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시부모 받들어 모시기

eorks 2019. 7. 11. 06:06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제4부 서민들, 유머는 그들이 낙이었다.
[제4ㅡ33화]시부모 받들어 모시기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영남 지방으로 내려갔다. 때마침 농사철이었는데, 들판길을 걸어가는 동안 점심때가 되어서 한 논두렁에 앉아 농부들과 함께 점심 한 끼를 얻어먹기로 했다.

그런데 아래위 다른 논에서는 이미 부인들이 점심밥을 이고 나와 먹고 있는데, 박문수와 함께 앉아 있는 이 논의 주인집에서 는 웬일인지 점심밥을 가지고 나오지 앉아 모두들 배고파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참 이상하다. 우리 집사람이 이렇게 늦게까지 점심밥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때가 없었는데...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거 나 아닌가?"

논의 주인은 일꾼들이 논두렁에 앉아 배고파하면서 투덜거리 는 소리를 듣고 민망한 듯 이렇게 걱정했다. 한참 시간이 경과되 어 다른 논에서는 이미 점심 식사를 끝내고 다시 논으로 들어가 서 일을 시작하는데, 그때서야 주인의 아내는 온몸에 땀이 범벅 이 된 채 점심밥을 이고 나왔다.

주인은 부인에게 점심밥을 늦게 내온 것에 대해 추궁하며 꾸 짖었고, 일꾼들도 불평하는 소리가 높았다. 주인 아내는 아무 말 없이 가지고 나온 점심밥을 퍼서 나누고는,

"점심이 늦어 매우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제 이야기 를 좀 들어 보십시요. 점심이 늦은 데 대해 충분히 이해가 가실 겁니다."
라고 말하고, 웃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내 딴에는 늦지 않으려고 바쁘게 여러 가지 반찬을 준비해 놓고 솥에다 밥을 앉힌 다음 안방에 보관되어 있는 그릇들을 가 지러 갔는데, 마루에 올라서서 보니 안방문이 굳게 닫혀 있고 방안이 조용하여 이상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주인 아내는 점심을 함께 먹고 있는 박문수 어사를 힐끗 쳐다 보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가만히 살피니, 80세 가까운 시부모 내외분이 마침 문을 닫고 안에서 잠자리를 하고 있는데, 대낮인데도 바야흐로 기분이 상기되어 한창 몽롱하게 꿈속을 혜매는 듯했습니다. 제 법 시어머니의 신음 소리도 들이고, 시아버지의 힘쓰는 소리와 함께 좋아하는 탄성도 들렸습니다. 그래서 행사가 끝나기를 기 다리다가 생각하니, 우리 젊은이들도 그 작업을 하고 나면 한동 안 힘이 빠지고 나른해지는데, 80 노인이 저러고서 얼마나 피곤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일꾼들이 그제야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 뜨렸다.

"모두들 웃지 마시고 제 설명을 끝까지 들으십시오. 그래서 저는 급히 마루에서 내려와 닭 한 마리를 잡아 보신해 드려야겠 다고 마음먹고 뜰에 놀고 있는 닭을 잡는데, 알낳는 싸암닭만 쉽 게 잡히고 수닭은 잡히지 않아 쫓아다니다가 그만 시간이 많이 지체되고 말았습니다. 실랑이 끝에 기어이 수닭을 잡아 시부모 님께 닭곰탕을 해올린 다음 점심밥을 챙겨 나오다 보니 부득이 이렇게 늦어진 것입니다. 이 효심을 생각해 모두들 용서해 주시 기 바랍니다."

얘기를 다 들은 농부들은 한숨을 내쉬면서 노인들의 정력에 크게 감탄했다. 일꾼들은 배고파 지쳐서 투덜대던 불평들은 모 두 멈추고,

"부인이야말로 정말 효부입니다. 우리들이 나라에 호소하여 효부 표창을 받도록 해야겠습니다."
하고 칭찬했다. 이 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박문수 어사 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내 보잘것없는 선비로 비록 힘은 없지만 반드시 임 금님의 표창을 받을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결과를 기다 려 주십시오. 점심 잘 먹었습니다. 잘들 계십시오."

박문수 어사는 영남 지방 순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이 부 인에 관한 일을 임금께 자세히 아뢰니, 임금도 크게 친찬한 후에 이 부인에게 `효부' 정문을 내리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또 많은 돈과 곡식을 상으로 내려주었다고 한다.

뒤에 알아보니 이 일이 사실인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 다.<조선 후기>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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