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120

102. 백 발 한

102. 백 발 한    진종일 산속을 걷다가 어느 오막살이에서 하룻밤을 지새운 김삿갓이 다음날     아침 상투를 다시 틀려고 거울을 들려다 보다가 적이 놀랐다.     ‘아니 내 머리가 어느새 이렇게 반백이 되었던가?’ 머리카락을 헤집고 다시     살펴보니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았다.     그 옛날 白樂天(백낙천)은 흰머리 한 올을 발견하고도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    다지 않던가.               어느새 하얀 머리카락 한 올이               아침 거울 속에 나타나 보이네.               한 가닥뿐이라고 안심하지 말라               이제부터가 백발이 될 시초니라.               白髮生一莖(백발생일경)               朝來明鏡裏(..

김삿갓 이야기 2024.12.22

101. 내 눈이 어느새 이렇게

101. 내 눈이 어느새 이렇게    김삿갓이 묘향산을 떠나 熙川(희천)을 지나서 江界(강계)로 들어섰을 때에는    아직 입동도 안 되었는데 아침저녁으로 얼음이 얼기 시작하였다.     북쪽지방은 계절이 유난히 빠르다.     “오동 잎 하나 떨어지면 모두 가을임을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오동일    엽낙천하진지추)”고 했으니 이제 그도 겨울 준비를 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삿갓이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을 형편이 아니니 헤진 옷이라도 기    워 입으려고 바늘귀를 꿰려 했으나 눈이 가물가물 좀처럼 꿰여지지 않는 다.    ‘내 눈이 어느새 이렇게 어두워졌는가.’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    나 그뿐이랴. 글자도 잘 안보이고, 이를 잡으려고 해도 전 ..

김삿갓 이야기 2024.12.21

100. 묘 향 산

100. 묘 향 산    김삿갓이 妙香山(묘향산)을 찾아 寧邊(영변) 고을에 왔지만 먼저 찾은 곳은    藥山(약산)이었다.     영변의 鎭山(진산)인 약산은 참으로 명산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의 神市開天(신시개천) 자리가 바로 이곳이라고도     하고,     단군이 탄생했다는 단군굴이 있다고도 전하는 산이다.     옛 기록에 "준엄한 멧부리들이 사방으로 둘러 서 있는 모양이 마치 무쇠 솥    과 같다."하여     藥山城(약산성)을 鐵瓮城(철옹성)이라 한 데서 難攻不落(난공불락)의 城砦    (성채)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고 전한다.     약산성을 두루 살펴본 김삿갓은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삼대 명    산의 하나라는 묘향산으로 향했다.     묘향산하면 西山大師 休靜(..

김삿갓 이야기 2024.12.20

99. 부자도 가난뱅이도

99. 부자도 가난뱅이도      평양에서 竹香(죽향)과 이별한 김삿갓은 묘향산을 향하여 북으로 가는 중이    었는데 가는 곳마다 침식을 해결하기가 더욱 난감해 진다.     오십평생을 거지생활을 해 오면서도 이때처럼 돈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돈이 한 푼도 없을 때는 아무 걱정도 없었건만 林進士(임진사)가 준 노잣돈    이 달랑 달랑해가니 전에 없던 걱정이 생긴 것이다.               부자는 부자대로 걱정, 가난뱅이는 가난뱅이대로 걱정               배가 부르나 고프나 걱정하기는 마찬가지               부자도 가난뱅이도 내 원치 않으니               숫제 빈부를 떠나서 살고 싶어라.               富人困富貧困貧(부인곤부빈곤빈)      ..

김삿갓 이야기 2024.12.19

98. 죽향과의 이별

98. 죽향과의 이별    林進士(임진사)의 환대와 竹香(죽향)의 보살핌 속에 꿈같은 나날이 덧없이 흘    러가고 있었다.     김삿갓에게는 처음 맛보는 황홀한 날들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머물러 있을 수    만은 없었다.     한사코 잡는 임진사에게 작별을 고하고 떠나는 그를 죽향이 대동강나루터 까지    전송을 나왔다.     김삿갓은 차마 배에 오르지 못하고 죽향을 바라보는데     죽향이 눈물 어린 시선으로 김삿갓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떨리는 목소    리로시 한 수를 읊는다.               대동강에서 정든 님과 헤어지는데               천만가지 실버들도 잡아매지 못하오.               눈물 어린 눈으로 눈물 젖은 눈 바라보니               ..

