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鐸이라면 누구나 사찰(寺刹)에서 사용하는 불구(佛具) 정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 중국에서는 불교가 전래되기 수 천년 전부터 木 鐸을 사용 했다. 옛날에는 달력이 귀했으므로 백성들이 절기(節氣) 에 따른 농사일을 알 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통치자는 그때 그때 해야 할 일을 백성들에게 알렸는데 이때 사 용했던 것이 木鐸이다. 그 일을 맡은 관리는 매년 봄만 되면 커다란 방울을 치면서 시내 (市內) 를 돌아다녔다. 그 소리를 듣고 사람이 모여 들면 "봄이 왔 으니 씨를 뿌려라"고 알렸 던 것이다. 그런데 그 방울 속의 혀가 나 무로 돼 있었으므로 木鐸이라고 했다. 물론 쇠로 된 것은 金鐸이라 고 했는데 주로 군대내에서 명령을 하달할 때 사용하였다. 後에 불교가 전래되고 절기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木鐸은 사찰 에 서만 사용되었는데 이 역시 식사(食事)나 염불 시간 등 공지 사항 을 널 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어느 경우든 木鐸은 어떤 사실을 널리 알리는데 사용됐음을 알 수 있 다. 여기에서 後에는 백성들을 교화(敎化), 인도하는 者를 木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공자(孔子)였다. 공자가 노(魯)나라에서 벼슬을 그 만 두고 자기의 이상을 실현시킬 나라를 찾기 위해 유세(遊說) 여행을 하고 있던 무렵이다. 한번은 위(衛)나라에 갔는데, 의(儀)라고 하는 국경을 지키는 관원 이 찾아왔다. "군자께서 여기에 오시면 저는 어떤 분이라도 반드시 뵙습니다." 4 그가 공자를 뵙고 싶다고 청하므로 종자가 면회를 시켰다. 잠시 후 공자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던 관원이 나와 제자들에게 말했 다. "여러분은 문(文)이 상실되는 것을 왜 걱정하시오.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하늘은 장차 당신들의 선생님 을 도(道)를 전하는 목탁으로 삼으실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