놈이 함께 다니는 걸 보 았는데 도대체 어떤 놈이냐? 새로 온 작은 놈은 얼굴이 고운 게 그런 짓을 할 놈으로 보이지 않던데……" "바로 그 작은 놈에게……" "그래? 아니, 세상에 그런 쳐죽일 놈이 있나. 얼굴은 곱게 생긴 녀석이 마음은 야차보다 더한 놈이었구나. 오냐, 이놈 어디 뜨 거운 맛을 좀 봐라." 그..

韓國野史 2015.04.27

야행기(夜行記)(4)

韓國野史 이야기(夜談)야행기(夜行記)(4) 그런 반지가 천수를 보게 되니 마음이 달아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번 넘은 선은 쉽게 무너지는 법이어서 반지는 며칠 만에 한 번씩 그 짓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천수를 보게 되자 나이 가 많은 기철의 얼굴이 징그럽게 여겨지면서 천수의 얼굴만 눈앞 에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아졌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잘생긴 사내가 있을까.`그리하여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심지어 는 기철의 몸을 안고 있으면서도 천수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 말을 걸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침마다 꼭 함께 가는 학동 하나가 있었고, 밤에도 역시 한께 돌아갔기에 반지는 생가슴만 앓게 되었다.그러던 중, 기회가 오게 되었다. 지..

韓國野史 2015.04.26

야행기(夜行記)(3)

韓國野史 이야기(夜談)야행기(夜行記)(3) 동네에 기철(基喆)이라는 바람둥이가 있었다. 나이가 마흔 살이 나 되었는데도, 서른댓 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얼굴이 통통하고 유복스러워 보이는 사나이였다. 물론 돈깨나 있는 인간 이었다. 그런 작자였으니 반지 어머니의 반반한 얼굴을 보고 손을 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치마를 벗긴 것까지는 좋았는 데 그가 반지의 몸까지 탐내게 된 것이다.그리하여, "이봐, 반지 말이야. 강물 위에 배 떠나간 자국이 있어? 어 때…… 하룻 밤 정도만 내 장모가 되어 주겠나?" 하고 말하게 된 것이다. "뭐라고요? 그런 망측한 소리가 어디 있어요?" 그녀는 그의 가슴을 꼬집으면서 화를 냈으나, "그 대신 돈 서른 냥을 주지. 서른 냥이라면 땅에 굴러다니는 ..

韓國野史 2015.04.25

야행기(夜行記)(2)

韓國野史 이야기(夜談)야행기(夜行記)(2) 윗마을에 반지(半枝)라는 이름을 가진 계집애가 살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과부였다. 때문에 술을 팔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이 제법 반반하게 생겼고, 나이도 서른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기에 동네의 중년 남자들에게 꽤나 귀여움을 받았다. 그들 중에는 더러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 했었다고 말하는 사람 도 있었으나, 그것은 당사자들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 아닌, 소 문으로만 떠도는 말이었기에 확실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실은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아래 윗마을 사람들 중의 웬만한 남자들은 거의 다 반지의 어머니와 하룻밤을 잤었던 것이 다. 동네에서 그런 짓을 하는 것은 남들의 눈이 있어서 곤란했기 에, 술을 마시러 갔다가 친구가 뒷간에라도 잠깐 간..

韓國野史 2015.04.24

야행기(夜行記)(1)

韓國野史 이야기(夜談)야행기(夜行記)(1) 서당(書堂)이라고 해 봤자 남의 집 사랑에 불과한 곳이었다.글 을 배우러 다니는 총각들도 겨우 여섯 명 뿐이었다.하지만 글방 선생은 학식이 많은 분이어서 온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었으며, 학생들도 저녁밥까지 싸 가지고 다니며 밤 늦게 까지 열심히 공부를 했다. 어느 날, 선생이 낮선 총각 하나를 학동들에게 소개시키면서 말했다. "이번에 아랫마을 김 서방네 집을 사서 이사 온 한천수(韓千 洙)다. 오늘부터 함께 공부하게 되었으니 사이좋게 지내도록 해 라. 하지만 공부만은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학동들은 접장의 말은 한 귀로 흘리면서 두 눈들은 크게 떴다. 새로 들어온 총각의 얼굴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유난히 긴 눈썹은 계..

