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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 /영국 /영국령 카리브 해 지역의 노예 명부(1817~1834) 1817~1834) (168)

eorks 2019. 11. 17. 17:16

세계기록유산 /바하마, 벨리즈, 도미니카, 자메이카, 세인트키츠 네비스, 트리니다드 토바고, 영국 /영국령 카리브 해 지역의 노예 명부(1817~1834)
[Registry of Slaves of the British Caribbean 1817-1834]

Original Register of Slaves, St. Christopher


국가 : 바하마(Bahamas), 벨리즈(Belize), 도미니카(Dominica), 자메이카(Jamaica), 세인트키츠 네비스(St Kitts), 트리니다드 토바고(Trinidad and Tobago), 영국(United Kingdom)
소장 및 관리기관 : 버뮤다 정부기록보관소
등재연도 : 2009년
노예가 된 아프리카 인들이 콜럼버스(Columbus)의 제1차 항해 때인 15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남‧북 아메리카로 강제로 이주해 왔으며, 이들은 대서양을 횡단한 이민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어 카리브 해와 남‧북 아메리카에서 끝나는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은 인종·도덕·윤리·정체성·저개발·보상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아직도 민감한 문제로 남아 있다. 주로 농장 노동력을 새로 마련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데 근거를 둔 유럽 인들의 노예무역 옹호는 중상주의 영국의 놀라운 세력 팽창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18세기에 이르러 노예무역은 참여한 유럽 국가들에게 ‘가장 이득 많고 풍부한 부의 원천’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것이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었고 폐지를 주장하는 세력에 대해 반발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807년 영국은 대서양을 횡단하여 영국령 서인도제도로 아프리카인 노예를 교역하는 것을 법적으로 종결시켰다. 하지만 식민지 사이의 노예무역은 1811년까지 합법 상태였다. 노예 인구의 상태를 세밀하게 감시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영국 정부가 발의한 입법에 의해 1813년과 1815년에 최초로 트리니다드와 세인트루시아에 각각 노예등록이 이루어졌다. 서인도제도의 다른 식민지도 비슷한 노예등록을 도입하도록 영국 정부의 독려를 받았으며, 1816년~1817년에 안티과(Antigua)·바베이도스(Barbados)·베르비세(Berbice)·도미니카(Dominica)·데메라라에세키보(Demerara-Essequibo)·그레나다(Grenada)·자메이카(Jamaica)· 몬트세랫(Montserrat)·네비스(Nevis)·세인트키츠(St. Kitts)·세인트빈센트(St. Vincent) 등 대다수가 그에 따랐다. 버진아일랜드제도(Virgin Islands)와 토바고(Tobago)는 1818년과 1819년에 각각 그 제도를 마련했다. 그러나 버뮤다(Bermuda)와 바하마(Bahamas)는 각각 1821년과 1822년까지 등록제도를 갖추지 않았고, 당시 자메이카의 속령이었던 케이먼제도(Cayman Islands)와 영국령 온두라스(Honduras)는 1834년까지 아무런 보고도 하지 않았다.

1819년 영국 정부는 런던에 종합적인 노예등록 제도를 마련했다. 그것은 노예의 판매·상속·이전, 식민지 사이의 이동 등을 모두 기록하려는 것이었다. 나아가 1821년이 되자 서인도 식민지의 총독들은 해당 식민지에서 작성한 명부의 사본과 목록을 런던에 보내야 했다. 1833년 노예제도 폐지법(Abolition of Slavery Act 1833)에 따라 1834년 8월 1일 대부분의 영국령에서는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으며, 노예명부는 해당 식민지 당국에 의해 누가 수습 노동자가 될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 그리고 노예보상위원들이 합법적인 소유권 판단과 보상액 산정을 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노예명부의 대다수는 각 식민지의 입법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래서 명부들 사이에 그 형식과 수집된 데이터의 차이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처럼 다양하고 해당 식민지에 따라 특이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록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노예제도 가운데 하나를 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값진 기록물이며, 국제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 :
- 카리브 해 지역의 노예명부는 ‘재산’으로 간주되어 출생이나 사망에 대한 기록이 없었던 노예들에 대한 최초의 공식 기록이므로 세계적으로 중요하다.

- 이들 명부에 기록된 노예들은 아프리카 출신 카리브 해 사람들 대다수의 조상이므로 사회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 이들은 아프리카·북아메리카·카리브 해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고유한 기록으로서 이 지역 사람의 인구 이동을 보여 준다.

- 이들은 농장사회의 불평등과 사람의 생명이 단지 경제적 배경으로만 평가되었다는 사실의 증거이다.

- 이들은 아프리카 인의 강제 이주뿐 아니라 백인들의 이주에 관한 증거도 제공한다.

- 이들은 유럽 출신들의 가족관계와 재산 소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 이들이 작성된 것은 여러 해 동안 바베이도스와 세인트키츠에서 지냈던 영국의 저명한 노예폐지론자 제임스 스티븐(James Stephen)의 주장 덕분이었다. 그는 노예들의 비밀거래가 “우리의 서인도제도 노예들인 불행한 사람들의 처우 개선이라는 폐지론자들의 고귀한 희망에 치명적”이 될 것이라고 느꼈다.

- 영국 정부는 그 의견을 받아들였고, 명부의 사용은 인도양에 있는 모리셔스와 그 속령, 희망봉(남아프리카), 실론(스리랑카) 등지로 확대되었다.

- 이들은 에릭 윌리엄스(Eric Williams)의 문헌과 이미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바베이도스 노예에 관한 기록유산과 연결된다. 바베이도스 기록유산과 같이 이 노예명부도 역사적인 정보의 일차적인 자료 원본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명부는 런던의 식민부 지시에 따라 식민지의 공식기록으로 정부가 작성하고 관리한 것이며, 사적으로 만들어진 그 기록유산과는 다른 관점과 흥밋거리를 제공한다. 이 명부는 카리브 해의 역사에 관한 에릭 윌리엄스의 연구와 역사 기록에 참고가 되었던 일련의 자료 가운데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국령 카리브 해 지역의 노예 명부(1817~1834) [Registry of Slaves of the British Caribbean 1817-1834]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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