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120

51. 可憐門前別可憐(가련문전별가련)가련의 문전에서 가련과 이별하니

51. 可憐門前別可憐(가련문전별가련)가련의 문전에서 가련과 이별하니    김삿갓이 행장을 꾸리고 뜰 아래로 내려서자 가련은 치마귀로 입을 가리며     눈물만 글썽거릴 뿐 아무 말도 못했다.     김삿갓도 그 모양을 보고서는 발길을 돌리기가 거북하여 잠시 머뭇거리 다가    "이 사람아! 佛典(불전)에 會者定離(회자정리)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만나면    헤어지는 것 은 人之常情인데 무얼 그리 섭섭해 하는가.     자네는 시를 좋아하니 내 떠나기 전에 자네한테 옛 시 한 수 읊어 줌세."              새들은 같은 나무에서 잠을 자도               날이 밝으면 뿔뿔이 헤어지네.               인생의 만남과 헤어짐도 그와 같으니               어쩌다 눈물 흘려..

김삿갓 이야기 2024.11.01

50. 白宵誰飾亂灑天(백소수식란쇄천)하얀 눈가루를 누가 하늘에 흩뿌렸는가

50. 白宵誰飾亂灑天(백소수식란쇄천)하얀 눈가루를 누가 하늘에 흩뿌렸는가    김삿갓은 날이 갈수록 가련에게 정이 깊어 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기녀에게 몸을 묶어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어 자기를 스스로     반성해 보기도 했다.     「병연아! 너는 조상의 죄와 네가 지은 죄를 모두 속죄하기 위하여 처자식     을 버리고 집을 나온 몸이 아니더냐.     그러한 네가 이제 와서 기녀의 품에서 방탕을 일삼고 있다면 너 또한 한낱     무뢰한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김삿갓은 그러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세월은 흘러    가서 어느덧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었다.     어느 날 새벽에 무심코 창을 열어 보니 산과 들이 온통 흰 눈으로 뒤덮여     있..

김삿갓 이야기 2024.10.31

49. 半含嬌態半含羞(반함교태반함수)그 모습 수줍달가 애교롭달가

49. 半含嬌態半含羞(반함교태반함수)그 모습 수줍달가 애교롭달가    가련은 김삿갓이 언제 떠나갈지 몰라 불안하므로 그를 오래도록 붙잡아     두기 위하여 날마다 그가 좋아할 만한 경치 좋은 곳을 찾아 관광안내에     나섰다.     가련은 妓女(기녀)답지 않게 흥청거리는 사내를 백안시하며 고고하게 살    아온 여자다. 그러나 김삿갓만은 그의 시에 반하여 미칠 듯이 좋아하였다.    김삿갓도 가련을 사귀어 볼수록 그에 대한 정이 깊어 갔다.     어느 날 밤에는 마루에 나란히 앉아 달을 바라보며 인생을 논하고 시를 말    하다가     '자네는 나하고 있는 것이 그렇게도 좋은가.' 하고 물었더니 가련은 수줍     은 듯 고개를 숙이고 웃음 지은 채 비녀만 매만지는 것이었다.           ..

김삿갓 이야기 2024.10.30

48. 靑春抱妓千金芥(청춘포기천금개)젊은 몸에 기생을 품으니 돈도 티끌 같고

48. 靑春抱妓千金芥(청춘포기천금개)젊은 몸에 기생을 품으니 돈도 티끌 같고    가련의 방에서 술에 취하여 쓰러진 김삿갓은 정신없이 자다가 목이 타올라     깨어 나서 원앙금침 속에 누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저으기 놀랐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모르지만 한편 구석으로 밀어 놓은 술상 위에서는 아    직도 등잔불이 방안을 희미하게 비춰주고 있는데 바로 옆에는 가련이 짐짓     잠들어 누어있는 것이 아닌가.     굶주린 매가 꿩을 덮친다(飢鷹抱雉;기응포치)는 말과 같이 김삿갓인들 오랫    동안 금 욕생활을 해 온 터에 맹렬히 용솟음쳐 오르는 욕망이 없을 수 있을    까마는,     그래도 선비의 체통은 지켜야겠기에 잠시 욕망을 누르고 조용히 가련을 품    어 안으며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김삿갓 이야기 2024.10.29

47.名之可憐色可憐(명지가련색가련)이름이 가련이오 얼굴도 가련한데

47.名之可憐色可憐(명지가련색가련)이름이 가련이오 얼굴도 가련한데    기생 가련의 집은 만세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기슭에 있었다.     집은 큰 편이 아니었지만 에는 매화가무도 두 세 그루 있어서 매우 아담한     인상이었다.     방안으로 들어오니 문갑 위에는 李太白(이태백)과 王維(왕유)의 시집이 놓    여 있고, 벽에 는 왕유의 春桂問答(춘계문답)이라는 족자가 걸려 있었다.              봄 계수나무에게 묻노니               복사꽃 오얏꽃 한창 향기로워               가는 곳마다 봄빛이 가득한데               그대만은 왜 꽃이 없는가.              問春桂(문춘계)               桃李正芳菲(도리정방비)               ..

