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野史 277

종이장수의 깨달음

韓國野史 이야기(불교 전설)종이장수의 깨달음조선조 중엽. 지금의 해남 대흥사 산내 암자인 진불암에는 70여 명의 스님들이 참선 정진하고 있었다.어느 날 조실 스님께서 동안거 결제법어를 하고 있는데 마침 종 이 장수가 종이를 팔려고 절에 왔다.대중 스님들이 모두 법당에서 법문을 듣고 있었으므로 종이장 수 최씨는 누구한테도 말을 건넬 수 없었다. 그냥 돌아갈 수도 없고 해서 최씨는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맨 뒤쪽에 앉아 법문을 다 들은 최씨는 그 뜻을 다 이해할 수는 없 었지만 거룩한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중 스님들의 경 건한 모습이며 법당 안의 장엄한 분위기가 최씨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나도 출가하여 스님이 될 수 있으면 오죽 좋을까.』 내심 행각에 잠겼던 최씨는 결심을 한 듯 법회가 끝나자 용..

韓國野史 2015.08.18

불보를 수지한 스님

韓國野史 이야기(불교 전설)불보를 수지한 스님때는 신라 말엽. 여름 안거를 마치고 10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만해길에 오른 혜린 선사는 험한 산중에서 하룻밤 노숙하게 됐 다. 『스님,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무슨 일이냐?』 『나라 안에 번지고 있는 괴질이 이 산중까지 옮겨졌는지 일행 중 두 스님의 몸이 불덩이 같사옵니다.』『날이 밝는 대로 약초를 찾아볼 것이니 너무 상심치 말고 기도 하며 잘 간병토록 해라.』이튿날, 혜린선사는 약초를 뜯어 응급처치를 취했으나 효험은 커녕 환자가 하나 둘 더 늘어나 털썩털썩 풀섶에 주저 않았다.『모두들 내 말을 명심해서 듣거라.』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은 질병임을 느낀 혜린 스님은 엄숙한 어 조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서원한 출가 사문임을 잠시도..

韓國野史 2015.08.17

이태조와 몽불산

韓國野史 이야기(불교 전설)이태조와 몽불산『시랑, 삼칠일이 다 되었는데도 아무런 영험이 없으니 필시 과 인의 덕이 부족한가 보오.』『마마, 황공한가 보오.』성군이 되기 위해 명산대찰을 찾아 간절히 기도하는 이태조의 모습에 사랑은 참으로 감격했다. 창업 이전의 그 용맹 속에 저 토록 부드러운 자애가 어디에 숨어있었을까. 『마마, 옛부터 이곳 무등산에는 백팔 나한이 있고 대소암자가 있어 수많은 산신들이 나한에게 공양을 올렸다 하옵니다. 들리 는 바로는 오랜 옛날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설법을 하 셨고, 그 후 제불보살이 설법을 한다 하옵니다. 다시 삼일 기도 를 올리심이 어떠하올지요?』『무학 스님 말에 의하면 무등이 보살이라더니, 이 무등산에 부처님의 사자좌가 있단 말인가. 사랑, 그대는 과연 생각이 ..

韓國野史 2015.08.16

용궁생 거북이

韓國野史 이야기(불교 전설)용궁생 거북이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어느 가을날. 전남 영암군 신북면에 있는 여석산 기슭을 한 스님이 걷고 있었다. 고개를 오르느라 숨이 찬 스님은 고갯마루에 앉아 숨을 돌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장삼자락으로 닦다가 건너편에 서 있는 커 다란 감나무에 시선이 닿았다. 스님은 바랑을 짊어진 채 그 감나무에 올라 감을 한 개 따서 입 에 넣었다. 『별미로군.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감은 처음이다. 하늘에 천 도가 있다더니 그 맛이 이럴까.』 달콤한 감맛에 취한 스님은 한 가지에 열린 감을 모두 따 먹고 는 자기도 모르게 다음 가지로 옮아갔다. 가지를 옮기는 순간 와지끈 소리와 함께 감나무 아래 샘물 속으로 빠져 버렸다. 깊 은 샘물은 스님을 삼킨 채 옥빛으로 맑았고 스님은 다시 떠..

韓國野史 2015.08.15

윤회의 굴레

韓國野史 이야기(불교 전설)윤회의 굴레『그래 너는 어디서 뭘 하다 왔느냐?』 『예, 신라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 왔사옵니다.』 『신라 땅이라니, 그 넓은 땅 어디서 살았단 말이냐?』『예, 경주라는 고을이옵니다.』『평생 뭘하고 살았는지 재미있는 세상 이야길 좀 자세히 말해 봐라.』 『예, 분부대로 아뢰겠습니다.』노파는 허리를 굽실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어린 딸과 아들 하나를 키우느 라 평생 고생을 하며 살았습니다.』『그래 혼자서 아들딸을 키웠단 말이냐?』 『예, 시집 장가 보내 놓고도 줄곧 집에만 있어 별다른 이야 기가 없사옵니다.』노파의 말에 염라대왕은 싱겁다는 듯 좌중을 한 바퀴 돌고는 한마디 더 건넨다. 『그래 집 밖 세상은 제대로 구경도 못했단 말이냐?』 『그러하..

