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1703

영구예미(靈龜曳尾) / 조용헌

풍수지리(風水地理) 영구예미(靈龜曳尾) / 조용헌 한자문화권에서 거북이(龜)는 다양한 상징을 지니는 동물이다. 남자 생식기의 끝부분을 귀두(龜頭)라고 한다. 거북이의 머리처럼 생겼다는 의미이다. 기원전 3000년에 사용되었던 갑골문자(甲骨文字)도 거북이의 등껍질에 쓰여 있었던 것이다. 고대인들에게 거북이의 등껍질은 가장 귀한 갑골(甲骨)로 대접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제사장들이 점을 칠 때도 거북이의 등껍질을 태웠다. 거북이는 또한 장수의 상징이다. ‘장자’(莊子) 외편(外篇) 추수(秋水) 17장에도 보면 거북이에 관한 비유가 나온다. 점을 치는데 사용되어 죽은 다음에 묘당(廟堂)에 소중하게 받들어지기보다는, 진흙땅에서 천하게 꼬리를 끌며 살지라도 살아 있는 것이 낫다는 비유이다. 높이 출세해서 이..

풍수지리 2023.07.22

살기좋은 땅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풍수지리(風水地理) 살기좋은 땅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고전으로 배경지식 키우기] 이중환 ‘택리지’ 地理, 生利, 人心, 山水 ‘택리지’는 조선 후기의 실학적 배경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인문지리서이다. 기존의 지리서가 일정한 형식에 맞추어 군현별로 만든 것을 모아 편집한 것이었다면, ‘택리지’는 한 개인의 일관된 문제의식 속에서 우리나라 각 지역의 다양한 인문 지리적 특징을 설명한 책이다. 택리지는 필사되는 과정에서 50여 가지나 되는 다른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다양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널리 애독된 보기 드문 저술이기도 하다. 풍류를 찾는 시인은 ‘진승유람(震維勝覽)’과 ‘동국산수록(東國山水錄)’으로, 물산과 교통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동국총화록(東國總貨錄)’으로, 또 풍수지리가는 ‘형가요..

풍수지리 2023.07.21

[조용헌 살롱] 풍수지리

풍수지리(風水地理) [조용헌 살롱] 풍수지리 송하유돈(松下有豚)과 核 한국 역사를 보면 과도기 때마다 풍수도참에 근거를 둔 ‘비결서(秘訣書)’가 유행하곤 하였다. 신라 말엽에는 ‘계림황엽 곡령청송(鷄林黃葉 鵠嶺靑松:신라는 누런 잎이고 개성은 푸른 솔이다)’이, 고려후기에는 ‘목자득국(木子得國:이씨가 나라를 얻는다)’이 유행하였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오랑캐를 쳐야 한다는 북벌론이 대세를 이루면서, 〈정감록〉에 나오는 ‘고월망어어양 어양망어고월(古月亡於漁羊 漁羊亡於古月)’이 유행하였다. 古月은 오랑캐(胡)를 상징하고, 漁羊은 조선(鮮)을 상징한다. 풀이하면 ‘오랑캐가 조선을 망하게 하고, 그 다음에는 조선이 오랑캐를 망하게 할 것이다’가 된다. 북벌론자들을 자극하였던 예언이었다. 근래에 식자층 사이에서 많이..

풍수지리 2023.07.20

점술과 정치

풍수지리(風水地理) 점술과 정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점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인류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점술은 인간의 운명이나 미래를 알려주는 신비한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왔기 때문에 누구든지 관심을 가져왔지만 특히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나 왕 같은 지배자는 더더욱 관심을 가져왔다. 임금이 바뀌거나 왕조가 바뀔 때는 반드시 점술가들의 예언(?)같은 것이 필요했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 판도를 이해하려면 한국정치가 점술과 얼마나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겉으로 볼 때 한국정치는 민주주의에 입각한, 근대화된 정치제도에 의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점술 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의 정치는 지금도 점술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점술에 의해서 깊..

풍수지리 2023.07.19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23)

풍수지리(風水地理)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23) (32)남사고와 ‘정감록’ (4) ●‘남사고비결’도 여러 번 다시 쓰였다 영조 9년(1733)에 적발된 ‘정감록’ 사건엔 ‘남사고비결’이 등장한다. 무신년에는 피가 흘러 내(川)를 이룬다는 등 흉흉한 내용이 나와 있었다(실록·영조 9년8월18일 병인). 마침 영조 4년(1728) 무신년에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 남부지방을 휩쓸었던 터여서 조정은 이 ‘비결’의 등장에 경악했다. 이 ‘비결’과 제목이 똑같은 예언서는 현재도 남아 있다. 당연히 ‘정감록’에 포함돼 있다. 그러면 현존하는 ‘비결’은 영조 때 발각된 것과 같은 내용의 예언서일까? “무신·기유(戊申己酉)년: 제갈량(諸葛亮·제갈공명)이 이미 죽었으니 어느 성 한쪽 금성(錦城)이 피폐하도다. 경시(更始..