김삿갓 이야기 2024.10.28

46. 人間無罪罪有貧(인간무죄죄유빈)사람이 무슨 죄겠소. 가난이 죄지요

46. 人間無罪罪有貧(인간무죄죄유빈)사람이 무슨 죄겠소. 가난이 죄지요    사당동 강좌수 집에서 거절을 당한 김삿갓은 발길 닫는 대로 걷다가 길가     의 아무 집으로나 찾아 들 수밖에 없었다.     퍽 가난해 보이는 오두막집이었지만 다행하게도 주인은 어서 들어오라고     기꺼이 맞으면서 불편할 잠자리와 입에 맞지 않을 음식만을 걱정하고 있     었다.     이윽고 저녁상이 나왔는데 밥상 위에 놓인 것은 삶은 감자 한 바가지와 호    박찌개 한 그릇이 전부였다.     자기들은 이렇게 감자만 먹고 산지가 퍽 오래 됐다면서 손님에게까지 이     렇게 대접해서 미안하다고 무척 민망스러워 하는 기색이었다.     인정이란 마음 쓰기에 달인 것이지, 돈이 있고 없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김삿갓 이야기 2024.10.27

45. 祠堂洞裡問祠堂(사당동리문사당)사당동에서 사당이 어디냐고 물으니

45. 祠堂洞裡問祠堂(사당동리문사당)사당동에서 사당이 어디냐고 물으니    관북의 오지 산골에도 사당동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산골 부자가 사당만 덩그렇게 지어놓고 양반행세를 하고 있었나 보다.     주위에서는 조상이 大匡輔國대광보국)을 지낸 姜座首(강좌수)댁이라고    알려졌는데 대광보국이란 품계는 正一品(정일품)의 가장 높은 지위로서    이 산골에 그런 집안이 있을 리 없지만 김삿갓에게는 그런 것을 따져 볼     계제가 아니었다.     우선 하루 밤 신세를 지려고 찾아가서 주인을 찾았다.     머리 모양이나 복식이 모두 괴이한 젊은이가 나왔다가 얼른 문을 닫고 들    어가더니 유건을 쓴 육십객 노인이 나와서 '우리 집에는 잡인을 재울 방이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 보라'는 한 마디..

김삿갓 이야기 2024.10.25

44. 靑松(청송)은 듬성듬성 立(립)이요

44. 靑松(청송)은 듬성듬성 立(립)이요    九天閣(구천각)에서 시 한 수를 읊고 내려온 김삿갓은 저 멀리 잔디밭 위    에 네 사람 의 늙은이가 한 기생을 데리고 술을 마시고 있는 광경을 발견    하고 술 생각 이 간절하여 염치 불구하고 달려가 술 한 잔을 청했다.     젊은 기생을 희롱하며 술잔을 기울이던 늙은이들은 그의 행색을 훑어보    고는 점잔은 어른들이 詩會(시회)를 하는 자리에 함부로 끼어들어 破興    (파흥)을 하느냐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그 일갈에 순순히 물러설 김삿갓도 아니었고 그들의 작태를 보아 선비다    운 점을 찾아 볼 수도 없었다.     내 비록 四書三經(사서삼경)은 못 읽었어도 千字文(천자문)은 읽었으니     漢文(한문)으로 못하면 諺文 을 섞어서라..

김삿갓 이야기 2024.10.24

43. 人登樓閣臨九天(인등루각임구천)누각에 올라 보니 구천 하늘에 닿은 듯하고

43. 人登樓閣臨九天(인등루각임구천)누각에 올라 보니 구천 하늘에 닿은 듯하고    함흥은 역사의 고장인지라 그 옛날 李成桂(이성계)가 살았다는 歸州洞(귀    천동)의 慶興殿(경흥전)을 비롯하여 근처에 있는 聞韶樓(문소루), 仙景樓    (선경루), 觀風亭(관풍정)을 돌아보고 成川江(성천강)을 멀리 눈 아래 굽어    보며 城關山(선관산) 언덕 위에 하늘 높이 솟아 있는 九天閣으로 발길 을     돌렸다.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이 솟았다 하여 구천각이라 했다지만 저 멀리 굽이굽이    흘러가는 성천 강물도 운치가 있거니와 성천강에 가로 놓여 있는 萬歲橋(만    세교)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다리의 길이가 무려 150여 간, 그야말로 하늘의 무지개를 연상케 하는 환상    의 다리였다.  ..

김삿갓 이야기 2024.10.23

42. 光陰者百代之過客(광음자백대지과객)세월은 영원한 나그네

42. 光陰者百代之過客(광음자백대지과객)세월은 영원한 나그네    며칠 전만해도 산길을 걸으려면 등에 땀이 흘렀다.    그런데 가을이 어느새 산속 깊이 숨어들었는지,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     者百代之過客)"라 했던가.     거침없이 흘러가는 것이 세월인 듯싶었다.     얼마를 걸어오다 보니 40 가량 되어 보이는 사나이가 한 무덤 앞에 엎드려     통곡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정 많은 김삿갓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에게 다가가 사연을 물었더니     얼마 전에 자식 놈이 죽었는데 이번에는 또 마누라가 죽었단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 보았지만    지금 그에게 무슨 말을 들려준들 위..

김삿갓 이야기 2024.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