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앙의 독립선언

eorks 2015. 10. 9. 00:36
학교법인 동서학원 설립자 장성만 박사의 1인 3역
역  경  의   열  매
신앙의 독립선언
`기도하는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기도하는 가정은 망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회사는 쇠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학교는 무너지지 않는다. 6·25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내가 번번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기도의 힘이었다.
      신학 공부가 무척 재미있었지만 6·25전쟁이 치열하 게 전개되던 때인지라 공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공산당이 지금 낙동강에서 후퇴하고 있다. 모든 젊은이 들은 속히 군에 입대하라. 조국을 위해 봉사할 절호의 기 회다." 기독교인은 애국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국이 위기에 처하면 주저 없이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생각 은 희수(喜壽)를 보낸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군에 입대했다. 미 육군 제2사단에 배치됐다. 후퇴 하는 북한군의 뒤를 쫓아가며 수복지구의 치안을 확보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창녕, 거창, 전주, 강경, 논산으로 이 동했다. 당시 우리는 충분한 군사훈련을 받지 않고 입대했기 때 문에 총 쏘는 법도 잘 몰랐다. 그래서 위험한 상황도 참 많 았다. 거창에서 전주로 이동하다가 트럭이 전복되는 큰 사고를 당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나를 보호해 주셨다. 한번은 북한군이 숙소를 포위하고 무차별 총격을 벌인 일도 있었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는가. 도주하는 적군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생명을 잃었다. 방금 전까지 나와 대화를 나누던 전우들이 순식간에 싸늘한 시체로 변 하는 것을 목도 해야만 했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 었다. 죽음! 나는 또 한 번 그것의 실체를 보았다. 19세 어린 나이에 동료들의 죽음을 생생히 목도한 것이다. 그 비참한 전쟁터 에서 나는 신학에 대해 더욱 깊은 애정을 갖게 됐다. 하나님은 참 오묘하신 분이다. 어느 것 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이다. 때로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때로는 감 당하기 힘든 고난을 통해 역사하신다. 나는 축복받은 모태신앙인이다. 할머니 덕분에 어려서부 터 항서장로교회에 출석했다. 항서교회 김길창 목사님이 내 돌잔치 예배를 인도하셨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할머 니의 기도와 신앙 덕분이다. "기도하는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기도하는 가정은 망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회사는 쇠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학교는 무너지 지 않는다. 6.25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내가 번번히 살아남 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기도의 힘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신학교에 복학했다. 당시 한국 교회는 아주 혼란스러웠다. 신사참배에 반대 하다 옥고를 치른 성도들이 풀려나오면서 심각한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신앙의 지조를 지킨 출옥 성도를 중심으로 새로운 교단이 설립됐고, 일제에 부역했던 교회들은 더욱 똘똘 뭉쳐 교파를 형성했다. 자유신학과 보수신학의 충돌도 만만치 않았다. 외국에 유학하던 신학자들이 속속 귀국해 새로운 학파를 형성했 다. 보수와 진보의 신학논쟁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그 논 쟁은 곧 교파분열로 이어졌다. 참으로 실망스런 부분들이 어린 신학생의 눈에 쏙쏙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모두가 사람의 일이지 않는가, 사 람의 일은 어차피 완전하지 않다. 서로 다툴 수도 있고, 분 쟁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신앙의 본질이 무너지지 않 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아주 귀한 분을 만나게 됐다. 함경도 북청이 고향인 동석기 목사님이었다. 그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실 력 있는 목회자였다. 백발의 노목사가 대됴동 미국문화원 강당에서 강연회를 열었다. 그때 처음 그리스도의교회 (Church of Christ)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일주일 동안 열린 집회에 계속 참석했다. 동 목사님의 메시지는 나의 마음에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성경 이외의 어떤 인위적인 교리나 신조도 거부 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때의 순수한 복음주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교회는 교파주의를 단호히 배격합니다. 우리는 매주 성만찬을 가지며, 세례 대신 침례를 정례화합 니다." 동 목사님의 강연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것은 한국 교 회를 향한 광야의 외침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껏 머릿속 에 그려온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내가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 기에 있다.` 나는 그리스도의교회에 등록했다. 장로교회 교인에서 그 리스도의교회 교인으로 바뀐 것이다. 지금까지 할머니의 신앙으로 버텨왔으나 이제는 나의 신앙을 분명하게 확립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신앙의 독립선언이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역경의 열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동과 냉장고  (0) 2015.10.11
기도는 추상화를 정물화로 만든다  (0) 2015.10.10
신학을 공부하다  (0) 2015.10.08
소년 가장과 한 줄기 빛  (0) 2015.10.07
꿈과 비전은 비상의 날개  (0) 2015.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