韓國野史 2015.08.14

벌거벗은 스님

韓國野史 이야기(불교 전설)벌거벗은 스님『내가 오길 잘했지. 만약 그 나이 어린 사미승이 왔더라면 이 눈 속에 었떻게 했을까?』 한껏 허리를 굽히고 바삐 걷던 노스님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 늘을 쳐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거센 눈보라가 스님의 얼 굴을 때렸다. 쩔렁거리던 주장자소리도 멈추고 사위는 쥐죽은듯이 고요했다. 다만 어둠 속에 눈발이 희끗희끗 날릴 뿐. 더욱이 황룡사로 가 는 길은 아직 초저녁인데도 인적이 끊어졌다. 군데군데 인가에 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지만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것은 신라 애장왕이 열세 살 어린 나이에즉위하자 숙부 언승 이 섭정의 난을 일으킨 뒤 인심이 흉흉하고 밤이면 도적떼들이 횡행했기 때문이었다.노스님은 「삼랑사 주지 스님이 자고 떠나라고 잡을 때 그곳에 서..

韓國野史 2015.08.13

지명 스님과 팔면경

韓國野史 이야기(불교 전설)지명 스님과 팔면경신라 지명법사는 중국에 가서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진평왕 7년 (585) 진나라로 가는 사신들과 함께 불법 수학의 길에 올랐다.사신들과 동행했기에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지명 스님 은 당시의 고승대덕과 선지식을 두루 친견하면서 경·율·논 삼장 을 깊이 연구하고 익혔다.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지명 스님은 자신의 공부를 인가받기 위해 양자강 건너 북쪽 하 남성 낙양에 자리한 중국 최초의 창건 사찰 백마사에 다달았다.『음, 과연 명찰이로구나!』 고색창연한 백마사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예배드리는 순간 지명 스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처음 가본 그 절 부 처님 앞에서 마치 감회에 젖은 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는지 그 이유를 지명 스님..

韓國野史 2015.08.12

눈속에 핀 오동꽃

韓國野史 이야기(불교 전설)눈속에 핀 오동꽃① 신라 제41대 헌덕왕의 아들로 태어나 15세에 출가한 심지 스님 이 지금의 대구 팔공산에서 수도하고 있을 때였다.심지 스님은 팔공산에서 수도하고 있을 때였다. 심지 스님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속리산 길상사(지금의 법주사)로 향했다. 영심 스님이 그의 스 승 진표율사로부터 불골간자를 전해받는 점찰법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길상사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법회가 시작되어 심지 스 님은 당에 올라가 참석할 수가 없었다. 스님은 안타까워 마당에 앉아 신도들과 함께 예배하며 참회했다. 법회가 7일째 계속되던 날 크게 눈이 내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도 심지 스님이 서 있는 사방 10척 가량은 눈이 내리지 않았다. 신기한 현상에 갑자기 법..

韓國野史 2015.08.11

상투를 튼 스님

韓國野史 이야기(불교 전설)상투를 튼 스님때는 조선 숙종조 중엽.배불정책이 극심하여 전국의 절마다 스님들은 부역 아니면 궁중에서 쓰는 종이와 노끈 미투리 등 을 삼느라 혹사당했다. 『원, 이래서야 어디 수도승이라고 할 수 있겠나.』 스님들의 푸념은 어느 절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대구에서 서북쪽으로 약 50리 거리에 위치한 팔공산(해 발 1192m) 기슭의 천 년 고찰 파계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지 스님, 오늘 삭발하실 날입니다.』 『안 깎는다.』파계사 주지 현응 스님은 시자가 준비해 온 삭도를 쳐다보지 않 은 채 한마디로 물리고 말았다. 시자는 자못 궁금했다.『스님, 어디 편찮으신지요?』 『아니다.』『그럼 왜….』『그럴 일이 있느니라.』 정갈하기로 소문난 현응 스님이 한 철이 지나도록 삭발을 하지..

韓國野史 2015.08.10

호랑이의 불심

韓國野史 이야기(불교 전설)호랑이의 불심신라 선덕여왕 때, 덕망 높은 두운대사는 지금의 경북 소백산 기슭 천연동굴에서 혼자 기거하며 도를 닦고 있었다. 그곳 동 굴에는 가끔 호랑이 한 마리가 찾아와 대사의 공부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가거나 어느 때는 스님과 벗하여 놀다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석양 무렵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찾아온 호랑이는 굴 입구에서 입을 딱 벌리 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상히 여긴 두운대사가 가까 이 다가가 호랑이 입 속을 들여다보니 금비녀가 목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두운대사는 비녀를 뽑아준 뒤 호통을 쳤다.『네 이놈! 산에도 네가 먹을 짐승이 많은데 사람을 잡아먹다니, 천벌을 받을 것이니 앞으로는 절대 사람을 해치지 말라.』 목에 걸린 금비녀를 뽑아내니..

韓國野史 201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