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기(夜行記)(5) 韓國野史 이야기(夜談) 야행기(夜行記)(5) 다음 날 아침. 반지는 조반도 먹지 않고 누운 채 울기만 했다. 두 눈가가 퉁 퉁 부을 정도로. "왜 그러느냐? 아침부터 재수없게……" 어머니가 퉁명스럽게 묻자 그제서야 그녀는 앙심을 품은 얼굴 로 대답했다. "나 당했어요. 변을 당했어요." "당해?.. 韓國野史 2015.04.27
야행기(夜行記)(4) 韓國野史 이야기(夜談) 야행기(夜行記)(4) 그런 반지가 천수를 보게 되니 마음이 달아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번 넘은 선은 쉽게 무너지는 법이어서 반지는 며칠 만에 한 번씩 그 짓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천수를 보게 되자 나이 가 많은 기철의 얼굴이 징그럽게 여겨지면서 천수의 얼.. 韓國野史 2015.04.26
야행기(夜行記)(3) 韓國野史 이야기(夜談) 야행기(夜行記)(3) 동네에 기철(基喆)이라는 바람둥이가 있었다. 나이가 마흔 살이 나 되었는데도, 서른댓 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얼굴이 통통하고 유복스러워 보이는 사나이였다. 물론 돈깨나 있는 인간 이었다. 그런 작자였으니 반지 어머니의 반반한 .. 韓國野史 2015.04.25
야행기(夜行記)(2) 韓國野史 이야기(夜談) 야행기(夜行記)(2) 윗마을에 반지(半枝)라는 이름을 가진 계집애가 살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과부였다. 때문에 술을 팔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이 제법 반반하게 생겼고, 나이도 서른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기에 동네의 중년 남자들에게 꽤나 .. 韓國野史 2015.04.24
야행기(夜行記)(1) 韓國野史 이야기(夜談) 야행기(夜行記)(1) 서당(書堂)이라고 해 봤자 남의 집 사랑에 불과한 곳이었다. 글 을 배우러 다니는 총각들도 겨우 여섯 명 뿐이었다. 하지만 글방 선생은 학식이 많은 분이어서 온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었으며, 학생들도 저녁밥까지 싸 가지고 다니.. 韓國野史 2015.04.23
정고옥(鄭古玉) 行狀記 韓國野史 이야기(異人과 奇人의 기담) 정고옥(鄭古玉) 行狀記 유명한 이인 정북창(鄭北窓)의 아우인 정고옥이라는 인물이 있 었는데, 그도 형과 아울러 천하의 이인이었다고 전해진다. 고옥의 이웃에서 한 사람의 병자가 발생하자 이웃 사람들이 떠 들어 댔다. "오래 살다 보니 별놈의 병.. 韓國野史 2015.04.22
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3) 韓國野史 이야기(夜談) 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3)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도 외증조할머니의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손녀인 어머니가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외증조할머니는 큰아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다. "여기에서 북쪽으로 30리 가량 가면 구름내[雲.. 韓國野史 2015.04.21
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2) 韓國野史 이야기(夜談) 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2)그 스님을 보자 할머니는 눈앞이 밝아지는 듯했습니다. "아! 어쩌면 저렇게도 잘생겼을까? 마치 관세음보살님 같구나." 크게 반한 할머니는 집안에서 가장 큰 바구니에다 쌀을 가득 퍼서 스님의 걸망에 부어 드렸습니.. 韓國野史 2015.04.20
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1) 韓國野史 이야기(夜談) 일타스님 외증조할머니의 염불과 방광(放光)(1)(일타 큰스님 글) 나의 가족은 친가와 외가를 모두 합하여 모두 41명이 승려가 되었습니다. 이 41명의 출가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일족의 출가 이후 가장 많은 숫자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41명의 출가는 .. 韓國野史 2015.04.19
대접만 받고 가버린 풍수(風水) 韓國野史 이야기(夜談) 대접만 받고 가버린 풍수(風水)옛날 충청도 어느 고을에 아들 3형제가 살았다.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모시게 되었는데, 당시 풍습 에 따라 좋은 묘 자리인 명당을 찾기 위해 유명한 풍수를 초청하였다. 명당에 묘를 잘 쓰느냐 못쓰느냐에 따라 돌.. 韓國野史 2015.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