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법인 동서학원 설립자 장성만 박사의 1인 3역
역 경 의 열 매 |
불가근 불가원
정치인들이 언론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다. 정치인은 기자들과 너무 가까이 지
내도 안 되고, 멀리 지내도 안 된다는 말이다. 항상 적당한 거리를 유지
하라는 뜻이다.
정책위원장이란 자리는 단 10분도 편히 쉴 수가 없
었다. 나 역시 일에 휘둘리지 않고 즐기는 편이었다. 당시
노동법에 손을 대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다. 그렇다고 노동
자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도 집권당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었다. 그때 노동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문제특별위원회
를 구성했고, 정책위원장인 내가 위원장을 겸직했다.
우리는 곧 노동법 개정에 착수했다. 당정협의를 거듭한
끝에 노동법 개정시안을 마련했다. 아직은 상부의 허락을
받지 않은 `초극비 문서였다. 나는 그것을 2부 만들어 캐
비닛 깊숙한 곳에 감춰 두었다. 아무도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당시 나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부산에 내려왔다. 지역구
는 정치인의 탯줄이나 다름없다. 지역구 사람들을 만나 그
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부산은 나의 교회와
학교가 있는 곳이므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부산에 내려온 다음날, 서울에서 발행하는 어느 신문의
1면 톱기사가 `노동법 개정시안`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극비리에 준비해 온 내용이 고스란히 나와 있었다. 머리가
텅비는 느낌이었다.
당 사무총장으로부터 원망 섞인 전화가 걸려왔다.
"신문기사 보셨죠? 어떻게 된 일입니까? 속히 상경해서
설명을 좀 해 주세요."
서울로 황급히 올라왔다. 사태가 아주 심각하게 흘러가
고 있었다. 누군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였
다. 사무총장이 내게 제안했다.
"우리 두 사람이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냅시다."
"아닙니다. 잘못은 내게 있습니다. 나 혼자 사표를 내겠
습니다."
하지만 사무총장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두 사람이 사표
를 써서 봉투에 넣고 노태우 대표위원의 자택을 방문했다.
우리는 경위를 설명하고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사표를
전달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노 대표위원은 끝내 사
표를 반려했다.
"이런 일로 사임을 해서는 안됩니다. 앞으로 보안에 각별
히 신경을 좀 써주십시오."
결국 이 일은 그 정도 선에서 무마됐다.
그런데 캐비닛에 들어 있던 노동법 개정시안이 어떻게
외부에 유출됐는지는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나는 그 기사를 쓴 기자를 원망하지 않았다.
문건을 어디서 구했느냐고도 묻지 않았다. 특종을 찾아 밤
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는 기자 정신을 존중하기 때문
이다.
당시 민정당에 출입하던 기자들의 면면은 쟁쟁했다. 조
선일보 강석천 기자는 후에 주필이 됐고, 동아일보 이낙연
기자는 국회의원이 됐다. 중앙일보 박보균 기자는 편집국
장을 거쳐 대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서울신문 이상철 기자
는 얼마 전까지 서울특별시 부시장으로 있었다 KBS 김인
규 기자는 한국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으로 있다가
KBS 사장이 됐고, MBC 정동영 기자는 지난 대선때 대통
령 후보로 나올 만큼 큰 정치인이 됐다. 당시 나와 각별한
친분을 나누던 기자들이었다.
정치인들이 언론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아 있다. 그것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다.
정치인은 기자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도 안 되고, 멀리 지
내도 안 된다는 말이다. 항상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뜻이다. 나는 정책위의장으로 재직한 2년3개월 동안 기자
들과 아주 잘 지냈다. 노동법 개정시안 유출사건만 없었더
라면 더욱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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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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