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120

61. 鷄·酉(계·유)=닭

61. 鷄·酉(계·유)=닭    김삿갓은 오랜만에 아늑한 가정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었다.     따뜻한 아내의 보살핌을 받는 것도 즐거움이려니와, 어린 아들과 어울려     시를 지어 보는 것도 처음이요 어려운 詩語(시어)들을 하나하나 이해시    키는 것도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었다.     어느 날 翼均(익균)과 함께 앞마당을 거닐고 있는데 많은 암탉을 거느린    수탉이 날개를 탁탁 치더니 목을 길게 늘이고 「꼬끼오」 하고 울어 대고    있었다.     이것을 본 익균이 닭에 대한 시를 한 수 지어 달라고 어리광을 부리는 것    이었다.              새벽을 알려 줌은 수탉의 특권인가               붉은 벼슬 푸른 발톱 잘도 생겼구나.               달빛이 질 때..

김삿갓 이야기 2024.11.11

60. 猫(묘)=고 양 이

60. 猫(묘)=고 양 이    얼마를 기다리고 있노라니 밭에서 일하던 아내가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를 다리고 들어왔다.     김삿갓은 반가우면서도 놀라웠다.     어머니는 어데 가셨고, 자기가 떠날 때 세살이었던 아들 鶴均(학균)이가    아직도 저렇게 어리지는 않을 것인데 그 애는 어디 가고 저 애는 누구란    말인가?     알고 보니 그 간의 사연은 이러했다.     어머니는 50을 겨우 넘긴 친정 오라비 내외가 80노모를 두고 차례로 세    상을 떠나자 의지할 곳 없는 친정어머니를 봉양하고 어린조카들을 거두    려고 충청도 洪城(홍성)으로 가셨고,     학균이는 아들이 없는 그의 큰아버지가 양자로 데려갔으며,     열 살짜리 아이는 부인이 임신한 것도 모르고 김삿갓이 ..

김삿갓 이야기 2024.11.10

59. 犬(견)=개

59. 犬(견)=개    鐘城(종성)에서 胡地(호지)의 첩이 된 梅花(매화)를 그리며 울적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던 김삿갓은 꿈에 흰 옷을 입고 나타난 어머니를 만나보고     불현듯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였다.     노모가 위중한 병환 중에 계시거나 아니면 이미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함경도 최북단에서 강원도 영월까지는 머나먼 천릿길, 고향으로 돌아가려     니 마음은 바쁜데 길은 너무도 멀었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어계실 것만 같아 운명하시기 전에 뵙고 싶은 마음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음을 재촉하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건만 노루목 마을은 10년이 지나도록 조금도    변한 데가 없었다.     김삿갓은 敗軍之將..

김삿갓 이야기 2024.11.09

58. 退妓 秋月(퇴기 추월)

58. 退妓 秋月(퇴기 추월)    김삿갓을 위로하려고 그와 대작하던 퇴기 추월은 늙은 탓인지 술 몇 잔이     들어가자 그만 먼저 취하는 모양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침울하여 보이는 그였지만 옛날가락이 발동하는지 장구를     두드리며 노래까지 부른다.     목소리가 찢어져 듣기가 거북하건만 어느덧 그녀는 추파까지 보내고 있었    다.     술잔을 거듭할수록 옛 情人 梅花(정잉 매화)생각만 되살아나는 김삿갓은     老妓 秋月(노기 추월)을 상대로 춘정을 발동시킬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러기에 술이나 마시면서 적당히 얼버무려 응수하다가 다음과 같은 즉흥    시 한 수를 읊었다.              봄은 와서 화창한데 그대 홀로 침울하니               묵은 시름 쌓여..

김삿갓 이야기 2024.11.08

57. 錢(전)=돈

57. 錢(전)=돈    梅花(매화)의 집에서는 매화는 보이지 않고 생판 모르는 여인이 방문을     배시시 열고 내다보더니     매화는 몇 달 전에 강 건너 청국사람에게 시집을 갔다면서 손님은 혹시     삿갓양반이라는 분이 아니시냐고 묻는다.     김삿갓은 가슴이 철렁하여 자기 귀를 의심하면서 매화가 시집을 갔다는     것은 무슨 소리이고 나를 어떻게 알아보느냐고 물었다.     여인은 그를 방으로 안내하고 나서 자기는 退妓 秋月(퇴기 추월)이라고     소개한 후에 매화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삿갓양반을 매양 그리워하던 매화는 그에게 매달려 있는 아홉 명의 식구    가 굶어죽을 형편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청국 부자의 첩으로 팔려가면서     온 식구를 데리고 두만강을 건너 아주 뙤땅으..

