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1703

[조용헌 살롱] (7)

풍수지리(風水地理) [조용헌 살롱] (7) 탄허는 일본 침몰 외에도 여러 가지 예언을 하였다. 굵직굵직한 예언을 간추리면 ‘월남전에서 미국 망한다’(패전한다) ‘울진·삼척에 공비가 침투한다’ ‘박정희 죽는다’ ‘전두환 죽는다’ 등이었다. 이 가운데 ‘전두환 죽는다’는 예언은 탄허가 1980년대 초반 텔레비전을 보면서 한 말이라고 한다. 탄허가 보기에 당시 전두환에게는 신검살(神劍殺)이 내려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옆의 제자들 보고 “전두환 죽게 된다”는 말을 여러번 하였다. 신검살이란 칼에 맞아 죽는다는 살이다. 그러나 탄허가 전두환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어서 만나고 온 뒤에는 “직접 얼굴을 보니 신검살이 안보였다”면서 “그거 참 이상하다”며 제자들에게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전한다. 후에 아웅산 폭발 사건..

풍수지리 2023.08.11

[조용헌 살롱] (6)

풍수지리(風水地理) [조용헌 살롱] (6) 그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이 물속으로 점점 침몰한다는 내용이다. 지축이 바뀌면 북극의 빙하가 녹아 일본이 가라앉고 동해안도 강릉 일대는 물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반대로 서해안은 점점 융기되어 수천리의 바다가 육지로 변한다고 전망하였다. 탄허 스님은 특히 일본이 물에 잠긴다는 예언을 여러번 강조하였다. 탄허 스님이 밝혀 놓은 그 예언이 ‘주역선해’(周易禪解·교림출판사, 1982년) 3권의 마지막 부분인 427쪽에 나온다. ‘대덕(大德)이 지(地)를 종(從)함이여 지(地)가 좆아 말하도다.(水潮南天하고 水汐北地 등을 의미함) 천일(天一)의 임수(壬水)가 만번 꺾어 반드시 동으로 가도다.(극동인 일본을 의미함) 지일(地一)의 자수(子水·陰水)가 만번 꺾어 돌아가..

풍수지리 2023.08.10

[조용헌 살롱] (5)

풍수지리(風水地理) [조용헌 살롱] (5) 후천개벽 주장한 ‘正易’의 김일부 선생 숙신비결은 탄허가 계룡산 학하리의 자광사에 머무르던 시절 입수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가 1970년대 초반이었다. 학하리는 명당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일명 추성낙지(樞星落地)의 명당으로 불렸다. 추성은 중심이 되는 별이니 북극성을 가리킨다. 북극성이 떨어진 자리니 그 의미가 심중하다. 계룡산 전체가 명당이 수두룩한 곳이지만 탄허는 그중에서도 학하리를 아주 좋아하였다. 자광사 터는 원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공부하던 집성사(集成社) 자리로, 우암이 여기에 주자(朱子) 영정 모셔놓고 공부하던 곳이다. 지금도 우암이 심은 소나무가 남아 있어 옛날의 자취를 전하고 있다. 탄허가 머무르던 1970년대 초반의 자광사에는 ..

풍수지리 2023.08.09

[조용헌 살롱] (4)

풍수지리(風水地理) [조용헌 살롱] (4) 儒·佛·仙 모두 포용했던 탄허 스님 다시 비결로 돌아가 보자. ‘조선비결전집’의 목록 가운데 흥미롭게도 ‘숙신비결’은 발견되지 않는다. 일반인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는 비결인 것이다. 숙신(肅愼)은 숙신족(肅愼族)의 숙신을 말한다. 숙신은 만주 동쪽에 거주하던 부족을 가리킨다. 지금의 베이징 위쪽에 해당하는 지역이고 상고시대에는 고조선의 강역에 속하였다. 따지고 보면 숙신족은 우리 민족의 원류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 비결이 지금까지 전해지게 되었는가. 그 배경을 보면 탄허(呑虛:1913~83) 스님이 나타난다. 탄허 스님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자. 필자의 추적에 의하면 ‘숙신비결’은 불교의 탄허 스님을 따르던 일련의 제자 그룹들 사이..

풍수지리 2023.08.08

[조용헌 살롱] (3)

풍수지리(風水地理) [조용헌 살롱] (3) ‘정감록’ 굳게 믿었던 강원룡 목사 부친 이는 국가적 차원의 비결이고, 개인적 차원의 비결은 피난지지를 구하는 데 집중되었다. 그게 바로 ‘십승지’다. 지금도 전국의 십승지라고 소문난 곳을 가보면 할아버지나 아버지대에 비결을 믿고 고향의 전답을 팔아 십승지로 이사한 집안 후손들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풍기·무주·계룡산·변산 등이 그런 곳이다. 19세기말~20세기 초반에 걸쳐 비결파들이 가장 선호하였던 거주지들이다.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이끌었던 강원룡 목사의 자서전인 ‘빈들에서’(1권, 118쪽)를 보면 비결을 믿고 강원도로 이사했던 강목사의 부친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강목사의 고향은 함경남도 남송면 원평리였다. 강목사의 아버지는 합리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이었..