韓國野史 2015.04.23

정고옥(鄭古玉) 行狀記

韓國野史 이야기(異人과 奇人의 기담)정고옥(鄭古玉) 行狀記 유명한 이인 정북창(鄭北窓)의 아우인 정고옥이라는 인물이 있 었는데, 그도 형과 아울러 천하의 이인이었다고 전해진다. 고옥의 이웃에서 한 사람의 병자가 발생하자 이웃 사람들이 떠 들어 댔다. "오래 살다 보니 별놈의 병을 다 본다." "무슨 병이기에 그러나?" "글쎄, 다섯 가지 빛이 연이어 몸에서 일었다 없어졌다 하니 그게 대체 무슨 병인가.""글쎄.""그런 병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모두들 병이 이상하다는 말들만 하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병 자는 백약이 무효가 되고 백의(百醫)가 소용없이 되어 거의 빈사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 집 식구들은 모두 수심에 잠겨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때, 동네 사람 하나가 찾아 와서 말했다."좋..

韓國野史 2015.04.22

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3)

韓國野史 이야기(夜談)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3)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도 외증조할머니의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손녀인 어머니가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외증조할머니는 큰아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다."여기에서 북쪽으로 30리 가량 가면 구름내[雲川]라는 마을이 있다. 김창석 씨네 둘째 아들과 네 딸 상남(上男)이와는 인연이 있으니, 찾아가서 혼사(婚事)를 이야기해 보아라."이렇게 외증조할머니는 가 보지도 않고 신통력으로 나의 부모님을 결혼시켰습니다. 마침내 주위에서는 외증조할머니를 일컬어 '생불(生佛) 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느 날부터인가 외증조할머니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지 않고 '문수보살'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런 변화를 걱정한 아들..

韓國野史 2015.04.21

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2)

韓國野史 이야기(夜談)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2)그 스님을 보자 할머니는 눈앞이 밝아지는 듯했습니다."아! 어쩌면 저렇게도 잘생겼을까? 마치 관세음보살님 같구나." 크게 반한 할머니는 집안에서 가장 큰 바구니에다 쌀을 가득 퍼서 스님의 걸망에 부어 드렸습니다.그때까지 비구니 스님은 할머니를 조용히 보고만 있다가 불쑥 말을 했었습니다."할머니! 요즘 세상사는 재미가 아주 좋은 신가 보지요?""아, 좋다마다요. 우리 아들 삼형제가 모두 효자라서 얼마나 잘해 주는지..... 스님. 제 말 좀 들어 보실래요?"할머니는 신이 나서 아들 자랑을 시작했고, 며느리 자랑, 손자 자랑까지 일사천리로 늘어놓았습니다.마침내 할머니의 자랑은 끝내 이르렀고, 장시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스님은 힘주어 말했습니..

韓國野史 2015.04.20

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1)

韓國野史 이야기(夜談)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1)(일타 큰스님 글) 나의 가족은 친가와 외가를 모두 합하여 모두 41명이 승려가 되었습니다.이 41명의 출가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일족의 출가 이후 가장 많은 숫자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41명의 출가는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인가? 아닙니다. 나의 외증조할머니인 이평등월(李平等月) 보살의 기도와 입적(入寂), 그리고 방광의 이적(異蹟)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안성이씨(安城李氏) 평등월 보살은 일찍이 우리 나라 제일의 양반으로 치던 광산 김씨(光山金氏) 집안으로 시집을 갔습니다.그녀는 남편 김영인(金永仁)의 아낌없는 사랑 속에서 삼형제를 낳아 기르며, 학식있는 양반집 안방마님으로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60..

韓國野史 2015.04.19

대접만 받고 가버린 풍수(風水)

韓國野史 이야기(夜談)대접만 받고 가버린 풍수(風水)옛날 충청도 어느 고을에 아들 3형제가 살았다.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모시게 되었는데, 당시 풍습 에 따라 좋은 묘 자리인 명당을 찾기 위해 유명한 풍수를 초청하였다. 명당에 묘를 잘 쓰느냐 못쓰느냐에 따라 돌아가신 부모에게 효도가 되느냐? 안 되느냐? 가 결정되고, 또한 후손이 잘 사느냐 못 사느냐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므로, 풍수(風水)를 모시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유명한 풍수가 와서 앞으로 닷새만 있으면 명당(名堂)자리 를 잡아 주겠다고 하였다. 하루는 풍수가 사랑방에서 쉬고 있으려니까 문이 열리면서, 이 집의 며느리가 들어와서 절을 하였다."지사(地師)님, 저는 이 집 큰며느리 입니다. 집안이 잘 되려면 맏아들이 잘 되..

韓國野史 2015.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