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 /이란 /바야상고르 왕자본 『샤나메』
[Bayasanghori Shâhnâmeh(Prince Bayasanghor’s Book of the Kings)]
Bozorgmehr challenges the Indian envoy to a game of chess
Faramarz mourns the death of his father, and of his uncle, Zavareh
The meeting of Ardeshir with Golnar, Ardavan's slave-girl and treasurer
The richly illuminated double frontispiece of the Shahnameh
The tyrant Zahhak, is nailed to the walls of a cave in Mount Damavand
이란의 민족시인 피르다우시의 동상
A battle-scene from the Baysonqori MS of the Shahnameh
국가 : 이란(Iran)
소장기관 : 테헤란 골레스탄궁(Golestan Palace) 제국도서관
관리기관 : 이란 문화유산관광국(ICHTO)
등재연도 : 2007년
아볼가셈 만수르이븐하산 피르다우시 토시(Abolghassem Mansour-ibn-Hassan Firdausi Tousi, 941~1020, 일명 페르도시(Ferdowsi))는 이란의 저명한 시인이자 페르시아 제국의 국민적 시인이다. 그는 941년 토스(Tous)에서 태어났으며, 1010년 주요 작품인 서사시 『샤나메(Shâhnâmeh, ‘왕들의 책(王書)’이라는 뜻)』를 완성하고 10년이 지난 뒤인 1020년 세상을 떠났다. 이 작품은 페르시아어 문학의 고전 가운데 하나로 그리스·로마 문화권의 『일리아스(Iliad)』와 『아이네이스(Aeniad)』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 작품이 창작될 당시 과학 및 문학에 주로 아랍 어가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르다우시는 페르시아어만 사용해서 집필했으며, 이것은 이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그에 따라 이 작품은 중요한 세계적 언어를 되살리고 유지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오늘날 페르시아어는 이란·아프가니스탄·타지키스탄·파키스탄, 그리고 그 땅에서 살지는 않지만 세계에 흩어져 사는 6,500만 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이다.
『샤나메』는 또한 중앙아시아, 인도, 이전의 오스만 제국에서도 귀중한 텍스트가 되었다. 그 작품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필사되었는데, 그 가운데 다음 세 가지 필사본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즉 일한국(─汗國)의 후원자 기야트 알딘(Giyath al-Din)을 위해 1300년대 초에 작성된 『드모트본 샤나메(Demotte Shâhnâmeh)』, 16세기의 『호턴본 샤나메(Houghton Shâhnâmeh)』, 그리고 전설적인 중앙아시아의 지도자 티무르(Timur, 1336~1405)의 손자였던 바야상고르(Bayasanghor, 1399~1433) 왕자를 위해 1430년 필사된 『바야상고르 왕자본 샤나메(Bayasanghori Shâhnâmeh)』 등이다.
그 가운데 『바야상고르 왕자본 샤나메』만이 테헤란 골레스탄궁 제국도서관(Imperial Library of the Golestan Palace)에 엄중하게 보관되어 남아 있다. 『바야상고르 왕자본 샤나메』는 15세기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를 지배했던 티무르 부흥기의 지배층이 누렸던 미학적·문학적 가치의 진수를 대변한다.
세계적 중요성, 고유성(독창성), 대체 불가능성 :
이 작품의 중요성은 원고 자체와 필사본의 기원으로부터 발생한다. 페르시아어로 쓰인 서사시 『샤나메』는 그리스·로마 문화권의 『일리아스』와 『아이네이스』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다룬 서사시로서, 이로 인해 고대 제국들의 정체성이 통합되었을 뿐 아니라 페르시아어 자체를 부흥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필사본의 기원도 매우 중요하다. ‘티무르’로도 알려진 타메를란(Tamerlane)은 뛰어난 전술로 유명하지만 또한 예술의 후원자였으며 사회개혁에도 몰두했다. 그는 점령한 곳에서 많은 공예인을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로 데리고 와서 티무르 르네상스로 알려진 이슬람 예술의 가장 찬란한 시기 가운데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 르네상스는 절충적인 양식의 화려한 건축과 지적·과학적·문화적 성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도시를 찾아왔던 여행자들이 도시의 이야기와 여러 가지 사상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전했기 때문에 티무르 왕조는 아나톨리아로부터 인도에 이르기까지 미술과 건축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타메를란의 후예들도 미술·과학·건축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예컨대 바야상고르의 형인 울루그 베그(Ulugh Beg, 1394~1449)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문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들의 후원을 받아 동쪽의 이슬람 세계에서는 바야상고르가 태수였던 새로운 티무르 왕조의 수도 헤라트(Herat)가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필사본의 채식과 도해가 번성함으로써 헤라트 학교는 페르시아 회화의 정점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티무르 왕조의 기념비적인 건축은 비록 몇몇이 크게 손상되기는 했지만 헤라트와 사마르칸트 등의 도시에 남아 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지역의 불안정한 역사와 화상들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손상되기 쉬운 그 당시의 필사본은 거의 없고, 『바야상고르본 샤나메』와 같이 훌륭한 기원 및 품질을 가진 필사본은 더욱 적다. 『드모트본』과 『후턴본』의 경우 해체라는 범죄적 행위 때문에 그들 필사본은 이제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페르시아어가 지적인 언어임을 확인해 주는 『샤나메』의 텍스트가 지니는 본연의 가치와 역할을 넘어 그 필사본 역시 고유하며 또한 대체 불가능하다. 서체와 채식 회화를 배우는 헤라트 학교는 바야상고르의 후원으로 설립되었으며, 많은 예술가가 그 도시로 모여들었다. 태수의 눈길을 끌기 위해 거장들이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서체의 쿠픽체가 발달했으며, 이 직업의 여러 측면을 관리하기 위해 엄격한 규정이 수립되었다.
바야상고르는 『샤나메』의 필체를 맡았던 오스타드 자파르 알바야상고리(Ostad Ja’far al-Bayasanghori) 휘하에 40명이 넘는 화가·장식가·서예가 집단을 거느렸다. 헤라트 학교와 관련을 맺은 결과 역사에 남게 된 화가 가운데는 술탄 알리 슈스타리(Sultan Ali Shustari), 에브라힘 타브리지(Ebrahim Tabrizi), 데르비시 호세인 나가시(Dervish Hossein Naghash), 파로흐 베이그(Farrokh Beig) 등이 있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걸작 가운데 하나인 『바야상고르본 샤나메』는 왕궁에 의해 직접 관리되었으며, 헤라트 학교는 예술계에서 영향력이 큰 새로운 세력으로 확립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야상고르 왕자본 『샤나메』 [Bayasanghori Shâhnâmeh(Prince Bayasanghor’s Book of the Kings)]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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