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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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ㅡ43화]큰 차반 먹는 수염 많은 손님
한 사람이 얼굴에 많은 수염이 나 있었다. 어느 날 종을 데리
고 여행을 하다가 날이 저물어 한 집에 들어가 하룻밤 유숙할 것
을 청하니, 부인이 나와 난처해하면서 말했다.
"마침 남편이 멀리 친척 집에 다니러 가서 내일 돌아옵니다.
그러니 손님 혼자라도 빈 옆방에서 주무시려면 그렇게 해도 무
방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고맙다고 인사하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웠는데, 붙어 있는 안방에서 조
용한 밤중에 주인 여자의 말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손님이 무
슨 말인가 하고 귀를 기울려 들으니 주인 여자는,
"이 수염 많은 손님아! 내일은 네가 큰 차반[大茶盤; 잘 차린
음식상]을 맛있게 먹겠구나, 기대하고 있거라."
하고, 여러 번 되풀이해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손님은 자기 얼굴에 많은 수염이 나 있으니,
`수염 많은 손님`이라는 말이 자기를 가리키는 말로 알고,
"옳거니, 주인 여자가 내일 나에게 좋은 음식을 차려 주려고
준비를 했나 보구나, 내 오랜만에 한번 포식해야지."
하고 중얼거리고는, 문밖에서 자고 있는 종을 깨워 일렀다.
"내일 아침에는 이 집 부인이 큰 차반을 차려 준다니까 아침
준비랑 하지 말아라. 그리고 내가 먹고 남겨서 너에게도 먹도
록 하겠다. 기대하고 있어라."
그리하여 아침에 자고 난 손님은 잔뜩 기대를 갖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도
주인 여자는 음식상을 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손님은 기다리다가 아침까지 굶고, 마침내 주인 여자를 불러
서 따져 물었다.
"어젯밤에 자면서 들으니 수염 많은 손님인 나에게 `대차반'
을 준다고 해놓고 왜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소?"
주인 여자는 이 말을 듣더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웃음을
머금은 채 어디론가 대문 밖으로 달아나 버렸다.
손님은 화가 나 고을 관장에게로 가서, 그 부인이 양반인 자
기를 우롱했다고 하면서 이 사실을 고소했다. 그래서 관장은 부
인을 잡아오라고 해 앉혀 놓고 엄하게 문책했다.
"여인은 듣거라! 너는 왜 양반에게 큰 차반을 대접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대접하지 않았느냐? 양반에게 거짓말을 해 속이면
죄가 되는 줄 몰랐느냐? 바른대로 아뢰어라."
관장의 호통에 부인은 부끄러워하면서 설명했다.
"나으리! 소인 자세히 아뢰겠습니다. 소인이 어젯밤에 말한 `수
염 많은 손님`은 집에 온 손님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라, 털이 많
은 소인의 다리 사이 옥문을 두고 한 말입니다. 소인의 남편이 오
랫동안 외출했다가 내일 돌아오므로, 소인은 누워서 소인의 다리
사이에 있는 많은 수염을 만지면서 남편의 그 힘차고 좋은 양근
을 먹을 것이란 뜻으로 한 말입니다. 기분이 하도 좋기에 남편의
양근을 `큰 차반'이라고 했는데 손님이 잘못 알아들은 것입니다.
손님은 턱에 많은 수염이 나 있어 그 때문에 소인이 음식을 대접할
것으로 오해한 것 같사오니, 그것은 소인의 죄가 아니옵니다."
이 말을 들은 관장이 부인의 말이 참말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옷을 벗겨 살펴보니, 부인은 정말 털이 두 다리 사이에 가득 차
있었다. 곧 관장은 한바탕 크게 웃고 부인을 돌려보냈다.
<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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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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