김삿갓 이야기 2024.12.18

96. 을 밀 대

96. 을 밀 대    그 날도 김삿갓은 혼자 乙密臺(을밀대)에 올랐다.    錦繡山(금수산) 위의 평탄한 곳에 자리한 을밀대에는 四虛亭(사허정)이라    는 정자가 있어서 을밀대를 일명 사허정이라고도 부른다는 것이다.     하고많은 이름 중에 왜 하필이면 정자 이름을 사허정이라고 했을까? 처음    에는 의아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을밀대는 동서남북이 모두 탁 틔어 있    서 사허정이라는 이름이 가장 적합한 듯싶었다.     하늘로 날아올라갈 듯이 네 활개를 활짝 펴고 있는 사허정의 雄姿(웅자)를    노래 한 당나라 어느 시인의 시 한수가 걸려 있다.               금수산 머리에               손바닥처럼 평평한 대가 있네.               모름지기 하늘에 사는 신선이..

김삿갓 이야기 2024.12.16

95. 모 란 봉

95. 모 란 봉    대동강의 경치가 좋아 시흥이 도도했던 것도 잠시,     나룻배에서 내린 그를 반겨줄 곳이 만무하여 구차한 하룻밤을 보낸 김삿    갓이 다음날 牡丹峰(모단봉)에 올랐다.     평양북쪽에 있는 높이 96m, 평양의 鎭山(진산)인 錦繡山(금수산)과 그 줄    기에 있는 乙密臺(을밀대)와도 연결되는 경승지여서 꿈에 그리던 평양의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 을 곳이기 때문이었다.     저 멀리 눈 아래 비단 폭처럼 넘실거리는 것이 대동강, 그 위에 절벽을 이    루며 우뚝 솟은 산이 금수산,     강 건너 수양버들이 실실이 우거진 섬은 綾羅島(릉라도), 그 옆으로 半月    島(반월도), 羊角島(양각도) 등등의 작은 섬들이 점점이 河中島(하중도)를     이루고 있다. ..

김삿갓 이야기 2024.12.15

94. 대동강

94. 대동강    육십노과부의 집을 나선 김삿갓은 당초의 목표였던 평양을 향하여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여러 곳을 두루 구경하면서 몇 달이 지나서야 대동강 나루터에 다다르니     도도하게 흘러내리는 강물만 바라보아도 가슴이 설레 인다.     价川(개천)에서 흘러내리는 順川江(순천강)과 陽德(양덕), 孟山(맹산)에서     흘러내리는 沸流江(비류강), 그리고 江東(강동), 成川(성천) 등지에서 흘러    내리는 西津江(서진강) 등등, 여러 갈래의 물이 모여 하 나의 커다란 강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大同江(대동강)이라 했다던가.     나룻배에 올라 대동강을 건너려니 고려 인종 때의 문신이요 시인이었던 이    고장출신 南湖 鄭知常(남호 정지상)의  「대동강」이라는 시가 ..

김삿갓 이야기 2024.12.14

93. 육십 노과부

93. 육십 노과부    제2의 고향인 황해도 曲山(곡산)을 뒤로 하고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던 김    삿갓은 어느 날 한 노파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어느덧 가을로 접어들어 달이 휘영청 밝은데 노파가 송편을 빚고 있었다.     예쁘게 빚어 놓는 송편만 보아도 침이 절로 넘어가지만 교교한 달빛 아래     곱게 늙은 노파의 송편 빚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홀로 시 한 수를 읊     었다.               손바닥으로 살살 돌려서 새알을 만들고               가장자리를 하나하나 조가비처럼 오므린다.               쟁반 위에 가지런히 세우니 첩첩한 산봉우리               젓가락으로 집어 들면 반달처럼 아름답다.               手裡廻廻成鳥卵(수..

김삿갓 이야기 2024.12.13

92. 바 둑

92. 바 둑    김삿갓은 어릴 때 함께 글공부하던 친구들과 어울려 바둑을 두고 있었다.     지난 번 장기에 대한 시를 보고 감탄했던 친구들은 바둑에 관한 시도 한 수     지어보라 졸라댔고 김삿갓은 못 이기는 척 다시 한 수 읊었다.               검은 돌 흰 돌이 진을 치고 에워싸며               잡아먹고 버리기로 승부가 결정 난다.               그 옛날 사호들은 바둑으로 세상 잊고               삼청의 신선놀음 도끼자루 썩었다네.               縱橫黑白陣如圍(종횡흑백진여위)               勝敗專由取捨棋(승패전유취사기)               四皓閑枰忘世坐(사호한평망세좌)               三淸仙局爛柯歸(삼청선국란가귀)..

김삿갓 이야기 2024.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