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 /폴란드 /파리에 소재한 문학연구협회의 기록물 『쿨투라』(1946~2000)
[Archives of the Literary Institute in PARIS (1946-2000) - (Association Institut Littéraire "Kultura")]
국가 : 폴란드(Poland)
소장 및 관리기관 : 문학연구협회 ‘쿨투라’
등재연도 : 2009년
‘파리에 소재한 문학연구협회의 기록물 「쿨투라」(1946~2000)’은 1946년~2000년의 프랑스에 있었던 폴란드인들의 문학연구협회 활동이 빠짐없이 기록된 문헌이다. 폴란드인들의 망명 조직 활동을 기록된 이 문헌은 특별한 컬렉션이다. 전대미문의 이 망명 조직은 설립자들과 지도자들이 수십 년간 지적·정치적 비전을 실천함으로써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양 적대 진영으로 분열된 세계에서 공산 독재에 맞서 평화적 승리를 이끌었다.
문학연구협회는 엘리트 지식인들의 대화를 통해서 동유럽과 중동부 유럽 국가 간의 화해를 이끄는 지적·정치적 기초를 확립함으로써 1989년에서 1990년대의 성공적인 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연구소는 정보를 차단하고 검열하던 시기였던 1980년대 말까지 유럽 지역의 지식인들이 국제적으로 폭넓은 지적 교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기에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
문학연구협회는 다음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였다.
- 중동부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전체주의 통치 하에서 각국의 검열에 맞서 투쟁하였던 잡지 『쿨투라(Kultura)』(‘문화’라는 뜻)의 출판.
- 폴란드·우크라이나·벨라루스·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 그리고 발트 해 연안 국가들과 같은 동유럽 국가의 망명객들에게 독립된 정치사상의 중심지로서 역할.
-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철의 장막 뒤에 가려졌던 국가에서 온 작가, 반체제 인사 및 독립 기구, 특히 1970년대 체코의 반체제 운동이었던 ‘Charter 77’과, 1980년대 ‘연대(Solidarity)’ 운동과 비밀 저항활동이 일어나던 때에 조직된 단체들을 위한 지원 조직책의 역할.
- 자유 진영의 지식인들에게 공산주의 소비에트 제도가 어떠하며, 어떤 위협을 가하는지를 보여 주었던 중심의 역할.
이 연구소는 독립적인 사상을 아주 효과적으로 확산시켰는데, 이러한 사상에 관한 인쇄물은 어떤 기술적인 파괴 수단보다도 더 강한 무기가 되었다. 문학연구협회에서 간행한 월간지 『쿨투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이토록 미약한 수단으로 큰 역할을 한 다른 월간지를 세상에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 우크라이나 반체제 인사이자 지식인인 독일의 보단 오자드크추크(Bohdan Osadczuk, 1920~2011).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 :
문학연구협회의 기록물은 세계적인 의미를 지닌 특별한 컬렉션으로서, 1989년 이후 화해와 정치적·사회적 발달, 그리고 공산주의와 얄타(Yalta) 체제를 평화적으로 극복해 내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망명 조직에 관한 기록물이다. 이 연구소 활동의 의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소에 바탕을 두고 있다.
-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에 관한 예지 기에드로이츠(Jerzy Giedroyc, 1906~2000)의 견해에 바탕을 둔 특별한 정치 프로그램이며, 동시에 공산주의 통치 하에서 노예 상태가 된 집단들이 독립과 자유를 평화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문학연구협회 프로그램의 중요한 요소는 모든 권위주의와 전체주의 체제와 상반되는 유럽 정체성의 특징으로서 세계관과 견해에 대한 다원주의의 중요성과 시민사회, 민주적 전통, 자유, 대화 및 화해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역할이었다.
