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120

31. 天長去無執(천장거무집)하늘은 높아 잡을 수 없고

31. 天長去無執(천장거무집)하늘은 높아 잡을 수 없고       「關北千里」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安邊 釋王寺는 李太祖의 건국설       화가 서려 있는 명소요,       吉州, 明川은 수많은 고관대작들이 유배를 갔던 역사의 고장이 아니던가.       그러나 당장 시급한 문제는 우선 오늘밤 잠자리였다. 佛影庵에 유숙할 때는      잠자리 걱정도, 끼니 걱정도 없었다.       그러나 空虛스님과 헤어진 오늘부터는 모든 것을 그날그날의 운수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날은 저문 데 깊은 산속에 오막살이 한 채가 나온다. 사립문도 없는 단칸 斗      屋이다.       다행이 혼자 사는 노파가 반갑게 맞아 주면서 화로에 불을 피워 들여오고,       저녁 걱정을 하며 부..

김삿갓 이야기 2024.10.09

30. 沙白鷗白兩白白(사백구백양백백)모래도 희고 갈매기도 희고 모두가 희어

30. 沙白鷗白兩白白(사백구백양백백)모래도 희고 갈매기도 희고 모두가 희어      김삿갓은 공허스님과 작별하고 海金剛으로 오면서도 이별의 서글픔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인정 같은 것은 깨끗이 떨쳐 버렸노라고 자부해 왔던 그였건만 정작 뜻      에 맞는 사람과 헤어지고 보니 마음이 서글퍼 오는 것을 어찌 할 수 없었      던지 문득 白樂天의 시 한 구절을 머리에 떠 올렸다.               사람은 목석이 아니고 누구나 정이 있는 것               미인은 차라리 만나지 않았어야 하는 것을.....               人非木石皆有情(인비목석개유정)               不可不遇傾國色(불가불우경국색)       미인과 헤어지는 것도 어려운 것이겠지만 뜻 맞..

김삿갓 이야기 2024.10.08

29. 浪客去兮不復還(랑객거혜불복환)방랑객 떠남이여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29. 浪客去兮不復還(랑객거혜불복환)방랑객 떠남이여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김삿갓은 空虛스님에게 너무도 오랫동안 신세를 지기가 미안해서 이제         그만 佛影庵을 떠날 생각이었으나 공허스님이 쉽게 보내 주지 않을 것         같아 海金剛을 며칠간 다녀오겠노라고 넌지시 운을 떼 보았다.         공허스님도 김삿갓의 그런 심정을 진작부터 눈치 채고 있었던지 「불영암        은 언제든지 맘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니 편히 다녀오도록 하시오」하고        순순히 응낙을 한다.         김삿갓은 작별인사를 하면서도 불영암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결심이었        다.         공허스님도 그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지 합장배례를 하며 문득 다        음..

김삿갓 이야기 2024.10.06

28. 若捨金剛景(약사금강경)금강산에서 경치를 빼 놓는다면

28. 若捨金剛景(약사금강경)금강산에서 경치를 빼 놓는다면        김삿갓이 혼자서 萬物相 구경을 갔을 때는 奇奇 怪怪한 경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다가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금강산에서 경치를 빼 놓는다면               청산은 모두 뼈대만 남을 것이니               그 후엔 나귀 탄 길손들               흥이 없어 주저하겠네.               若捨金剛景(약사금강경)               靑山皆骨餘(청산개골여)               其後騎驢客(기후기려객)               無興但躊躇(무흥단주저)         어느 가을날 석양 무렵에 한 누각에 올라서는 저물어 가는 가을 경치를         바라보며 다음..

김삿갓 이야기 2024.10.05

27. 萬二千峰歷歷遊(만이천봉력력유)일만 이천 봉 두루두루 노닐며

27. 萬二千峰歷歷遊(만이천봉력력유)일만 이천 봉 두루두루 노닐며        김삿갓은 오래도록 佛影庵에 머물면서 금강산을 속속들이 探勝했다.         대개는 공허스님과 동행했으나 때로는 혼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        녀오기도 하였다.         공허스님과 동행할 때는 옛날 고승들의 偈頌과 逸話를 듣는 것이 다시        없는 즐거움 이었으나 혼자 다닐 때는 詩興이 새삼스러이 솟아올라 그        나름대로 즐거웠다.         욕심 없는 마음으로 자연 속을 거니노라면 그 날 그 날이 항상 즐거운        날(日日是好日)이다. 그래서 김삿갓은 혼자 다닐 때에도 금강산에 대        한 시를 여러 수 남겼다.               일만 이천 봉 두루두루 노닐며    ..

