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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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ㅡ34화]한잔 더 하면 취해요
한 젊은 부부가 다정하게 살면서, 남편이 외출했다가 돌아오
면 항상 밤낮 구분 없이 붙잡고 옆방으로 들어가 옷을 모두 벗고
껴안아 뒹굴며 사랑 놀이를 했다. 그런데 집에 누가 있을 때나
손님이 왔을 때에는 눈치가 보여, 아내가 한 꾀를 내어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집에 손님이 왔거나 하면 말입니다. 당신이 밖에서 돌
아와 대문에 들어서면서 먼저, `여보, 우리 술 한잔 할까'라고 하
십시오. 그래서 제가 `그렇게 합시다'라고 말하고 옆방으로 들어
가면, 이어서 당신이 따라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나서 방문을 닫
고 한 판 행사를 잘 하고 나오면, 혹시 남들이 보더라도 술 한잔
한 것으로 알 테니 그러면 되지 않겠소?"
"응, 부인! 참 좋은 생각을 했구려. 그렇게 합시다."
이렇게 부부끼리 의좋게 약속이 되었다.
하루는 부인 친정에서 부친이 딸내 집에 다니러 왔다. 마침
외출했던 남편이 집에 돌아와 장인 어른께 인사를 드린 다음, 조
금 앉아 있다가는 안으로 들어가 아내를 부르면서 말했다.
"여보, 우리 술 한잔 할까?"
그러자 아내가 웃으면서 그렇게 하자고 대답한 후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고, 곧 남편도 뒤따라 들어갔다. 부부가 한바탕
열을 올려 행사를 하고 나오니, 흥분된 얼굴이 아직 가시지 않아
약간 불그레한 모습이 정말 술 한잔 한 것같이 보였다.
딸과 사위의 이러한 모습을 본 노인은 화가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일어나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할멈에게 화를
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딸자식 아무 소용없다. 열심히 키워 시집보내 놓았더니, 제
아비 술 좋아하는 줄 알면서 한잔 주지도 않고 저희들끼리만 방
에 들어가 술을 마셔? 그리고는 얼굴이 벌개져서 나오니 그런
고약한 것들이 어디 있나? 여보 할멈, 이후로 다시는 딸네 집에
발걸음도 하지 말아. 그리고 나 앞으로는 걔들 안 볼 테니 친정
에 오지 못하게 해요."
이러면서 화를 삭이지 못하고 꾸짖었다. 할멈이 생각해 보니
그렇게 서운하게 대접할 딸과 사위가 아닌데 무언가 이상하다고
여기고, 하루는 영감 몰래 딸네 집에 가서 부친이 돌아와 화낸
사실을 딸에게 말하고는 꾸짖었다.
"너희들은 왜 술 좋아하는 부친께 그렇게도 서운하게 대접했
느냐? 너희들만 술을 마셨다니 어떻게 그렇 수가 있느냐? 예전
엔 그렇지 않았는데 왜 그동안에 이처럼 변했느냐?"
얘기를 들은 딸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당시 집에는 술이 없었
고, 곧 술을 사서 부친께 대접해 드리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부
친이 그만 빨리 가셨기 때문에 대접하지 못한 것이라고 모친에
게 얘기했다.
그리고 당시 여차여차한 곡절이 있었다는 사실과 또 남편과
약속하여 시행하는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며, 부친의 화가 풀어
지게 잘 얘기해 달라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온 할멈이 영감에게 몰래 딸에게 다녀왔다는 얘기
를 꺼내니, 영감은 딸네 집에 가지 못하게 했는데 몰래 갔다고
하면서 또 화를 내고 야단을 쳤다.
영감의 화가 조금 수그러진 뒤에. 할멈은 딸네 집에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얘기하고 내력을 설명한 다음에 노여워할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모든 것을 이해한 노인은 웃으면서 할멈에게 말했다.
"그렇게 된 게로구먼. 그렇다면 우리 늙은이도 지금 바로 술
한잔 하면 어때? 당신도 생각이 있지?"
이에 할멈도 그거 참 오랜만에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동의
하니, 영감은 할멈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영감은 방문을
닫고 예전에 하던 것처럼 할멈의 옷을 벗겼다. 비록 늙었지만 영
감과 할멈은 새로운 분위기에 젖어서 정말 오랜만에 감동적인
기분을 맛보았고, 그리고 깊은 정감을 새삼 느꼈다.
힘들었지만 즐거운 행사를 치르고 났는데, 할멈은 남은 열정
이 가시지 않아 계속 흐뭇해하면서 영감을 바라보며 한 번 웃고
는 어리광하듯 이렇게 말했다.
"여보 영감! 나 술 한잔 더 하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될까요?"
이 다정한 목소리에 노인은 안타까운 듯이 손을 저으며,
"안 되지, 그 술은 노인에게는 한잔으로도 크게 취하는 술
이야. 더 하면 큰일나. 며칠 지나고 하도록 해, 응."
라고 말하며, 할멈에게 절제하라고 타일렀다.<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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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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