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120

41. 벼룩 (蚤:조)사람 몸에 기생하는 `벼룩`

41. 벼룩 (蚤:조)사람 몸에 기생하는 `벼룩`    시를 읊는 사이에 이란 놈은 옷깃 속으로 기어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장단     지가 바늘로 찔리는 듯이 따끔해 온다.     말할 것도 없이 벼룩이란 놈이 쏘아 대고 있는 것이다.     김삿갓은 은근히 화가 동해 이번에는 '벼룩' 이란 제목으로 즉흥시를 이렇    게 읊었다.              대추씨 같은 꼴에 날래기는 대단하다               이하고는 친구요 빈대와는 사촌이라               낮에는 죽은 듯이 자리 틈에 숨었다가               밤만 되면 이불 속에서 다리를 물어뜯네.              貌似棗仁勇絶倫(모사조인용절륜)               半蝨爲友蝎爲隣(반슬위우갈위린)             ..

김삿갓 이야기 2024.10.21

40.이:虱(슬)사람몸에 기생하는 `이`

40. 이 (虱:슬)사람 몸에 기생하는 `이`    김삿갓이 산하를 주유하면서 때로는 시와 풍류를 아는 선비를 만나거나     후덕한 주인을 만나 융숭한 대접을 받기도 했지만 대개는 초막이나 토굴     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이, 벼룩, 빈대 등의 기생충에게 항상 시달이고 있     었다.     어느 날 그는 허리춤을 더듬어 이 한 마리를 잡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음과 같은 시 한수를 읊었다.              배고프면 피를 빨고 배부르면 물러가는               삼백 곤충 중에서도 가장 못난 네놈아               나그네의 품속에서 낮잠이나 방해하고               새벽이면 주린 배의 쪼르륵 소리를 듣는구나.               飢而..

김삿갓 이야기 2024.10.19

39. 設宴逐客非人事(설연축객비인사)잔치를 벌이고서 손님을 쫓는 것은 인사가 아니니

39. 設宴逐客非人事(설연축객비인사)잔치를 벌이고서 손님을 쫓는 것은 인사가 아니니    오늘도 토굴신세를 면 치 못할 것으로 알았던 김삿갓은 고개 너머 김참봉      댁의 회갑잔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지만 거지행색의 그를 그 집    청지기는 문간에서 내쫓으려 했다.     할 수 없이 김삿갓은 시를 한 수 휘갈겨서 주인에게 전하라 하고 뒤 돌아    나오고 있었다.              잔치를 벌이고서 손님을 쫓는 것은 인사가 아니니               주인의 인사가 사람답지 못하구나.              設宴逐客非人事(설연축객비인사)               主人人事難爲人(주인인사난위인)    글줄이나 읽은 김참봉은 청지기로부터 시를 받아 보고 항간에 온갖 소문    이 떠도는 ..

김삿갓 이야기 2024.10.18

38. 不知汝姓不知名(불지여성불지명)성도 이름도 모르는 그대여

38. 不知汝姓不知名(부지여성불지명)성도 이름도 모르는 그대여    釋王寺(석왕사)에서 아직도 천진난만한 천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半月行者(반월행자)와 작별한 김삿갓은 자세히 보니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어도 썩어가는 시체 에는 파리 떼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시체 옆에는 쌀이 조금 들어 있는 뒤웅박과 지팡이 하나가 놓여 있는 것    으로 보아 시체의 주인공은 거지임에 틀림없었다.     김삿갓은 눈앞의 시체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세상인심이 야박도 하지, 시체가 썩어 가는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지    는 않았을 터인데 흙 한줌 끼얹어 줄 인심도 없었더란 말인가?     김삿갓은 두루마기를 벗어부치고 시체를 오목한 곳으로 끌어다 놓고 연    장도 없이 손으로 흙을..

김삿갓 이야기 2024.10.17

37. 釋王寺(석왕사)와 李成桂(이성계)

37. 釋王寺(석왕사)와 李成桂(이성계)    雪峰山 釋王寺(설봉상 석왕사)는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성계가 아직 永興    (영흥)에 살면서 武藝(무예)를 닦고 있던 시절, 舞鶴大師(무학대사)를 처    음 만나 장차 王이 될 것이라는 꿈 풀이를 듣고 大望(대망)을 품었으며, 후    일 뜻을 이룬 후에 이를 기념하여 세운 절이라는 전설이 무성한 곳이다.     半月行者(반월행자)는 직접 보기라도 한 듯 신바람이 나서 김삿갓에게 석    왕사의 유래 를 설명한다.     무학대사가 이곳의 한 토굴에서 수도하고 있을 때 破字占(파자점)을 잘 치    기로 유명 하다는 소식을 듣고 이성계가 그를 찾았다.     그런데 먼저 점을 치러 온 사람이 있었고, 이성계는 등 뒤에서 호기심을 가    지고 바라보고 있었..