풍수지리 2023.07.18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22)

풍수지리(風水地理)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22) (32)남사고와 ‘정감록’ (3) ●십승지는 남사고의 작품인가 그렇다 해도 많은 사람들은 남사고의 특별한 지식과 능력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정감록’의 중심개념인 십승지설이 ‘남사고산수십승보길지지(南師古山水十勝保吉之地)’에서 발견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민중은 남사고 같은 예언가라면 당연히 훌륭한 피란지를 점지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남사고’는 ‘정감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여러 산들 중에서 소백산(小白山)이 으뜸이요, 지리산(智異山)이 다음이다.”라고 했듯, 길지는 주로 소백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큰 마디에 몰려 있다. 이를 지역별로 나눠 보면 경상도가 4개, 전라도 3개, 충청도 2개, 강원도 1개다. ‘남사고’의 이..

풍수지리 2023.07.17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21)

풍수지리(風水地理)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21) 남사고와 ‘정감록’ (2) ●남사고의 지리 공부 졸지에 비결을 빼앗긴 남사고는 새 각오로 삼천리강산을 두루 유람하였다. 그제야 지리 공부의 요체를 파악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명당을 얻더라도 결국 덕을 많이 쌓는 사람만이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쳤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남사고가 아버지 무덤을 아홉 차례나 이장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그는 지리를 완전히 터득한 고수였던 지라 가장 좋은 자리를 택해 아버지의 묘를 썼다. 그런데 써놓고 보면 더 좋은 자리가 문득 눈에 띄곤 해 옮겨 쓰기를 되풀이하였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비룡승천(飛龍昇天·용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양)형의 명당을 얻어 다시 이장을 하였다. 그때 지나가던 한 술사가 이런 노래를..

풍수지리 2023.07.16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20)

풍수지리(風水地理)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20) 남사고와 ‘정감록’ (1) 한번은 영조 임금이 대신들에게 “도대체 남사고가 누구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살아생전 그는 미관말직에 종사한 하급관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후 200여년 뒤 조정에서 그 학식과 인품을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큰 인물이었다.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1509∼1571)는 선조 초기 천문 교수로 발탁됐다. 보통 천문을 비롯한 잡학(雜學)의 교수는 중인 출신이 많았다. 하지만 남사고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유학자이면서도 당대 최고의 천문지리가로 평가를 받았다.‘정감록’의 핵심개념인 이른바 십승지설(十勝地·최고의 피란지에 관한 주장)도 그 한 뿌리가 남사고에 닿아 있다. 남사고는 예언서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지었..

풍수지리 2023.07.15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19)

풍수지리(風水地理)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19) 중국인 술사 두사총과 ‘정감록’ (3) ●‘두사총비결’에 담긴 뜻 두사총은 조선의 중앙 정치무대에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민중은 그를 무척 친근하게 여겼으므로, 예언서의 저자로 둔갑시켰다. 섭정국의 경우와는 확연히 달랐다. 크게 보아 ‘두사총비결’의 요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어떤 곳이 길지며, 어느 곳이 흉한 땅인가를 밝혀 놓은 것이다. 이런 논의는 ‘정감록’에 실린 다른 예언서들과 공통되는 점이 대부분이다. 물론 ‘두사총’에서만 발견되는 특이한 주장도 전혀 없지 않다. 길지에 관한 ‘두사총’의 견해를 살펴보면 우선 “태백산과 소백산은 백두산에서 갈려 내려와서 산맥이 나뉘었는데 본래부터 왕성한 기상이 있어 화기(和氣)가 넘쳐흐른..

풍수지리 2023.07.14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18)

풍수지리(風水地理)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18) 중국인 술사 두사총과 ‘정감록’ (2) ●호종단이란 나쁜 중국인 술사 두사총과는 영 딴판인 중국인 술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악질적인 인물로 기억되는 이가 호종단(胡宗旦)이다. 그는 멀리 중국 송나라 때 인물로 제주도에 파견돼 명당기운을 해칠 사명을 띠었다 한다. 당시 세상엔 한 가지 소문이 횡행했다. 제주도엔 13개의 명당이 있어 천하제일의 인재들이 쏟아져 나와 세상을 주도하리라는 것이었다. 이 소문을 듣고 중국 황제는 무척 당황했다. 황제는 압승지술(壓勝之術 명당기운을 억누르는 기술)의 대가 호종단을 제주도로 보내 13혈(穴)을 찾아 침질을 하게 했다. 비밀리에 호종단은 북제주군 표선면 의귀리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이어 서..

풍수지리 2023.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