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風水地理) “운세로 일희일비말고, 자기분수대로 사시오”(2) 생애의 대부분을 흙담 움막집에서 지내 토정이라는 호가 붙은 이지함은 경사자전(經史子傳)에 통달했고, 역학·의학·수학·천문·지리에도 해박했다. 아산현감이 되어서는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관내 걸인의 수용과 노약자의 구호에 힘쓰는 등 민생문제의 해결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서민 프렌들리’였던 셈이다. 한중수는 “토정의 진면목은 그가 농업과 상업의 상호 보충관계를 강조하고 광산 개발론과 해외 통상론을 주장하는 등의 진보적 사상의 소유자였으며, 이를 생활 속에서 이행한 실천적 지식인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말했다. 토정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주자성리학만을 고집하지 않는 사상적 개방성을 보였으며, 이 때문에 기인(奇人),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