풍수지리 2023.08.07

[조용헌 살롱](2)

풍수지리(風水地理) [조용헌 살롱](2) 즉, 골치아픈 ‘안티’ 세력들로 간주되어 감시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비결을 신봉하는 사람치고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이 적었고, 항상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갈망하는 ‘운동권’이 많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운동권의 교본이 ‘정감록’(鄭鑑錄)이다. 그래서 나는 정감록을 ‘조선시대의 해방신학’으로 규정해야 옳다고 본다. 정도령은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미륵)였고, 메시아가 출현하면 민중은 부도덕한 체제의 탄압으로부터 해방된다고 믿었다. 총독부 경찰국에서 비밀리에 전국의 비결들을 수집하여 만든 소책자가 지난번에 말한 ‘조선비결전집’(朝鮮秘訣全集)이다. 이 책의 목차 앞부분에는 ‘비장’(秘藏)이라고 찍혀 있고, 다음과 같은 경구를 어떤 사람이 적어 놓았다. ‘이 비..

풍수지리 2023.08.06

[조용헌 살롱](1)

풍수지리(風水地理) [조용헌 살롱](1) 계룡산파의 秘訣과 탄허 스님이 남긴 일화들 秘訣이란 무엇인가. 과연 인생살이에서 비결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일컬어 ‘秘訣派’라고 부른다. 정도령이 출현한다는 ‘정감록’(鄭鑑錄)이나 ‘임오년에는 문둥이 觀相 지닌 사람이 王이 된다’는 ‘숙신비결’(肅愼秘訣) 등이 대표적인 비결들이다. 이러한 예측은 비결파들 특유의 세상 읽기 방법이다. 보통사람들은 사회과학적 조사방법에 의거한 여론조사에 의지하지만, 독특한 주관을 가진 비결파들은 하늘의 계시를 자신이 직접 중계방송함으로써 여론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굳이 표현한다면 매스컴이 등장하기 이전의 여론 형성 방법이라고나 할까. 이번호에는 한국의 비결..

풍수지리 2023.08.05

명리학과 한의학 꿰뚫은 大家 한동석의 大예언(10)

풍수지리(風水地理) 명리학과 한의학 꿰뚫은 大家 한동석의 大예언(10) 계룡산파 인물과의 교류 이북 출신들은 과거공부를 해보았자 미관말직이나 전전할 뿐, 출세를 못하니 실생활에서 당장 활용할 수 있는 풍수·사주·한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 방면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남에 비해 이북이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를 지녔던 성싶다. 그러니 이제마와 같은 독창적인 사상가가 나올 수 있었고, 한동석·이석영과 같은 한의학과 사주의 대가들이 배출될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외래종교인 기독교가 이남보다 이북에서 훨씬 급속하게 퍼진 사회적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느 나라든 외래종교나 신흥종교는 소외 받는 지역에서 먼저 수용되게 마련이다. 한동석의 사상적 뿌리 가운데 또 하나는 계룡산파다...

풍수지리 2023.08.04

명리학과 한의학 꿰뚫은 大家 한동석의 大예언(10)

풍수지리(風水地理) 명리학과 한의학 꿰뚫은 大家 한동석의 大예언(10) 계룡산파 인물과의 교류 이북 출신들은 과거공부를 해보았자 미관말직이나 전전할 뿐, 출세를 못하니 실생활에서 당장 활용할 수 있는 풍수·사주·한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 방면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남에 비해 이북이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를 지녔던 성싶다. 그러니 이제마와 같은 독창적인 사상가가 나올 수 있었고, 한동석·이석영과 같은 한의학과 사주의 대가들이 배출될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외래종교인 기독교가 이남보다 이북에서 훨씬 급속하게 퍼진 사회적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느 나라든 외래종교나 신흥종교는 소외 받는 지역에서 먼저 수용되게 마련이다. 한동석의 사상적 뿌리 가운데 또 하나는 계룡산파다...

풍수지리 2023.08.03

명리학과 한의학 꿰뚫은 大家 한동석의 大예언(9)

풍수지리(風水地理) 명리학과 한의학 꿰뚫은 大家 한동석의 大예언(9) 한동석과 이제마 이제마는 비방을 가지고 있었다. 제자였던 한동석 외할머니의 오빠가 “그 비방은 언제나 보여주실 겁니까”하고 물으면 “내가 죽을 무렵에 주겠다”고 답변하고는 하였다. 그 비방을 얻기 위해 외할머니의 오빠는 이제마 선생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거처를 잡아놓고 살았다. 임종이 가까이 오면 곧바로 이제마 선생에게 달려가기 위한 조치였다. 결국 이제마 임종후 도착해 비방을 입수할 수는 있었으나 거기에 씌여진 한자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 한자들은 이제마가 새로 창안한 글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해독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한가지 이야기가 묘에 관한 내용이다. 이제마는 생전에 자신의 묘자리를 미리 보아놓고, 자신이 죽으면 관..

풍수지리 2023.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