峽路經春沮(협로경춘저)= 좁은 길은 봄 지나 막히고 溪堂盡日空(계당진일공)= 시냇가 초당 종일 비어있네 草憾堤上雨(초감제상우)= 둑에 내리는 비에 풀은 취했고 花笑檻前風(화소함전풍)= 꽃은 난간 바람에 웃기네 睡熟身仍穩(수숙신잉온)= 졸음 깊자 몸은 이내 평안하고 詩成句亦工(시성구역공)= 시가 되려면 글귀 또한 교묘하지 一樽無事酒(일준무사주)= 일 없는 한잔의 술 斟酌與誰同(짐작여수동)= 누구와 함께 주고 받는고.. 이 시는 백곡 처능(白谷 處能)대사의 시이다. 백곡대사는 17세기의 큰스님이다.
대사가 남겨놓은 문집인 백곡집(白谷集)에 보이는 시문은 당시의 문인들에게 뒤지지 않는 수준임을 쉽게 알게 한다. 당시 시를 주고받은 대상들은 당시의 명공 재상들이 대부 분이다.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대사의 시문에 대한 평가가 어떠 하였는지 알 수 있다.
위의 시도 호정 정두원(壺亭 鄭斗源)의 초당에서 지은 시이다.
정두원은 당시 재상이었다. 한 나라의 영의정인 재상의 초당을 읊으면서 세속의 영화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이 그저 봄날의 경치와 거기에 은거할 수 있는 자연인의 한 모습만 보여지고 있다.
여기에서도 대사가 당시의 명경대부와 격의없는 사귐을 유지할 수 있었 던 근기를 이해하게 한다.
봄이 다 지나도록 막혀 있는 길이다.
오고 감이 없어서 막힐 수도 있고 숲이 우거져 막힐 수도 있다.
그러기에 초당은 종일 비어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두사람 사이그리움이라 할 수도 있다.
비가 내리자 둑에 깔린 풀은 숲에 취한 듯 비스듬이 누웠다.
봄비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꽃은 봄바람에 웃는다. 꽃 피움이 웃음으로 비유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흩날림의 웃음으로 이해된다.
어쩌면 꽃에게는 봄바람은 헤살하는 번거로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꽃은 되레 웃는다. 모든 것이 고요한 요동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평안하고 평안함에서 오는 졸음이 따라온다.
이때 한 수의 시가 이루어지면 그 시는 글귀마다 아름답다.
한 잔의 술이 요구되는 순간이다. 일의 해결에 필요한 술이 아닌 일 없음의 술이다.
제일 바쁜 재상의 초당에 제일 한가로운 한 순간이다. ......^^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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