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제3부 기발한 처지, 웃음이 절로 나오고 |
성균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 양흔(梁炘) 집에는 매우 예쁘
고 참하게 생긴 막덕이란 여종이 있었다. 양흔은 어떻게 기회를
만들어 막덕에게 접근하려고 애를 썼지만, 감시하는 부인이 워
낙 무서워서 감히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하루는 밤에 양흔이 사랑방에서 막덕을 좀 나오라고 불렀다.
그러자 막덕이 촛불을 들고 사랑으로 나오는데, 부인도 따라 나
와서는 막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 밤중에 무슨 일로 여종을 부릅니까? 왜 불렀지요?"
이렇게 추궁하면서 그 대답을 꼭 들어야 한다고 우겼다.
사실 양흔은 이날 밤 좀 쓸쓸한 느낌이 들어 막덕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 보려고 부른 것이었는데, 부인이 함께 나와 이렇게 추
궁하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아, 내 친구에게 편지를 좀 전하려 했다오, 그냥 막덕과 함
께 안으로 들어가구려, 편지는 내일 보내지요."
하고 거짓말을 둘러댔다. 그러자 부인은 누구에게 보내는 편지
인지, 자기가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 편지를 쓰라고 재촉하는 것
이었다.
그래서 양흔은 하는 수 없이 종이를 펼쳐 놓고 부인이 읽지
못하는 한문으로 다음과 같이 썼다.
`막덕은 왜 촛불을 켜고 나왔는고? 부인은 왜 뒤따라 나왔으
며, 막덕은 왜 그렇게도 나를 잘 속이며, 부인은 또 어찌 그리 귀
신 같으냐? 내 이제 늙어서 옛날 같은 향락을 맛보지 못하는 몸
이로다. 기구한 사람 올림.'
이렇게 쓰고 나니 부인이 읽지 못해 무슨 내용인지는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 보내는 편지냐고 따졌다.
이에 양흔은 갑자기 생각 없이 평소 자주 드나들던 친구 도씨
(都氏)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부인은 부리나케 편
지를 빼앗아 여종을 시켜 정말 친구 도씨에게 보내 버렸다. 그래
서 이후 친구들 사이에 양흔의 그 편지가 화제에 올라 웃음거리
가 되고 말았다.
다른 날, 아침밥을 먹고 나니 부인이 마침 바느질에 열중하고
있는지라, 양흔은 몰래 맏덕을 사랑으로 불러냈다. 부인이 모르
는 것 같기에 급히 막덕을 안고 방으로 들어가, 아랫도리를 벗기
고 데리고 누웠다.
바야흐로 한창 운우(雲雨)가 무르녹고 있는데, 이 때 부인이
막덕을 찾다가는 눈치를 채고 급히 달려나와 사랑방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곧 부인은 여종 몸 위에 엎드려 있는 남편의 상투를 잡아 끌
어당겼다. 양흔은 뒹굴면서 등이 문지방에 부딪쳐 매우 아팠으
므로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일부러 번듯이 드러누워 죽은 체
했다.
부인이 놀라 소리를 지르니 남녀 종들이 겁을 먹고 달려와서
양흔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며 소란을 피우는데도, 양흔은 꼼짝
않고 누워 눈을 감고는 모른 체했다. 이 때 눈치 빠른 늙은 여종
이 속으로 웃으면서 넌지시 말했다.
"마님, 그런 일을 할 때에 갑자기 큰 충격을 받으면 죽는 수
가 있다고 들었습니다요."
이 말에 부인은 더욱 겁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급히
가까이 사는 남편의 친구 구씨(具氏)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구씨
가 와서 보고는 일부러 죽은 체한다는 것을 알고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책력을 펼쳐 보는 것같이 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런 병에는 옥문산(玉門散)이란 약으로 치료해야 합니다."
하고는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부인, 막덕과 같은 어린 여종을 시켜 가슴을 풀어혜치고는
이 사람 가슴 위에 대고 엎드려 몸을 계속 덥게 해주어야만 깨어
날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하루쯤 그렇게 한 채 문을 닫고 가만
히 내버려두어야 될 것 같은데요."
친구 구씨는 이렇게 일러 준 다음에 집으로 돌아가 자기 아내
에게 이 얘기를 하고는 함께 한바탕 웃었다.
친구 구씨의 말에 양흔의 부인은 다급하여.
"막덕아! 막덕이 어디 갔어? 이년 빨리 이리 오지 못해?"
하고 소리쳐 불렀다.
그러나 막덕은 주인 어른과 누워 있었다고 야단맞을 것이 두
려워 멀리 이웃집으로 도망가 숨어 있었다.
막덕이 집에 없음을 안 부인이 종들을 시켜 동네에 수소문해
막덕을 찾아오라고 하니, 얼마 후에 막덕이 울면서 들어왔다.
"이것아, 어른 생명을 구해야 하는데 어디 갔다가 이제 와?"
이렇게 야단치면서 얼른 웃옷을 벗겨 남편의 가슴 위에 엎드
리게 하고는 몸을 덥게 해드리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방문을 닫
고 하루 종일 깨어날 때까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되니 양흔은 이날 늦게까지 막덕을 데리고 놀다가 저
녁때가 되어 깨어난 것처럼 하고 슬그머니 일어나 나왔다. 남편
을 본 부인은 기뻐하면서,
"여보, 당신 친구 구씨가 아주 신통한 의원입니다."
라고 칭찬하고는 선물을 보내더라.<조선 중기>
[옛 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 김현룡 지음]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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