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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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ㅡ2화]그가 귀머거리인 줄 알았나
한 귀머거리 청년이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마을 촌가(村
家)에 들어가 하룻밤 묵어 갈 것을 청해 허락을 받고 방으로 들
어가 있었다.
그런데 소금 장수 한 사람이 역시 이 마을 근처를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바로 그 촌가에 와서,
"주인장! 날이 저물어 더 이상 길을 갈 수가 없으니 하룻밤
묵어 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는 것이었다. 이에 주인은 난처해하면서 말했다.
"어렵게 되었네요. 빈방이 하나밖에 없는데 방금 한 청년이
자고 가기를 청해 허락을 했습니다. 혹시 그 청년과 한방에서라
도 괜찮다면 묵어 가도록 하시지요."
이에 소금 장수는 청년과 한방에서 자겠다고 하여 승낙을 얻
고 청년이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청년은 자리에 눕자마자 코를 골며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지경
으로 깊은 잠에 빠졌는데, 소금 장수는 잠이 영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바야흐로 밤이 깊어지니 바로 옆방에서 주인
부부가 애정 놀이를 하는데, 그 소리가 매우 요란하게 들렸다.
남편이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내는 비명에 가까운 울
음 섞인 탄성을 연발하는 것이었다.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
았고, 숨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이에 소금 장수는 이
런 색정적이고 요란한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옆에서 코를
골며 잠만 자고 있는 청년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런 좋은 광경을 나 혼자만 듣기에는 정말 아까워.....,"
이렇게 중얼거린 소금 장수는 곧 자고 있는 청년을 가만히 흔
들어 깨웠다. 그러나 소금 장수는 이 청년이 귀머거리인 줄을 알
리가 없었다.
청년은 소금 장수가 흔들어 깨우는 통에 잠을 깼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므로, 소금 장수가 자다가 피곤해서 몸부
림을 쳐 자기에게 부딪친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잠을 잤다. 그러
는 동안에 주인 부부의 행사는 끝나고 곧 조용해졌다.
소금 장수는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새벽에 잠이 깨었다.
그런데 옆방의 주인 부부는 새벽에 또다시 지난밤과 같은 강렬
한 환희의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었다. 역시 그 소리가 너무나 사
람을 흥분시키기에, 다시 옆에서 자고 있는 청년을 힘껏 흔들어
깨웠다.
심하게 흔드는 바람에 잠을 깬 귀머거리 청년은 선잠을 깨고
는 크게 소리치며 화를 냈다.
"이 늙은 것이 밤중에도 남의 잠을 깨워 놓더니, 또 새벽잠마
저 깨워 사람을 못살게 구네, 못된 사람 같으니!"
이렇게 큰소리로 꾸짖었다. 옆방에서 한창 정감이 올라 있던
주인 부부가 이 꾸짖는 소리를 듣고, 자기 부부의 잠자리하는 소
리 때문에 손님들이 방해가 된다고 불평하는 줄 알고 오해를 하
게 되었다.
그래서 화가 난 주인 남자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와서는 몽
둥이를 들고 손님 방으로 들어와 내쫓으면서,
"이봐요! 남의 부부 잠자리하는 일을 가지고 소리가 좀 크게
났기로서니 손님들이 간섭할 바가 아니지 않소? 왜 우리 부부의
잠자리를 시비하는 거요? 어서 나가요! 하룻밤 묵게 해주었으면
고맙다고 해야지, 무슨 시비를 걸어요?"
하고 고함을 지르며 빨리 나가라고 호통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금 장수와 귀머거리 청년은 미쳐 짐도 다 챙기지 못
하고 새벽에 쫓겨나게 되었다. 그런데 귀머거리 청년은 쫓겨나
면서도 왜 쫓겨나게 되었는지 그 영문을 몰라 투덜대기만 하니,
소금 장수는 손뼉을 치고 웃었다.<조선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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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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