김삿갓 이야기 2024.11.07

56. 梅花의 고향 鐘城에서 (2)

56. 梅花의 고향 鐘城에서 (2)    김삿갓은 주모의 말대로 향교 뒤에 있는 매화의 집을 찾아 갔다.     날은 어느덧 저물어오는데 초라하기 짝이 없는 그 집에서는 난데없는     거문고 소리가 들려오고 있지 않는가.     가만히 들어보니 採藻曲(채조곡)이 분명하였다.     그 옛날 매화가 歸薺曲(귀제곡)을 즐겨 불렀던 일이 불현듯 머리에 떠    올라 감회가 새삼스러웠다.     잠시 후면 꿈에 그리던 매화를 직접 만날 수 있겠기에 재회의 감격을    그려 보며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읊었다.              헤어져 있었기로 옛정을 잊을쏘냐.               너도 늙었겠지만 내 머리도 세었노라               거울 빛은 차갑고 봄기운은 적적한데             ..

김삿갓 이야기 2024.11.06

55. 梅花의 고향 鐘城에서 (1)

55. 梅花의 고향 鐘城에서 (1)    김삿갓이 함경도 최북단의 종성을 찾은 것은 그 옛날 한때 인연을 맺었던     매화라는 기생을 잊지 못해서였다.     그는 헤어지면서 자기 고향은 종성이고 곧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니 후일     혹 종성에 들으시거든 꼭 찾아 달라고 했었다.     종성으로 향하는 김삿갓의 무딘 가슴에는 잔잔한 파도가 일었다.     얼마나 정겨운 여인이었던가.     시문에 능하여 바로 서로를 알았고, 매화라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우면     서도 다정다감했던 그였다.     애정이 깊어 가던 무렵 김삿갓은 그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읊어 보인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손 뿌리쳐 어울리기 어렵더니               자리를 같이 해 보니 쉽사리 친..

김삿갓 이야기 2024.11.05

54. 吉州吉州不吉州(길주길주불길주) 고을 이름이 길주인데 길한 고을이 아니고

54. 吉州吉州不吉州(길주길주불길주)고을이 길주인데 길한 고을이 아니고    북쪽으로 올라올수록 인심이 사나워서 吉州(길주) 사람들은 낮 선 사람을    좀처럼 재워주려 하지 않았다.     이 고을에서 제법 잘 산다는 許富者(허부자)집을 찾아 가 보았지만 문전박    대를 당하고 말았다.     오랑캐들의 침략을 자주 받아 온 탓으로 인심이 그렇게 모질어 진 모양이    었다.     저물어 가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고 난 김삿갓은 이    렇게 중얼거렸다.              고을 이름을 길주라 하건만 길한 고을이 아니고               성씨를 허가라고 하건만 허락 해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구나.               吉州吉州不吉州(길주길..

김삿갓 이야기 2024.11.04

53. 詩仙(시선)과 酒仙(주선)의 만남

53. 詩仙(시선)과 酒仙(주선)의 만남    咸關嶺(함관령)을 넘은 김삿갓은 洪原(홍원)고을에서 말술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吳初試 영감을 만났다.     이름을 聖甫(성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그를 성보라고 부르지 않고 酒    甫(주보)라고 불렀다.     학식도 웬만한 그였지만 어느 술자리에서 김삿갓에게 도리어 웬 술을 그    리도 좋아하느냐? 고 묻는다.     김삿갓은 대답대신에 李太白(이태백)의 시 한 구절을 읊었다.              하늘이 만약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               주성이라는 별이 어찌 하늘에 있으며               땅이 만약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               땅에 주천이라는 샘은 없었을 것이오.              天若不愛酒(..

김삿갓 이야기 2024.11.03

52. 問爾窓前調(문이창전조) 창가에 앉은 새야 너에게 묻노니

52. 問爾窓前鳥(문이창전조)창가에 앉은 새야 너에게 묻노니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 보니 이름 조자 모를 조그만     새가 창가에 앉아 명랑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산새가 창가에서 우짖는 것을 보니 이제 봄이 온 모양이로구나' 하고 생    각한 김삿갓은 그 자리에서 즉흥시 한수를 읊었다.              창가에 앉은 새야 너에게 묻노니               어느 산에서 자고 일찍 왔느냐               산속의 일을 너는 응당 알고 있겠지               진달래꽃이 피었더냐 아니더냐.              問爾窓前鳥(문이창전조)               何山宿早來(하산숙조래)               應知山中事(응지산중사)          ..

김삿갓 이야기 2024.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