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져온 글 281

親族.內從.外家 관계 계촌도

親族關係의 系寸圖高祖父...........................형제........................從高祖父4촌.4세                                                                                                                                            6촌      ↓                                                                                                                                             ↓ 曾祖父.................형제 ...........

가져온 글 2024.06.04

祭禮順序(제례순서)

祭禮順序(제례순서) 1.강신(降神)신위께서 강림(降臨)하시어 음식을 드시도록 청하는 뜻으로 제주(祭主)를 위시하여 모든 참사자가 신위 앞에 선 다음 제주는 꿇어 않아 분향하고 잔이 차지 않게 따른 술잔을 우집사(右執事=대개 제주의 子姪이 함)로부터 받아서 모사에 세 번으로 나누어 부은후에 빈 잔은 우집사에게 건네주고 일어나서 재배한다. 2.참신(參神)참신은 강신을 마친 후에 제주 이하 일동이 일제히 신위를 향하여 재배한다.신주(神主)를 모시고 올리는 제사인 경우에는 참신을 먼져 하고 지방(紙榜)인 경우에는 강신을 먼져 한다. 3.초헌(初獻)제주는 강신 때와 같이 꿇어 않아 분향한 후 좌집사로부터 받은 잔에 우집사가 술을 가득히 부어 주면 오른손으로 잔을 들어 모사에 조금씩 세 번에 기울여 부은 뒤에 양손..

가져온 글 2024.06.03

[무흘구곡] 한강 정구 선생 학문적 성찰 이룬 물굽이

[무흘구곡] 한강 정구 선생 학문적 성찰 이룬 물굽이무흘구곡의 제6곡인 옥류동 정자. 너럭바위와 조화를 이룬 정자 풍광이 아름답다.무흘구곡(武屹九曲)은 경북 성주 가야산 북쪽을 흐르는 대가천에 조성된 구곡이다. 수도산에서 발원해 가야산 북쪽을 빙 둘러 안고 흐르는 대가천에 무흘구곡을 처음 설정하고 경영한 이는 성주 출신으로서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통을 이어받은대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다.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린 ‘수도지맥’의 수도산에서 시작해 가야산을 휘감고 흘러온 대가천(大加川) 맑은 물줄기는 경북 성주 군 수륜면에 이르러 양쪽에 너른 들판을 빚고 시내의 폭을 넓히면서 잔잔히 흐른다. 그 물길은 양정교 근처에 이르러 바위 언덕을 만나 잠시 멈추는데, 여기가 바로 무흘구곡의..

가져온 글 2024.05.28

* 나를 깨우는 108배, 백팔대참회문

* 나를 깨우는 108배, 백팔대참회문불교에서 행해지는 108배는 중생의 번뇌가 108가지라는데서 유래하며 절은 하심이라하여 마음을 비우는 수행법 중에 하나입니다.BTN 불교TV에서 제작한 나를 깨우는 108배를 통해 모두가 일심(一心)으로 정성스럽게 절을 함으로써 종교를 초월해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평화롭게 만들며 자신을 성찰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나을 깨우는 108배를 매일 실천하면서 본래의 참마음을 찾는 소중한 시간이 되시길 기원 합니다.시방삼세 제불보살님과 역대 조사님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이 몸 다 던져 참회하고 발원 합니다. 지난 세월 지은 공덕이 적어 부처님 참된 진리 등지고 살아 왔음을 참회합니다. 작은 인연이지만 오늘부터 크게 키워 참된 불자가 되고자 발심하여 불법승 삼보에 귀의..

가져온 글 2024.05.26

♤맹사성 이야기♤

♤맹사성 이야기♤조선시대 대표적 청백리 중 한 명인 맹사성은 76살의 나이로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인 온양에 내려가 초야에 묻혀 살았습니다.​당대 최고의 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그였기에 그 고을에 신임 사또가 부임하면 맹사성을 찾아가서 인사를 올리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습니다.​어느 날 새롭게 부임한 사또가 인사를 하기 위해 관아의 관리들을 거느리고 맹사성을 찾아갔습니다.​마침 밭에 나가 김을 매고 있던 맹사성은 사또가 온 것을 알았지만, 그를 밭에 세워둔 체 김만 계속 매고 있었 습니다.돌아갈 수도 그냥 서 있을 수 만도 없던 사또는 팔을 걷어붙이고 밭에 들어가 함께 김을 맸습니다.사또가 움직이자, 관아의 관리들도 서로 질세라 열심히 김을 맸고, 해가 질 무렵이 돼서야 맹사성은 허리를 펴고 일어섰습니다.​"..

