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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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ㅡ21화]한낮의 인사불성(人事不省)
한 사람이 부부의 정이 깊어 한낮에도 자주 부부가 방에 들어
가 흐뭇한 정을 나누곤 했다.
어느 따뜻한 봄날, 남편이 점심을 먹고 한잠 자고 나니 춘정
이 샘솟듯 하는지라, 아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모두 벗
기고 흐뭇한 기분으로 누워 속살을 맞대고 즐겼다.
이 때 부인도 대낮의 맑은 정신에 정감을 불태우니 도저히 억
제할 수 없는 깊은 감흥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가느
다란 신음 소리 같은 감창(甘唱)이 목 안에서 흘러나왔다. 두 사
람은 바야흐로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혼돈 상태에서 한몸이
되어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많은 시간이 흘러 어느덧 저녁밥 지을 시간이
되었다. 밖에서 일하던 여종이 부부의 즐기는 소리를 듣고는, 문
밖에 서서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저녁밥 지을 쌀을 얼마나
해야 할지 물어보려고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도무지 끝날 것
같은 기색이 없었다. 그래서 저녁밥이 늦어져 야단맞을 것이 걱
정되어, 어쩔 수 없이 낮은 목소리로 가만히 마님을 불렀다.
"마님! 죄송합니다. 저녁밥 쌀을 얼마나 할까요?"
한창 꼭대기를 향해 숨가쁘게 달리고 있던 부인은 이와 같은
여종의 물음에, 자기의 황홀한 감정과 신음 소리가 범벅이 되어
다음과 같은 소리를 냈다.
"오, 오, 오 ~ 오승~."
`오승(五升)'.즉 `다섯 되'라고 한다는 것이, 남편이 틈을 주지
않고 끌어올리는 흥분에 도저히 말끝을 끊을 수가 없어서, 감탄
소리에 맞춰 그렇게 길게 끌리는 말로 대답한 것이었다.
여종은 이 소리를 `5, 5, 5 ~ 5승'으로 알아듣고, 제 딴엔 최고
의 지능을 발휘해 계산한 것이 `5승에 또 5승이니 10승', 그리고
`5 ~ 5는 25`이니 합하면 `35승'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 말 다섯 되'의 많은 쌀로 저녁밥을 지어 놓았다.
저녁밥이 다 되고도 한참 뒤에야 부부는 일어나 옷을 입고 나
왔다. 부인은 여종이 지어 놓은 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얘야! 저녁밥을 왜 이렇게 많이 지어 놓았느냐?"
이렇게 말하면서 여종을 나무라니, 여종은 분명히 마님이 일
러 준 대로 밥을 지었다고 대답했다.
"마님! 제가 물어보았을 때에 `오, 오, 오 ~ 오 승~'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5승에 또 5승, 그리고 5 ~ 5는 25이니 합하
여 35승으로, 조금도 틀리지 않게 잘 맞춰 지은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한참 동안 여종을 노려보다가는 웃으면
서 힘없이 말하는 것이었다.
"요 멍청한 것아! 그런 상황에서는 네가 짐작해서 잘 알아들
어야지, 어찌 그런 인사불성 상태에서 올바르게 똑 떨어지는 소
리를 낼 수 있단 말이냐? 이 답답한 것아, 너도 뒤에 시집가서
경험해 봐라, 이 바보 같은 것아."
부인은 그 감격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감흥에 겨워 어
쩔 줄을 모르더라.<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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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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