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
[제4ㅡ8화]혼인날을 고대하는 노처녀
농촌에 사는 한 집에 딸이 있었는데, 가윗감을 고르다가 그만
혼기를 놓쳐 노처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애를 태우다가 드디
어 한 총각과 혼인이 결정되니, 처녀의 부모는 물론 노처녀 자
신도 무척 기뻐하면서 혼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혼인날은 해일(亥日: 돼지날)이었는데, 이틀 전인 유일(酉日:
닭날)이 되니 노처녀는,
"왜 이렇게 날이 더디냐? 얼른 이틀 밤이 지나면 좋겠다."
하고 애를 태우다가 마침 용변이 마려워 변소에 가 앉았다.
이 때 뒤따라온 개가 변소에 앉은 처녀 앞에 와 쭈구리고 앉
아서는 꼬리를 흔들며 처녀를 쳐다보고 반기는 것이었다(옛날에
는 집안사람이 변소에 가면 언제나 개가 따라와 앞에 와 앉아 기
다렸음), `이틀 밤만 지나면' 하고 손가락을 꼽던 처녀가 무심히
앞에 앉은 개를 바라보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개를
보고 눈을 홀기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아, 저리 가! 보기 싫어, 내일이 네 개날(戌日)이지? 네
날만 중간에 끼어 있지 않았더라면 내일 바로 혼례식을 올릴 수
있을 텐데...., 네 개날 때문에 하루가 늦단 말이야, 쓸데없이
네 날이 중간에 끼어 하루를 늦게 해? 보기 싫어."
이렇게 원망했는데, 그만 이 소리가 처녀 자신도 모르게 크게
나고 말았다. 앞에 앉아 있던 개는 자기를 야단치는 줄 알고 시
무룩해졌고, 뜰에서 벼를 널어 말리고 있던 늙은 여종은 이 말을
듣고 싱긋이 웃었다.
처녀가 변소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가는데, 뜰에 있던 늙은 여
종이 낟알을 쪼아 먹는 닭들을 보고 야단치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후여! 이놈 닭들아, 저리 가! 육갑(六甲)에 너희 닭날[酉日]
만 없었더라도 오늘이 곧 개날(戌日)이 되고 내일은 바로 돼지날
[亥日]로 우리 아씨 혼인날이지 않아? 쓸데없이 너희 닭날이 끼
어 우리 아씨를 저렇게 애태우게 해?"
늙은 여종의 능청스러운 이 말에 방안으로 들어가던 처녀는
뒤돌아보면서 씩 웃고 부끄러워했다.<조선 초기>
|
......^^백두대간^^........白頭大幹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