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밥 한 술도 은혜가 된다.

eorks 2017. 1. 29. 22:24
채근담[菜根談]
밥 한 술도 은혜가 된다.
      千金難結一時之歡 一飯竟致終身之感. 천금난결일시지환 일반경치종신지감. 蓋愛重反爲仇 薄極蒜成喜也. 개애중반위구 박극번성희야. 천금을 주고도 한때의 환심을 살 수 없으나 한 그릇의 밥으로 마침내는 평생의 감복(感服)을 이룰 수 있다. 대저 사랑이 깊으면 도리어 원수가 되고, 괴로움이 지극히 심하면 박한 것도 기쁨이 되느니라. [해설]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그 당장의 환심을 사기 어려운가 하면, 한끼의 밥을 주고도 한 평생의 잊지 못할 은혜를 베풀어 줄 수도 있다. 생각건대 애정이 너무 지나치면 도리여 원한을 사게 되는가 하면, 그것이 몹시 각박한데도 도리어 때에 따라서는 기쁨을 주는 일도 있다. 배부를 때에 음식 대접을 해도 고마울 것 없으나, 곤란할 때의 조그마한 온정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은혜가 되는 것이니, 남을 돕되 꼭 필요한 경우에 적당하게 해야 보람이 있다. 영조(英祖) 때 사람 이사관(李思觀)이 충청도 관찰사가 되어 내려가다 여관에서 잠을 자는데 날씨가 매우 추웠다. 그 때 가난한 선비 하나가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딸과 함께 여관으로 들어오는데 보니 옷이 변변치 못해 어린 아이가 추위에 지쳐 있었다. 이사관은 그 선비를 불러 자신이 입고 있던 수달피 덧옷을 벗어 그 아이를 덮어주라고 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러 그 여자 아이가 자라 영조의 계비인 정순 왕후(貞純王后)가 되었다. 영조는 왕후의 집이 가난했던 점을 생각하고 하루는 왕비에게 물었다. "혹시 기억에 남는 은인이 있으면 말하시오. 내가 왕비를 위해 은혜를 갚아주겠소." 그러자 왕비는 이사관의 일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이사관은 영조의 기림을 받아 마침내 좌의정까지 오를 수 있었다. 작은 은혜가 큰 보답을 받은 것이다. 이번에는 우리 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해 이야기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한 후 우리 나라에 살던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로 쫓겨갈 때였다. 어느 시골 농가에 일본인 가족들이 들어왔다. 먼 길에 피곤한 모습들이었다. 차편이 없어 부산까지 걸어간다고 했다. 밤낮으로 걸었으니 아이들은 배고픔도 잊은 채 이미 깊은 잠이 들었다. 그 때는 전쟁끝이라 너나 없이 살기가 다들 어려웠다. 주인 할아버지는 대소쿠리에 담긴 식은 꽁보리밥을 된장과 함께 내어놓았다. 그 일본인 가족들은 맛있게 먹고서 2시간쯤 머물다가 떠났다. 20년이 지난 어느 날, 그 농가에 말쑥하게 차려입은 일본인 젊은 부부가 찾아왔다. 자기 소개를 했다. 20년 전 이곳에서 꽁보리밥을 얻어먹었다고 했다. 그 때 7살이었다는 그는 꽁보리밥을 잊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보다 더 맛있었던 음식은 아직 못먹어봤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한국의 그 분들을 꼭 찾아가 고마움을 전하라고 유언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봉투 하나를 내놓았다. 농가의 주인은 할아버지 때의 일이니 안 받겠다고 했다. 그 일본인 부부는 기어코 맡겨며 두 손을 모우고 수없이 절을 하고는 돌아갔다. 봉투에는 그 당시의 황소값 20여 마리에 해당하는 큰 돈이 들어있었다. 우리 큰집에 있었던 실화이다. 지금도 새해가 되면 연하장과 함께 정성이 담긴 작은 소포가 온다. 식은 꽁보리밥 한 그릇이 그들에게는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고마움이었다.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