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事 成 語 명모호치(明眸皓齒) 明:밝을 명. 眸:눈동자 모, 皓:하얄 호, 齒:이 치 밝은 눈동자와 하얀 이. 곧 아름다운 여인을 가리키는 말
당나라 현종은 말년에 이르러 양귀비에게 넋을 빼앗겨 국정은 완전히 뒷전 이었다. 이때 안록산은 755년에 20만 대군을 휘몰아 장안성으로 몰아쳐 이후 9년간 천하를 소동시켰다. 두보(杜甫) 는 안록산이 난을 일으킨 그 해에 44세였다. 현종이 있는 곳으로 가다 반군에게 체포되어 장안으로 끌려갔다. 이때 그의 나이 45 세였다. 두보는 하급 관리였기 때문에 곧 풀려났다. 그는 도성이 반군에게 유린당하자 장안의 동쪽 곡강을 찾아갔다. 이곳은 왕후(王后)나 장상(將相)의 귀부인들이 평소 유람을 즐기 던 명승지 였다. 그러다 보니 현종과 양귀비도 이곳 강두(江頭)에 서 자연을 희롱하며 즐기곤 했다. 두보는 그것을 슬퍼하며 시를 읊었다. <‥‥장안성 남쪽의 소릉에 사는 나는 난(亂)을 만나 황폐해진 도성의 지난날 을 생각하니 슬픔으로 통곡이 복받치는 것을 삼키 며 울었다. 도성을 구비구비 돌아 흐르는 곡강(曲江) 언저리를 방황하면서‥‥. 옛날 한나라 소양전 중의 가장 으뜸 가는 조비연에게 비견됐던 양귀비는 천 자와 함께 수레를 타고 천자를 따라 함께 모시고 있 었다. 그 수레를 호위하며 나아가는 재인(才人) 여관(女官)은 허 리에 활을 매었고, 타고 가는 백마의 입에 황금 자갈을 물리었다. 그 재인이 몸을 돌려 하늘을 향하여 구름 사이로 활을 쏘면, 한 개의 화살에 쌍으로 날던 새가 맞아 떨어졌다. 그런데 지금, 고운 눈과 흰 이(明眸皓齒)의 양귀비는 어디 있는가‥‥> 위의 《哀江頭》는 나중에 백낙천이 쓴 《長恨歌》와 함께 양귀 비의 애환을 절 절히 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