김삿갓 이야기 2024.10.02

26. 月白雪白天地白(월백설백천지백)달도 희고 눈도 희고 하늘과 땅도 희고

26. 月白雪白天地白(월백설백천지백)달도 희고 눈도 희고 하늘과 땅도 희고        공허스님과 김삿갓의 술 마시기와 글 짖기는 밤늦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공허스님은 취중에도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다시 읊는다.           달도 희고 눈도 희고 하늘과 땅도 희고           月白雪白天地白(월백설백천지백)         김삿갓이 이에 화답한다.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나그네의 시름도 깊구나.           山深夜深客愁深(산심야심객수심)         공허스님이 또 흥얼거린다.           등불을 켜고 끔으로써 낮과 밤이 갈리고           燈前燈後分晝夜(등전등후분주야)                 김삿갓이 또 화답한다.           ..

김삿갓 이야기 2024.09.30

24. 朝登立石雲生足(조등입석운생족)아침에 입석봉에 오르니 구름이 발 밑에 일고

24. 朝登立石雲生足(조등입석운생족)( 아침에 입석봉에 오르니 구름이 발 밑에 일고)        금강산을 찬미하는 시 한 수씩을 주고 받은 空虛스님과 김삿갓은 초면임에         도 불구하고 百年知己를 만난 듯 肝膽相照하는 사이가 되었다.         두 분은 모두 仙境에 노니는 詩仙이면서 大酒家이기도 했다.         연일 穀茶 대접을 받으며 空虛와 더불어 詠風弄月하던 김삿갓은 어느 날 공        허스님의 뒤를 따라 立石峰에 올랐다.         봉우리에 오르자마자 공허스님은 경관에 취하여 시흥이 절로 솟아 오르는지        또 다시 시 짖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이번에는 시를 한 수씩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먼저 한 줄 읊거든 그         시에 對照..

김삿갓 이야기 2024.09.24

23. 百尺丹岩桂樹下(백척단암계수하)(높고도 붉은 바위 계수나무 그늘에서)

23. 百尺丹岩桂樹下(백척단암계수하)(높고도 붉은 바위 계수나무 그늘에서)        김삿갓은 長安寺에 잠시 들렀다가 佛影庵부터 찾아 나섰다.         이라고 알려진 空虛스님부터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불영암은 장안사의 뒷산을 5리쯤 올라가서 있었다.         김삿갓을 반갑게 맞은 공허스님은 수인사를 나누자마자         "선생은 시를 잘 지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나하고 시 짖기 내기를 한번         해 보실까요?' 하는 것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분수가 있지, 만나는 댓바람에 시 짖기 내기를 하        자고 하니 이것은 보통 수작이 아니었다.         "만나 뵙자마자 무슨 시 짖기 내기를 하자는 것이옵니까?' 하고 짐짓 놀      ..

김삿갓 이야기 2024.09.23

22. 綠靑碧路入雲中(록천벽로입운중)(푸른 산길 더듬어 구름 속에 들어오니)

22. 綠靑碧路入雲中(록천벽로입운중)(푸른 산길 더듬어 구름 속에 들어오니)        偈惺樓 위에서 바라보이는 길들은 아득히 구름 속으로 이어져 있는데 어디         선가 폭포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고, 울울창창한 송림 사이에서는 학의 무리         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눈앞의 풍경이 너무도 황홀하여 잠시 무아경에 잠겨 있는데 홀연 어느 암자        에서 한낮의 종을 요란스럽게 쳐 대어 사람을 놀라게 하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김삿갓은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활짝 뜨고 즉흥시 한 수를 다시 읊         었다.                  푸른 산길 더듬어 구름 속에 들어오니                  다락이 좋아 시인의 발길을 ..

김삿갓 이야기 2024.09.21

21. 一峰二峰三四峰(일봉이봉삼사봉)(하나 둘 셋 넷 봉우리)

21. 一峰二峰三四峰(일봉이봉삼사봉)(하나 둘 셋 넷 봉우리)        明宗 때의 명필이요 풍류객이었던 蓬萊 楊士彦(봉래 양사언)이 수십 질 높        이의 암벽에 새겼다는 세 글자를 바라보며 일만 이천 봉우리 중        에서 47개의 봉우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偈惺樓(게성루)가 여기에서 멀        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금강산의 참된 면목을 알려거든 석양 무렵에 게성루에 올라 보라."         (欲識金剛眞面目 夕陽須上偈惺樓(욕식금강진면목 석양수상게성루))는 옛        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藥師庵(약사암), 白雲庵(백운암), 兜率庵(도솔암), 迦葉庵(가엽암) 등 수없이        많은 암자를 지나 드디어 게성루 에 올랐..

김삿갓 이야기 2024.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