- 이 연구소는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조지 오웰(George Orwell), 아서 케스틀러(Arthur Koestler), 레이몽 아롱(Raymond Aron), 시몬 베유(Simone Weil), 밀로반 질라스(Milovan Ðilas, 1911~1995),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 같은 작가들이 쓴 작품(소비에트 연방에서 출판 금지된)을 출간하고 보급하였다. 또한 이 연구소는 망명 중에 독창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정치 프로그램을 수행하여 소련 연방뿐만 아니라 소위 사회주의 진영 국가들의 문화적 환경과 성공적인 관계를 맺고 유지하였으며, 반체제 운동과 정치적 저항운동을 지지하여 ‘철의 장막’ 뒤의 지식인들이 국제적으로 자유롭게 지적 활동을 할 수 있게 하였다.
1959년, 『쿨투라』의 노력 덕분에 스탈린(Stalin, 1879~1953)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던 우크라이나 시인들의 첫 문집이 나왔으며, 우크라이나의 민족 정체성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 시선집은 우크라이나의 문학적 언어를 되살리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 연구소는 당시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금지되거나 검열을 받았던 출판의 발전에 깊은 영향력을 끼쳤다. 그 중에서도, 문학연구협회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운영되고 있던 수백 개의 독립 출판사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였다. 『쿨투라』의 노력 덕분에 안드레이 시냡스키(Andrei Sinyavskii, 1925~1997), 율리 다니옐(Yuriy Daniel, 1925~1988) 같은 러시아 반체제 작가들의 첫 문집이 출판되었고, 이오시프 브로츠키(Iosif Aleksandrovich Brodsky, 1940~1996), 나탈리야 고르바넵스카야(Natalya Gorbanevskaya, 1936~)의 첫 번째 시집 및 러시아 지하조직의 첫 출판집이 발간되었다. 그 외에도 문학연구협회에서 책을 발간한 동유럽의 유명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
우크라이나 - 보리스 레비츠키(Borys Lewycky), 이반 코셸리베츠(Ivan Koshelivets, 연구소에서 문집 『Rozstrilane Vidrodzhenna』을 출판함)
리투아니아 - 토마스 벤클로바(Tomas Venclova)
전 세계적으로 문학연구협회 만큼 폴란드의 정치적 반대파의 형성하게 하고, 정치사상 및 예술 활동의 독립적인 중심인물을 생산해내는 데 영향력을 끼친 단체는 없었다. 크시슈토프 포미안(Krzysztof Pomian, 1934~)은 문학연구협회의 영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쿨투라』의 발행인과 작가들에게 있어서 폴란드의 역사와 문화는 유럽 역사와 문화의 일부였다.”
폴란드에서 노조운동이 일어나고 정부의 계엄조치가 발효 중이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 연구소는 폴란드의 지하 출판사와 지하조직이 불법으로 출판한 수십 개의 독립 간행물에 재정적으로 지원하였다. 또한 폴란드에 밀반입된 ‘비디오(Video)’ 프로그램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1977년~1990년에 문학연구협회의 기록물들은 폴란드의 지하 독립 출판사에서 1,073회나 인쇄되었다.
문학연구협회와 『쿨투라』는 유럽과 세계적으로 아주 특별한 독립적 망명 조직이었다. 이 연구소는 문학과 출판활동을 독립정신과 반공산주의 정신뿐 아니라 정치적 영감과 결합하였다. 이 모든 활동들은 경제적으로 극히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그러한 조건들은 연구소와 『쿨투라』가 완전히 독립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이었으며, 그로 인해서 그들이 관여한 활동에 대해 신뢰성을 얻고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쿨투라』를 출판한 문학연구협회는 공산주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강요당하는 수많은 국가에서 정치사상을 형성하거나 고취시켰다. 또한 서유럽 국가들에서 소비에트의 영향을 폭로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연구소가 맡았던 활동들은 소비에트 체제 국가 내에서 반대 운동의 기초를 마련하고 지원을 하였으며, 바로 이 운동이 소련연방의 공산주의 체제 붕괴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진영이 양분되어 통치권을 잃었던 국가들의 주권 회복에도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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