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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진(朴斗鎭)님의 詩
1.<해>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에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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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꽃>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들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湖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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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봉(道峰)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 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人跡)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도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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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하늘>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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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향현(香峴)
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 너머,
큰 산 그 너멋 산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골이 장송(長松) 들어섰고,
머루 다래 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갈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산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리 등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
산, 산, 산들!
누거만년(累巨萬年) 너희들 침묵이
흠뻑 지리함 직하매,
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 확 치밀어 오를 화염(火焰)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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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묘지송>
북망(北邙)이래도 금잔디 기름진 데
동그란 무덤들 외롭지 않으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죽음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 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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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청산도(靑山道)-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너멋골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쩌면 만나도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 어린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 가고, 눈물도 가고, 트여 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 이르면,
향기로운 이슬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
푸른 산 한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너머, 골 너머,
뻐꾸기는 우는 데, 눈에 어려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
아우성 쳐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속에,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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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어서 너는 오너라>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래 정드리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도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물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을 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가락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 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높여 부르는 나이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여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이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나던 ,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ㅡ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ㅡ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워서, 철이야, 너는
늴늴늴 가락 맞취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 두둥실 두둥실 붕새춤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딩굴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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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진 : (朴斗鎭,1916! ). 호는 혜산. 경기도 안성 출생.
<향현>, <묘지송> 등으로 <문장>지에 추천받아 문단에 데뷔.
초기에는 자연친화의 경지를 추구하였으나, 광복 후에는 <해>
를 발표 하면서부터 기독교적 색채를 띤 이상향에의 갈망을
추구하였다. 6.25 이후에는 강한 민족의식에 기반하여 사회의
부조리.불합리에 저항, 비판하는 시를 썼다.
시집으로는 조지훈, 박목월 등과의 공동시집인 <청록집>(1946),
<해>(1949),<오도(午禱)>(1953),<거미와 성좌>(1962),<인간밀림>
(1963),<하얀 날개>(1967),<고산식물>(197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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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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