가져온 글 2024.05.25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의 대담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의 대담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의 설전? 雪戰![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한국 근현대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禪僧)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 두 분은 속세의 나이와 승려로서의 나이 모두 20년 차이가 난다. 법정은 성철을 불가의 큰 어른으로 따랐다.성철은 제자와 후학들에게 대단히 엄격하면서도 유독 법정을 인정하고 아꼈다.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는 (책읽는섬. 2016)은 두 큰 스님이 나눈 대화와 둘 사이의 일화를 엮은 책이다. 제목 ‘설전’은 말다툼을 뜻하는 ‘舌戰’이 아니라 ‘雪戰’으로 표시한다. 책 뒷날개에 그에 대한 설명 글이 있다.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눈의 성질로 수행자의 냉철하고도 온화한 자세를 형상화 했다. 또한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웃게 만드는..

가져온 글 2024.05.24

촌은(村隱)유희경(劉希慶)과 매창(梅窓)이향금(李香今)이야기

촌은(村隱)유희경(劉希慶)과 매창(梅窓)이향금(李香今)이야기열세살에 홀로 아비 무덤을 만들던 대문장가 유희경유희경은 13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어린 나이에 홀로 흙을 날라다 장사지내고 3년간 여 막살이를 했으며 3년상을 마치고 나서는 병으로 앓아누운 어머니를 30년간이나 모신 효자로 소문이 났습니다. 여막살이 중에 마침 수락산 선영을 오가던 서경덕의 문인 남언경에 눈에 띄어 주자가례를 배운 뒤  예학 (禮學)에 밝아진 그는 국상이나 사대부가의 상(喪)때는 으레 초빙되었지요.“하룻밤 맘고생에 귀밑머리 희었어요  소첩의 맘고생 알고 싶으시다면 헐거워진 이 금가락지 좀 보시구려” 이 시는 조선 선조 때의 유명한 여류시인 매창이 그의 정인(情人) 유희경을 그리워하며 지은 입니다. 얼마나 애타게..

가져온 글 2024.05.23

오성과 한음의 설화

오성과 한음의 설화조선 중기의 정승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친구 사이로 유명한 이항복과 이덕형을 이르는 말. 오성(鰲城)은 이항복의 봉호인 오성부원군에서 따왔고, 한음(漢陰)은 이덕형의 호다.오성과 한음은 조선 선조 때 명신으로, 어려서부터 친구로 지내면서 장난이 심하고 기지가 뛰어나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몇 개의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① 오성의 담력 한음으로부터 한밤중에 전염병으로 일가족이 몰살한 집에 시체 감장을 부탁받은 오성이 혼자 그 집에 이르러 시체를 감장하다가 갑자기 한 시체가 벌떡 일어나며 볼을 쥐어박는 바람에 혼비백산하였는데, 알고 보니 시체 인 체 누워 있었던 한음의 장난이었다는 것이다.오성의 아버지는 오성의 담력을 시험하려고 한밤중에 외딴 숲 속의 고목나..

가져온 글 2024.05.20

개코도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

조선 숙종대왕과 갈처사(葛處士)                                                    명능(숙종대왕과 인현황후 쌍릉)개코도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숙종대왕이 어느 날 미행 중 수원성 고개 아랫쪽 냇가를 지나는 데, 허름한시골총각이 관을 옆에 놓고 슬피 울면서 물이 나오는 냇가에다가 묘자리를 파고 있는 것을 보고....‘아무리 가난하고 몰라도 유분수지 어찌하여 묘를 물이 나는 곳에 쓰려고 하는지 이상하다‘ 생각을 하고, 필시 무슨 연고가 있지 싶어서 그 총각 에게로 다가가...."여보게 총각~!여기 관은 누구의 것인가? 하고 물었다."제 어머님의 관 입니다.""그런데 개울은 왜 파는 고?" 하고 짐짓 알면서도 딴청을 하고 물으니...."어머니 묘를 쓰려고 합니다."미루어..

가져온 글 2024.05.18

▲김병연(金炳淵)이 삿갓을 쓰고 방랑시인이 된 내력

▲김병연(金炳淵)이 삿갓을 쓰고 방랑시인이 된 내력  ▲김삿갓 蘭皐 金炳淵(1807~1863)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김삿갓 묘  조선 순조11년(1811년) 신미년에 홍경래(1780-1812)는 서북인(西北人)을 관직에 등용하지 않는 조정의 정책에 대한 반감과 탐관오리들의 행악에 분개가 폭발하여 평안도 용강에서 반란을 일으켰다.홍경래는 교묘한 수단으로 동지들을 규합하였고, 민심의 불평불만을 잘 선동해서 조직한 그의 반란군은 순식간에 가산, 박천, 곽산, 태천, 정주등지를 파죽지세로 휩쓸어 버리고 군사적 요새지인 선천으로 쳐들어갔다. 이 싸움에서 가산 군수 정시(鄭蓍)는 일개 문관의 신분이었지만 최후까지 싸워서 비장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한편 김병연의 조부 김익순(金益淳)은 관직이 높은 선천 방..

가져온 글 2024.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