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120

71. 利川(이천)의 郭風憲(곽풍헌)영감

71. 利川(이천)의 郭風憲(곽풍헌)영감    여주 神勒寺(신륵사)를 떠난 김삿갓은 서울을 향하여 가다가 利川(이천)의    어느 선비집에서 며칠을 묵었다.     길에서 한 선비를 만나 따라 갔으나 사랑에는 그의 아버지 84세의 노인이    홀로 앉아 있었다.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노인을 만났지만 이토록 장수한 노인을 만    나기는 처음이었다.     젊어서는 鄕所職(향소직)의 하나인 風憲(풍헌) 벼슬까지 했다는 이 노인은    이제는 다리에 힘이 없어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눈이 어둡고 귀가 멀    어 잘 보고 듣지 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글을 읽던 버릇만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 눈     으로 黃帝內經(황제내경; 중국의 가장 오래된 의학서)을 읽으려고 애..

김삿갓 이야기 2024.11.21

70. 여주 신륵사

70. 여주 신륵사    원주 覺林寺(각림사)에서 나온 김삿갓은 발길을 驪州(려주)로 돌렸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고장은 되도록 피하면서도 명승지만은 골라가며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여주에서 대표적인 명승지는 뭐니 뭐니 해도 神勒寺(신륵사)라 하겠다.     신륵사는 鳳尾山(봉미산) 동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데 바로 눈앞에는 한강    의 상류인 驪江(려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강가의 바위 위에는 江月軒(강월헌)이라는 정자까지 서있어서 고려 때 명승    懶翁 禪師(라옹 선사)의 일화와 함께 산수의 조화미 위에 또 하나의 멋을 더    하여 가위 금상 첨화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벽돌로 쌓아 올린 유명한 塼塔(전탑)이 있어서 속칭 벽돌벽자 甓    ..

김삿갓 이야기 2024.11.20

69. 원주 치악산

69. 원주 치악산    한양을 향하던 김삿갓은 원주 고을의 진산인 치악산을 구경하려고 혼자     산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원주는 形勝(형승)이 뛰어난 곳인지라 산에는 喬木(교목)이 울창하고 저    멀리 산 밑으 로는 蟾江(섬강)의 푸른 물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 경치가 얼마나 좋았던지 성종 때 영상을 지낸 문신 尹子雲(윤자운)     (호;樂閒齋(악한재) 1416~1478)은 이곳을 지나다가 다음과 같은 시를 읊    었다.              천 년 옛 나라에는 교목이 남아 있고               십 리 긴 강은 고을의 성을 둘렀구나.              千年古國餘喬木(천년고국여교목)               十里長江繞郡城(천리장강요군성)    원주 일대에는 산..

김삿갓 이야기 2024.11.19

68. 滿酌不須辭(만작불수사)=넘치는 이 술잔 사양치 말게

68. 滿酌不須辭(만작불수사)넘치는 이 술잔 사양치 말게    "천하일색 양귀비도 한 줌 흙을 남겼을 뿐인데 무엇을 망설이느냐" 는 유혹     의 시를 받아 읽고 충격을 받아 마음이 흔들렸는지,     주모는 오래도록 망설인 끝에 술상을 다시 보아 들고 김삿갓의 방으로 들어    갔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결심한 바가 있었던지 의외의 제안을 해 오는 것이    아닌가.     "제가 삿갓 어른을 모시되 이부자리를 펴놓는 것만으로 대신하면 어떻겠 습    니까?"     이부자리만 펴놓고 살을 섞는 짓만은 하지 말자는 뜻이었다.     김삿갓은 여인의 고고한 뜻을 알아채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좋도록 하세그려. 자고로 志不可滿(지불가만)이요 樂不可極(악불가극)이라    (뜻을 채워서는 ..

김삿갓 이야기 2024.11.18

67. 王昭君(왕소군)의 고운 뼈도 胡地(호지)의 흙이 되고

67. 王昭君(왕소군)의 고운 뼈도 胡地(호지)의 흙이 되고    김삿갓이 원주를 거처 한양으로 가려고 얼마를 가다가 날이 저물어 길가의     주막에 들렀다.     목은 컬컬하지만 囊中에 無一分(낭중에무일분)이라 술을 청할 생각도 못하    고 서산에 기우러지는 석양노을을 바라보며 술청에 걸터앉아 옛 시 한 수를    읊조리고 있었다.     저만치에서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주모가 슬며시 다가오더니    「손님은 시를 좋아하시나 보죠. 혹시 시인이 아니세요?」하고 묻는다.     김삿갓은 주모의 질문에 적이 놀라면서 주모는 시를 아는가 하고 물었다.    “齋狗三年能風月(재구삼년능풍월)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한다.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술장사를 하기 전에 10년 가까이 서..

