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民心書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함

eorks 2011. 3. 4. 07:06

牧民心書
제8장 병전 6조[국방에 관하여 알아야 할 사항들]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함
若年豊備弛라도 朝令無停하여 以行習操則其充伍飾裝
약년풍비이라도 조령무정하여 이행습조즉기충오식장
不得不致力이니라.
부득불치력이니라.
만약 풍년이 들어 방비가 완화되더라도, 군사 조련을 행하라는 명령
이 멈추지 않는 한, 대오를 채우고 장비를 갖추는 데 힘써야 한다.
- 연졸(鍊卒) -
    
      남의 집에 불이 나 혼란한 틈을 타서 도둑질을 하는 자들이
    세상에는 많다. 이들은 상대방이 허점을 보이거나, 절대적인 위기에 빠
    져 있을 때를 틈타서 공격을 가하는 방법을 쓴다.
      비록 졸렬한 방법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방비를 제대
    로 하지 않는다면 언제, 어느 때 허를 찔릴지 모를 일이다. 자신이 취할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춘추시대(기원전 770~476) 말, 어느 날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가
    그의 궁궐에 새 노비를 들였다. 새로 온 노비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하루 종일 말에게 먹일 여물을 썰고 물을 길러오고 마당을 쓸었다. 그
    는 다름 아닌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월(越)나라의 왕 구천(勾踐)
    이었다. 구천은 지성으로 삼 년 동안 부차에게 충성스러움을 보여 주어
    마침내 고국인 월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구천은 고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복수를 위해 하나씩 준비를 시작했
    다. 우선 노쇠한 국력을 키우기 위해 인재를 고르는 데 각별한 노력
    을 기울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군사를 훈련시키는 데도 엄청난 노력
    을 기울였다. 구천은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몸소 밭에 나가
    일을 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월나라의 국력은 예전에
    비할 수 없이 강해졌다. 하지만 구천은 한 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는 밤에는 짚으로 만든 돗자리를 깔고 잤으며, 수시로 방에 걸어둔
    쓸개를 핥으며 부차를 향한 복수를 다짐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드디어 이십 년이 지났다. 이제 월나라는 막강한 힘과 재물을 가진
    나라로 성장했다. 그런데 그즈음 오왕 부차는 정욕만을 탐닉하여 여인
    들과 함께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를 알고 구천은 자기 나라의
    최고 미인인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을 오왕 부차에게 바쳤다. 그러자
    이 두 여자의 미모에 빠진 오왕 부차는 매일 붙어 다니며 술을 마셨다.
      또한 구천은 두 미인 말고도 우람한 나무를 베어 기술 좋은 목수를
    딸려 부차에게 선물했다. 부차가 고소대(孤蘇臺)라는 휘황찬란한 성전
    을 증축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다.
      부차가 정사를 돌보지 않고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노
    신 오자서(伍子胥)는 결코 월나라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간언했
    지만 부차는 콧방귀를 뀌며 무시해 버렸다. 부차는 오직 천하를 제패할
    야망으로 끓임없이 주변 국가에 병사들을 보내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국력은 약해지기만 했다.
      마침내 구천에게 복수의 기회가 찿아왔다.
      기원전 473년, 오나라에는 엄청난 가뭄이 들었다. 곡물 창고는 텅 비
    었고 백성들은 생계를 꾸려갈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구천은 바로
    지금이 공격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동안 비축해 두었던 군사력을 과
    시하며 거침없이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마침내 구천은 부차를 사로잡아 고소대에 가두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 고소대에서 향응을 베풀며 즐겼던 부차가 이제는 온몸이 결
    박된 채 죄인의 몸으로 갇힌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하루아침에 초라한
    신세로 전락한 부차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사실을 비관해 결국 자살
    을 선택하고 말았다.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