김삿갓 이야기 2024.10.16

36. 花樹花花立(화수화화립)꽃나무는 꼿꼿이 서 있고

36. 花樹花花立(화수화화립)꽃나무는 꼿꼿이 서 있고    飄飄然亭(표표연정)에서 釋王寺(석왕사)까지는 산길로 100여 리,    표표연정을 떠난 지 닷새 만에 석왕사에 당도한 김삿갓은 먼저 半月行者(반월    행자)를 찾았다.     그는 空虛스님의 말씀대로 좀 모자라기는 하지만 인품만은 선량한 사람이 었다.     30세 쯤 되어 보이는 반월행자는 자기의 스승이신 공허 큰스님으로부터 삿 갓선    생의 말씀을 익히 들었다면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는 본시 글재주도 조금은 있는 편이어서 스님이나 선비를 만나면 괴이한 글을    써놓고 뜻을 풀어 보라고 하는 '글풀이내기'를 좋아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이번에도 고기가 물을 만난 듯 김삿갓을 만나 겨우 인사를 나누고 저녁 을    먹고 ..

김삿갓 이야기 2024.10.15

35. 鶴去樓空鳥獨啼(학거루공조독제)학은 가고 빈 다락에 잡새만 우짖누나.

35. 鶴去樓空鳥獨啼학은 가고 빈 다락에 잡새만 우짖누나.    飄飄然亭( 표표연정)이라는 정자 이름의 出典(출전)이 陶淵明(도연명)의     歸去來辭(귀거래사)일 것이라는 김삿갓의 추측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먼 옛날에 신선이 여기에서 학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갔는데 그 자리에     정자를 짓고 는 뜻에서     표표연정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전설이란 덮어놓고 그저 믿으면 그만이지 미주알고주알 따져서 무엇하랴.     어느덧 날이 저물어 서녘 하늘에는 놀이 붉게 물들었고, 산기슭에서는 저     녁연기가 아련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김삿갓은 신선이 학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광경이 눈에 보이는 듯하여 다시    시 한 수를 읊는다.              기나긴 방축 끝에 솟아 있는..

김삿갓 이야기 2024.10.14

34. 一城踏罷有高樓(일성답파유고루)안변 땅 두루 돌다 좋은 정자 만나니

34. 一城踏罷有高樓(일성답파유고루)안변 땅 두루 돌다 좋은 정자 만나니    鶴城山 서쪽에는 飄飄然亭이라는 또 하나의 정자가 있어 동쪽의 駕鶴樓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삼방계곡의 맑은 물이 흐르고 흐르다가 이곳에 이르러서는 물결이 일렁거     리는 龍塘여울을 이루는데 그 앞으로 쭉 뻗어 나온 학성산의 한 줄기 산마     루 끝에 정자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아마도 飄飄然亭이라는 이름은 陶淵明의 歸去來辭에 나오는 風飄飄而吹衣    (바람은 솔솔 옷자락에 분다)라는 시구에서 따 온 듯하였다.     주위에는 고목이 울창하여 꾀꼬리가 날아들고, 바다가 가까운 탓인지 南大    川 물가에는 갈매기가 날고 있으니     이 풍광을 바라보는 김삿갓이 어찌 시 한 수가 없을 수 ..

김삿갓 이야기 2024.10.13

33. 試問何人始起樓(시문하인시기루)묻노니 이 다락 누가 세웠던고

33. 試問何人始起樓(시문하인시기루)묻노니 이 다락 누가 세웠던고    김삿갓은 관북으로 들어선지 열흘 만에 駕鶴樓라는 유명한 정자에 도달하     였다.     安邊고을의 鎭山은 鶴城山이다.     가학루는 학성산 동쪽 언덕 위에 동해를 멀리 굽어보며 날아갈 듯이 솟아     있는 정자다.     가학루의 도리에는 시인묵객들이 남겨 놓은 수많은 詩가 현판으로 걸려     있었다.     김삿갓은 고려조의 충신이었던 鄭夢周의 시에 유난히 시선이 끌렸다.               묻노니 이 다락 누가 세웠던고               내 이제 다락에 올라 오래 머무노라               십 년 세월 헛되이 모든 일 잊었다가               옛 싸움터 바라보니 눈물이 절로 솟네.       ..

김삿갓 이야기 2024.10.11

32. 終日綠溪不見人(종일록계불견인)계곡 따라 종일 가도 사람 하나 못 보더니

32. 終日綠溪不見人(종일록계불견인)계곡 따라 종일 가도 사람 하나 못 보더니    김삿갓은 노파와 작별하고 다시 나그네의 길에 올랐다.     安邊은 관동과 관북의 접경지대다.     관동에서 관북 땅으로 접어드니 산세가 더욱 험준하고 인가도 점점 희소    하였다.     배가 고프면 솔잎을 따 먹기도 하고 칡뿌리를 캐 먹기도 하면서 토굴신세    를져 오다가 사흘 만에 처음으로 인가를 만났다.     오막살이 주인은 반갑게 맞이해 주었지만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집은    창호지는 언제 발랐는지 새까맣고, 방안에는 먼지가 그대로 쌓여 있었다.    대접한답시고 지어온 보리밥은 몇 년이나 묵은 보리쌀인지 발갛게 절어    있었다.     김삿갓은 하룻밤 신세를 지고 그 집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

김삿갓 이야기 2024.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