김삿갓 이야기 2024.11.17

66. 訓戒訓長(훈계훈장)

66. 訓戒訓長(훈계훈장)    훈장은 술에는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자기가 좋아했다는 절세미인을 잊지 못하는 괴로움을 지금까지도    술로 달래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선비로서의 긍지만은 대단하여 취중에도 김삿갓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 뇌이고 있었다.     「자네가 시조박이나 짖는다고 철없이 거들먹거려대기는 하네만 내가 보     기엔 아직도 口尙乳臭(구상유취)야. 암 구상유취구 말구」.     선비다운 점이라고는 찾아 볼 수도 없는 주제에 오만하기 그지없는 자세로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밤새도록 잠을 설치고 말았다.     날이 밝자마자 붓을 들어 이란 제목으로 호되게 꾸짖    는 시 한 수를 써갈겨놓고,     온다간다 소리..

김삿갓 이야기 2024.11.16

65. 자네가 지네

65. 자네가 지네    김삿갓이 집을 나섰지만 애초부터 洪城(홍성)으로 가서 어머니를 뵈올 생    각은 아니었다.     자식으로서 당연히 어머니를 찾아뵙는 것이 도리이지만 어머니를 뵙고서     는 차마 다시 방랑길에 오르지 못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을 나선 그는 마누라와 자식 놈이 금방이라도 쫓아 올 것만 같아 무작정    산길을 달리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 서녘 하늘에 놀이 붉어오고 있었    다.     이제부터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강원도와 함경도를 구경하였으니 이번에는 발길을 남쪽으로 돌려 충청, 전    라, 경상도 방면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서울을 거쳐 황해, 평안도의 서북쪽으로 갈 것인가를 망설이던 그     는 차마 어머니가 계시는 충청도로 가지 ..

김삿갓 이야기 2024.11.15

64. 다시 방랑길에

64. 다시 방랑길에    가을은 시인의 마음을 까닭 없이 산란하게 만드는 계절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가을이건만 시인에게 있어서는 번민의     계절이요, 애상의 계절인 것이다.     「조상에 대한 속죄로 한평생을 방랑객으로 살아가려던 내가 양심을 속여 가    며 가족들과 함께 이렇게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어도 좋단 말인가.」     김삿갓은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 보며 술잔만 기울이고 있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에 한번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하고               벼슬을 좋아하는 사람은 조정에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               山林之士往而不能反(산림지사왕이불능반)               朝廷之士入而不能出(조정지사입..

김삿갓 이야기 2024.11.14

63. 燕(연)=제비. 甛瓜(첨과)=참외

63. 燕(연)=제비. 甛瓜(첨과)=참외    김삿갓은 어느 날 마당가를 서성이며 바람을 쏘이다가 때마침 빨랫줄에    제비가 앉아있는 것을 보고 시 한 수를 지었다.     무덥던 여름이 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자 그의 가    슴 속에는 깊이 도사리고 있던 放浪癖(발랑벽)이 다시 머리를 들고 일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불어오는 동녘바람에 제비가 날아들어               복숭아나무 아래로 옛집을 찾아오네.               봄이 가면 너도 또한 멀리 날아가서               봉숭아 꽃 피는 내년 봄을 기다리리.              一任東風燕子斜(일임동풍연자사)               桃李樹下訪君家(도리수하방군가)      ..

김삿갓 이야기 2024.11.13

62. 牛·丑(우·축)=소

62. 牛·丑(우·축)=소    翼均(익균)의 머리가 남달리 총명한 것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날부터는 어린 아들에게 시를 직접 가르쳐 주기까지 하였다.    언젠가는 아들과 함께 시골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남의 집 외양간에 늙    은 소가 있는 것을 보고 시를 지어 보라기에 다음과 같이 읊었다.              수척한 뼈 앙상하고 털은 닳아 빠졌는데               곁엔 늙은 말과 구유 하나 나눠 쓰네.               거친 들판 달구지 끌던 옛날이 아득하고               머슴 따라 청산 노닐던 일도 꿈결 같구나.              瘦骨稜稜萬禿毛(수골릉릉만독모)               傍隨老馬兩分槽(방수로마양분조)          ..

김삿갓 이야기 2024.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